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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두 개의 커다란 비석이 서 있다. 교직원이든 학생이든 방문객이든  이 학교의 본관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 두 개의 비석 사이를 지나야 한다. 만약 그 사이를 걷기 싫으면 그는 좌우로 둘러둘러 중앙 현관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누군들 본관 중앙 현관이 눈앞에 보이는데 그 두 비석 사이를 지나지 않고 애꿎게 먼길을 둘러서 갈 것인가. 꼭 그렇게 해야 할 특별한 까닭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둘러둘러 학교 본관으로 가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비석을 보면, 왼쪽 비석에는 "未來의 創造者 大工人"이라 적혀 있고, 오른쪽 비석에는 '誠實 創意 協同'이 새겨져 있다. 미래를 창조하는 대(구)공(고)사람이라는 뜻이고, 성실, 창의, 협동의 정신과 자세로 살아가자는 교훈이니, 아름답고 뜻깊은 금언이다.

과연 본관으로 가는 길목에 새겨질 만한 문장이자 단어라는 말이다. 그런데 비석의 뒤를 보면 둘 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휘호라고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학교 안에 두 개 있는 거대한 비석이 둘 다, 그것도 교문과 본관 사이에 상징물처럼 서 있는 그 두 비석이 둘 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휘호로 제작되어 있는 것이다.

대구공고의 정문을 들어서면 본관 건물을 향한 진입로가 나타난다. 이 길 입구의 좌우에는 두 개의 교비가 서 있다. 교훈과 격려문이 새겨진 두 비석에 새겨진 글을 모두 전두환 전 대통령의 휘호이다.
▲ 두 개의 교비(校碑)가 모두 한 사람의 휘호로 장식되어 있다 대구공고의 정문을 들어서면 본관 건물을 향한 진입로가 나타난다. 이 길 입구의 좌우에는 두 개의 교비가 서 있다. 교훈과 격려문이 새겨진 두 비석에 새겨진 글을 모두 전두환 전 대통령의 휘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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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커다란 비석 사이를 지나면 본관 진입로 좌우로 나무가 제법 울창하다. 본관으로 가는 길목답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나무들은 잘 가꾸어져 있고 녹음도 짙다. 본래 이 학교의 교목(校木)은 배롱나무였는데 근래 소나무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길에는 상당히 큰 배롱나무도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거목 소나무 여러 그루가 곳곳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다. 이만하면 아이들의 정서교육에 아주 좋은 자료가 될 교정 가꾸기가 아닌가 여겨졌다.

그런데 나무들 사이에 돌로 된 표지석 둘이 길 좌우에 뚜렷하게 박혀 있는 것이 어쩐지 그 의미를 반감시킨다. 왼쪽의 표지석도 오른쪽의 표지석도 어김없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모교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본관 건물 현관 입구 왼쪽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서 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문 기념 식수 1 본관 건물 현관 입구 왼쪽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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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건물 현관 입구의 오른쪽에도 전두환 대통령이 방문을 기념하여 심어놓은 나무가 서 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문 기념 식수 2 본관 건물 현관 입구의 오른쪽에도 전두환 대통령이 방문을 기념하여 심어놓은 나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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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뒤쪽에 가면 운동장과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지점에 정자가 우뚝 세워져 있다. 아이들이 본관과 실습관을 오가다 쉴 수도 있고, 이런저런 공사에서 노동을 하는 일꾼들이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당한 위치이다. 누가 정자를 건립할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이렇게 멋진 자리에(!) 하는 감탄이 저절로 일어난다. 때마침 정자를 향해 오토바이를 탄 식당 배달원이 달려온다. 그는 열 개쯤 되는 밥그릇을 정자에 내려놓는다.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되돌아간 뒤 좀 더 가까이 정자 앞으로 다가서니, 이 멋진 위치에 정자를 건립한 이가 학교 동창회장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동창회장이 후배들을 위해 아름다운 기부를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표지석을 곰곰 들여다보고, 그리고 정자에 붙은 현판을 쳐다보니 문득 '이런!'하는 탄식이 일어난다.

정자에 붙은 현판에는 일해정(日海亭)이라는 한자 글자가 선연하다. 정자의 이름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작명된 것이다. 그러고도 표지석은 혹시 그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할까 걱정하여 '일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라는 안내를 다시 한번 친절하게 하고 있다.
  

본관 뒤편 높은 곳에 정자가 있다. 정자의 이름이 일해정이다. 정자 앞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가 일해(日海)라는 사실이 새겨진 돌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교정을 내려다보면 축구장 등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 정자의 이름은 일해정(日海亭) 본관 뒤편 높은 곳에 정자가 있다. 정자의 이름이 일해정이다. 정자 앞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가 일해(日海)라는 사실이 새겨진 돌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교정을 내려다보면 축구장 등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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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위치가 절묘하다.
▲ 일해정에서 내려다보는 대구공고 운동장 전경 정자의 위치가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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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둘, 기념식수 둘, 중앙현관에 대형사진, 일해정이라는 정자까지

본관 현관에 들어선다. 그 순간, 사람보다도 세 배쯤 더 커보이는 웅장한 인물 사진이 불쑥 나타나 보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너무 큰 인물사진이라 중앙현관이 좁아 보인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즉각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휘호로 새겨진 두 개의 커다란 비석을 만나고, 그 두 비석 사이를 지나면 전두환 전 대통령 방문 기념 식수인 두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고, 본관 뒤로 가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세워진 일해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중앙 현관에 들어서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는 학교, 이 학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새로 개교한 사립 고등학교인가?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없는데, 언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구에 이렇게 큰 사립 공업고등학교를 개교했지?

