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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재보선이 끝났습니다. 아시다시피 한나라당이 패배하고 민주당이 이겼습니다. 단순 승률로만 보면 한나라당도 선방했습니다. 역대 재보선에서 집권여당이 완패를 당한 전례에 비해 그나마 5전 2승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이 이명박 정부가 양산한 3대 위기와 친서민 중도실용주의에 대한 심판이자 견제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명백한 패배입니다.

 

재보선 정국과 맞물린 미디어법 강행과 4대강 사업 일방통행 그리고 김제동, 손석희씨 중도하차 등 오만방자한 국정수행에 민심이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섰습니다. '백년대계 불타협'으로 세종시 해법에서 자충수를 둔 이 대통령도 한 몫 했습니다. 여기에 '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요지부동인 것으로도 부족해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하며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뒤통수를 친 것도 거들었습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 결과 이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33%로 추락한 게 이를 반증합니다.

 

하지만 완패의 핵심 고리는 친서민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중도실용이었느냐로 모아집니다. 복지예산은 삭감하고, 노동관계법은 개악하고,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오리무중이고, 체감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는 마당에 국민들에게 친서민은 홍보용 이미지로 각인되고 중도실용은 이벤트주의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인식됐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 안방인 경남 양산에서조차 고전 끝에 신승하고 수도권에서 패배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따라서 10월 재보선에서 민주당 승리의 일등공신은 이 대통령 자신인 셈입니다.

 

김영환 당선의 일등공신은 한나라당 공천 패착

 

적장의 전략적 패착에 따른 반사효과는 당연히 상대방 품에 선물을 주는 것이 세상사 이치. 10월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원동력은 위에서 짚어 본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확인한 민심 이반이 일차입니다.

 

 

두 번째는 한나라당 공천 실패 탓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안산 상록을의 송진섭 공천은 최악이었습니다. 철새가 시샘할 정도의 화려한 당력과 끊임없는 뇌물스캔들은 송진섭의 트레이드 마크를 '낡은 정치인'으로 규정할 정도로 신선도에서 낙제점 수준이었습니다.

 

송진섭과 공천 경쟁을 벌렸던 이들의 연이은 탈당과 출마선언에 평당원들까지 가세하면서 격화된 공천후유증은 당 내분을 가속화시키며 재선거의 '명분'을 일거에 비틀거리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정치는 모름지기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고 했습니다. 여당 대 여당의 이런 대결구도는 한나라당에겐 원죄에 가까운 형벌이자 패배를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28일의 개표 결과는 한나라당에게 뼈아픕니다. 비록 산술적 계산에 불과하지만 한나라당을 뛰쳐나간 후보군들과 송진섭의 표를 합치면 결과는 예측불허가 될 수도 있어섭니다. 1만1420표(33.17%)를 얻은 송진섭 표에 장경우(1145표)와 김석균(896표)과 윤문원(439표)의 표를 합치면 1만3900표로, 김영환 당선자가 획득한 1만4176표와 불과 276표 차로 좁혀집니다.

 

한나라당이 공천에서 패착을 두지 않고 경쟁 후보들이 선선히 수긍하면서 일치단결을 도모하는 후보로 낙점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각개 약진으로 인한 분산과 혼란 없이 유권자들을 만나고 당 내부를 추슬러 올인했다면, 276표 차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김영환 당선자가 승리하는데 일등공신은 송진섭인 셈입니다.

