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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전 11시30분쯤,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성계리2구 검환마을 회관.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 너댓 명이 식사준비로 부산하다. 두 명은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통을 열고 접시에 김치를 옮겨 담는다. 파김치와 무생채, 호박나물 등 갖가지 반찬도 상에 올려진다.

 

가스렌지 위에는 무에 조기를 넣은 조림과 돼지고기를 재료로 한 제육볶음이 지글지글 끓고 있다. 펼쳐놓은 큰 상 3개가 찬거리로 가득 하다. 동네잔치라도 하는지 물었더니 "잔치는 무슨…. 시골사람들 점심 먹으려고 준비하는 거요"라고 한다. 최남심(58) 마을 부녀회장의 말이다.

 

시간이 12시에 가까워지자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삽시간에 20여 명이 모였다.

 

"어서 와여!", "인자 밥상 내오쇼!", "일하고 왔더니 배고파 죽겄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성화를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밥상이 회관의 너른 방으로 나온다. 상마다 예닐곱 명씩 둘러앉아 식사가 시작된다. 냉장고에 있던 맥주도 두어 병 상에 오른다.

 

"파김치가 별나 맛있네", "총각김치가 마침 맞게 익었네", "돼지고기 볶음이 입에 착착 달라붙어 맛나네", "오늘 식사당번이 누구간디, 밥맛이 유독 좋네"

 

반찬으로 시작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칭찬이 식사준비를 한 아낙으로 옮겨간다. 식탁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식사를 하는 풍경이 동네잔치와 다를 바 없다.

 

고춧대를 뽑다가 왔다는 김형갑(62) 이장은 "집이나 들에서 일을 허다가 점심때가 되면 이렇게 마을회관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면서 "마을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식사를 항께 날마다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즐겁다"고 말한다.

 

"나는 김치랑 나물 넣어서 비벼 먹을라네." 최남심 부녀회장이 몇 숟가락 뜬 밥그릇에 김치와 무채, 호박나물을 넣더니 금세 맛깔스럽게 비벼낸다.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배금순(여·62)씨도 "별나 맛있게 보이네"하면서 나물과 김치를 넣고 비비더니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그 사이 식사도 한두 명씩 끝난다.

 

"바뿐 분들은 얼릉 가쑈. 일할라면 바쁠 것인디…." 여기저기서 독촉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선 사람은 김만기(77) 마을 노인회장. "당번 양반들이 수고한 덕에 잘 먹고 갑니다"하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간다.

 

"내가 얼릉 설거지라도 하고 갈라네"하며 일어선 사람은 이장 부인 문순주(59)씨. 그러나 "고추 따다가 왔담서 그냥 가"하며 여기저기서 말리자 "그럼, 염치없지만 식사 잘 하고 갑니다. 남은 사람들 수고하쑈"라는 말을 남기고 떠밀려 일터로 돌아간다.

 

'장동댁'으로 불리는 이순애(85) 할머니도 "나도 잘 먹고 그냥 가요. 김치도 맛있고 고기도 맛나고…" 하며 일어선다.

 

"다른 사람들이 설거지를 하면 깨끗하지 않더랑께. 설거지는 내가 커피 한잔 마시고 차분히 할랑께 아무도 손대지 마쑈." 배금순씨가 설거지 당번을 자처하고 나선다.

 

커피를 마시고 난 배금순씨와 배길님(여·64)씨가 설거지를 시작하자 다른 할머니들이 빈 그릇을 가져다주고 상도 옮겨주려 한다.

 

"우리들이 다 알아서 할랑께, 노인네는 그냥 앉아 계시쇼." "그러면 쓰간디, 내가 이렇게 빈 그릇이라도 가져다 주께." 빈 그릇을 들고 일어선 사람은 '일로댁' 이영애(71) 할머니. 이 할머니는 이날의 식사당번이었다.

 

"식사당번이 아무 소용없어. 그냥 책임자일 뿐여. 이렇게 모두가 달라 들어서 같이 항께."

 

농번기 때 마을회관에서 공동급식을 하고 있는 검환마을의 정겨운 모습이다.

 

마을공동급식은 전남 나주시가 농번기를 맞아 일손이 부족한 농촌마을 주민들을 돕기 위해 급식도우미의 일당(3만5000원)을 지원, 주민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사업.

 

그동안 여성 농업인들은 들녘에서 일하다 점심때가 되면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준비해 먹고, 다시 들녘으로 나가느라 이중고를 겪었던 게 사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아예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공동급식은 이처럼 농번기 때마다 빚어지는 여성농업인들의 일과 점심식사 준비, 설거지 등에 따른 번거로움을 덜어줘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농촌마을의 공동체 형성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나주시는 지난해 이 사업이 선거법 위반 논란을 빚자 지원조례까지 만들며 적극 나섰다.

 

이 조례에 따라 나주시는 지난 봄 46개 마을(967농가)에 공동급식을 지원했다. 올 가을에도 9월 중순부터 이달 말까지 검환마을을 포함해 모두 23개 마을(464농가)에서 공동급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한데 모타서 같이 식사항께 어르신들이 다 좋아해. 그 중에서도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젤로 좋아하제. 주민들도 서로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아하고…. 여러모로 좋은 것 같애." '하정댁'으로 불리는 노인회장 부인 김두경(70) 할머니의 얘기다.

 

"집에서 누가 점심을 차분히 해묵나. 다들 대충 먹고 나오지. 그런디 여기서 같이 먹응께 맛있어, 많이 먹기도 하고…. 나는 한달 사이에 2킬로도 넘게 살이 쪘당께. 일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한디…." 최남심 부녀회장의 말이다.

 

김형갑 이장은 "농번기 때면 마을주민들이 한데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동네 젊은이들과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고기도 사서 보내고 찬거리를 가져다주는 것도 다반사"라면서 "농촌에서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마을공동급식이 농번기 때만 아니라 일년 내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을공동급식을 주관하고 있는 나주시 자치농정과의 윤종석씨는 "마을사람들이 밭에서 직접 키운 오이며 호박, 가지를 가지고 나오고, 식사준비도 너나없이 같이 하면서 조리사의 수당으로 지원해주는 일당을 부식비로 쓰면서 재미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사업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미흡한 부분은 계속 개선해서 앞으로 이 사업이 더 알차게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태그:#검환마을, #마을공동급식, #나주, #성계리2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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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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