약간 아뜩했던 정신을 수습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중앙 현관의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 위에는 '母校를 빛낸 同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렇게 밝혀 놓은 것을 보면 이 학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운 공업고등학교는 아닌 모양이다. '모교'라고 했으니 이 학교는 그가 졸업한 학교이다. 그런데 '母校를 빛낸 同門'이라...

중앙현관에 걸린, 사람 크기의 3배쯤 되어보이는 대형 사진의 주인공은 전두환 전 대통령.
▲ 중앙현관의 전두환 전 대통령 대형사진 중앙현관에 걸린, 사람 크기의 3배쯤 되어보이는 대형 사진의 주인공은 전두환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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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옆에는 그 크기가 1/4쯤 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 모교를 빛낸 인물 전두환 전 대통령 옆에는 그 크기가 1/4쯤 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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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옆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도 걸려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하면 그 크기가 1/4도 되지 않아 보인다. 학교장에게 확인해본 결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해 훨씬 작은 것은 그의 업적이 유달리 사소해서는 아니고,  그가 이 학교를 2년만 다녔고, 그 이후 경북고등학교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 학교장에게 물었다.

- 공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적합한 준거인물은 대통령 등 정치인이 아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이외에도 중앙현관에는 많은 졸업생들의 사진과 약력이 게시되어 있던데, 그 중에는 명장(名匠) 등 공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준거인물이 될 만한 분들도 많더라. (주)풍산을 창립하고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이사를 지낸 류찬우(14회) 동문, 우리별 1, 2, 3호를 설계 제작하고 체신부장관을 역임한 최순달(21회) 동문, 귀뚜라미보일러 최진민(30회) 동문, 삼일방직 대표이사이자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노희찬(33회) 동문 등등 적합한 저명 인사들도 많더라. 그런데 왜 공고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아니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그렇게 크게 붙여 놓았나? 다른 학교는 이 자리에 학교 연혁, 현황, 교육방침 등을 붙여 교직원과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방문객들에게 학교에 대한 친절한 소개를 하는데, 학교 성격과 아무 연관이 닿지 않아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결코 될 수 없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만 유독 큰 것으로 게시한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조치가 아닌지?
"공고를 졸업하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인지시키려는 교육적 취지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해마다 모교를 방문하는 등 후배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시는 분이다."

- 사진을 철거하거나 작은 것으로 바꾸어야 옳다.
"머지않아 교내에 다목적관이 설립될 예정인데, 그 건물이 생기면 지금 같은 논란은 없어질 것 같다."

- 다목적관 설립 이전에 빨리 조치를 취하라. 사진 게시 여부나 크기, 위치 등에 관해 교직원들과 학교운영위원회 등에 의견을 구해본 적은 있나?
"의견을 구하겠다."

- 요즘은 그 어떤 사립학교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존경하라고 가르칠 만한 위인이 아니다. 게시된 내용도 객관적이지 않다. 공과(功過)를 다 밝혀서 아이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나?
"중앙 현관에 게시된 인물들을 선정한 것은 동창회인데, 학교에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공고 졸업하고도 대통령 될 수 있는 점을 인지시키려"

학교장은 중앙 현관에 게시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 오른쪽에 그에 대해 소개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중앙 현관에 게시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력'은 아래와 같다.

전두환 (24회 기계과)
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출생
육군사관학교 졸업 (제 11기)
미국 페터딘대학교 명예정치학박사
육참총장실 수석부관
제1공수 특전단장
대통령경호실 차장보
1사단장
국군보안사령관
육군대장
중앙정보부장 서리
국가안보위원회 상임위원장
아시아경기대회(86년), 88올림픽 유치
민정당 총재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
대한민국 제 11대, 12대 대통령

12.12 사태, 1980년 광주, "전 재산 29만원" 발언, 백담사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게시판의 기록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반교육적이다.

중앙 현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거대한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 후, 건물을 벗어나 그가 나무 사이를 지나고, 다시 그가 휘호를 남긴 두 교비(校碑) 사이를 통과하여 교문 인근에 닿았다. 이제 학교를 떠나갈 찰나이다. 한참 머물렀던 학교를 한번 되돌아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때, 새로 교목이 된 것을 기리기 위해 얼마 전에 심었다는 크고 멋진 소나무 뒤로 도서관 건물이 보였고, 그 벽에 웅대하고 강력한 이미지로 그려진 두 그루의 커다란 소나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 외벽이 낡아 새로 도색을 할까 하다가 그보다는 새로 교목이 될 소나무 그림을 크게 그려넣은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는 학교 관계자의 말처럼, 과연 실물 소나무와 그림 소나무,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보여주는 풍경은 정말 멋지고 시원했다.

학교는 이런 식으로 꾸며져야 한다. 정치인, 그것도 비리와 독재 전횡으로 가득찬 잘못된 정치인을 졸업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에게 '모교를 빛낸 동문'이라고 소개하는 비교육적 전시(展示)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그 대신 낡은 도서관 외벽을 시원한 교목 그림으로 채워 아이들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가꾸어주는 창의적 교육관이 당당하게 일반화되어야 옳다.

이 학교는 교목을 소나무로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교정 곳곳에ㅐ 소나무를 심었고, 도서관의 낡은 외관 벽에도 대형 소나무 그림을 멋지게 그려넣었다. 새로 심은 큰 소나무 뒤로 벽에 소나무 그림이 그려진 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 소나무 그림이 인상적인 도서관의 풍경 이 학교는 교목을 소나무로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교정 곳곳에ㅐ 소나무를 심었고, 도서관의 낡은 외관 벽에도 대형 소나무 그림을 멋지게 그려넣었다. 새로 심은 큰 소나무 뒤로 벽에 소나무 그림이 그려진 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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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두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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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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