 

투표율 29.3%와 단일화 무산 그리고 김영환 당선

 

그렇다고 김영환 당선자가 땅 짚고 헤엄치듯이 당선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선거전에서는 객관적 정세와 선거 지형 및 구도가 변수이긴 하지만 후보의 상품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전하기 마련입니다. 김 당선자의 노무현 탄핵과 이른바 '한나라당 권유설' 등 전력이 도마에 올랐으나 당선으로 일거에 제압했습니다. 유권자들은 상품가치가 있어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록을 투표율 29.3%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총 유권자 11만8054명중 3만4536명만이 투표했다는 것은 선택할 후보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재보선 5개 지역에서 꼴찌를 기록한 투표율은 결국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저 투표율을 단순하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원인도 한두 가지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먼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범여권 후보의 난립에 따른 보수지지층의 기권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 투표 경향에서 조직적 결속력이 높은 보수지지층을 감안할 때 기권율은 그닥 높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안산 선거전에서 보기 드물게 난립한 범여권 후보로 인해 높지 않은 기권율이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반면 범야권의 단일화 무산에 따른 기권율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MB' 심판의 확실한 승리를 곧 후보단일화로 본 야권지지층이 단일화가 결렬되자 투표 기권으로 등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이참에 '본때를 보이겠다'는 확실한 의사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이러한 투표 보이콧 흐름과 사표방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민주당의 대응은 호남표와 충청표의 총동원령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인 대응이 그나마 투표율을 29.3%로 유지시킨 배경이자 김영환 당선으로 귀결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애초 예상과 달리 5363표(15.57%)를 얻는데 그친 임종인의 득표력을 해명해 줍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투표율을 관통하는 열쇠는 단연코 단일화 무산입니다. 특히 민주당의 고정기반이 아닌 범진보개혁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기권현상은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 당선자와 민주당이 여론조사대로 결과가 나왔다며 단일화 무용론을 자화자찬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이윱니다.

 

민주당과 김영환 당선자가 풀어야 할 과제

 

이번 재보선을 인색하게 평가한다면 민주당은 '절반의 승리'를 했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텃밭인 안산과 세종시 진원지인 충북 중부4군과 한나라당 강세지역인 수원 장안에서 승리했으나, 강릉과 양산은 여전히 한나라당의 철옹성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수원을 잃었지만 한나라당은 강원과 영남을 잇는 지역 블록에서 견고한 위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는 한편 민주당의 '정권 견제론'을 특정 지역에 국한시키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절반의 패배'를 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입니다.

 

이를 안산 상록을에 대입하면 김영환의 승리는 '절반의 승리'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이전투구와 고정표의 충성으로 당선은 했지만 단일화를 무산시킨 장본인이 되면서 이참에 김 당선자의 확실한 우군이 될 수 있는 범진보개혁층을 능동적으로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 당선자가 단일화에 진정성과 의지를 갖고 시종일관 주도해 나갔다면 결과는 압도적 완승 이상의 성과를 낳았을 것입니다. 특히 '김영환식 정치'가 국회의원에 만족하지 않고 대망을 설계하는 것이라면 단일화 무산의 안타까움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단일화 국면에 '국민이 차려준 밥상을 걷어차지 마라'며 합의를 촉구한 천정배 의원이 김 당선자의 선대위원장을 수락한 것 역시 아쉬움을 더합니다.

 

굳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들지 않더라도 그릇이 큰 정치인들은 고비마다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안목과 통 큰 리더십이 없이는 대망은커녕 쪽박을 찰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 당선자의 단일화 무산이나 천 의원의 엉거주춤한 행보는 민주당이 안산 상록을 재선거에서 '절반의 승리'에 머문 결정적 이윱니다. 지난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나란히 안산에 입성해 중진의원으로 자리매김한 두 사람이 내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향후 보폭을 어떻게 가져나가느냐에 따라 대망은 거품이 될 수도 있고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에 앞서 단일화 무산으로 인해 '내상'이 깊은 안산의 범진보개혁층을 어떻게 민주대연합의 정치적 기반으로 전환해 나갈 것인지, 두 사람의 정치력이 본격적인 시험무대에 올라섰음은 자명합니다.

덧붙이는 글 | 참여와 소통의 풀뿌리안산 그래스루티(www.grassrooti.net)에 함께 게재합니다.


태그:#안산 상록을, #김영환, #선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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