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25일)는 주인집 큰아들이 장가가는 날이었다. 결혼식은 금강 담수호와 하굿둑 넘어 충청도 산야가 손에 잡힐 것 같은 군산 오성산 자락의 리버힐호텔 웨딩홀에서 올렸는데, 마침 아내가 쉬는 날이어서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고 있습니다. 축하객들을 두 번이나 웃긴 신랑의 재치가 가정을 원만하게 꾸려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고 있습니다. 축하객들을 두 번이나 웃긴 신랑의 재치가 가정을 원만하게 꾸려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식장에 도착해서 축의금 봉투를 접수하고 신랑 부모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는 동안 가깝게 지내던 지인도 몇 분 만났다. 태어난 도시이고 3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해서 그런지 밖에 나가면 반가운 분도 만나고 놀라운 소식도 종종 듣는다.

축하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목을 두 손으로 싸잡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신랑 부모와 모든 게 만족스럽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신랑, 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긴장된 신부의 예쁜 얼굴들이 무척 행복하게 보였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맞절을 하는데 신랑이 어찌나 고개를 숙이는지 식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신부 손을 장인에게 넘겨받을 때도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절을 해서 한바탕 웃기더니 재차 웃기는 것을 보며 부부생활을 원만하게 꾸려나갈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평범하면서도 모범적인 신랑 부모

시골이라서 그런지 결혼식 며칠 전부터 잔칫집 분위기가 풍겼다. 결혼식도 예식장에서 하고 식사도 식당에서 할 텐데 아침에 일어나면 음식을 장만하느라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빠른 템포의 경음악처럼 경쾌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메주콩을 말리는 마당 한쪽에서 김치를 다듬는 엄마와 큰엄마들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가 부침개 냄새에 마냥 즐거워했던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습니다.
 메주콩을 말리는 마당 한쪽에서 김치를 다듬는 엄마와 큰엄마들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가 부침개 냄새에 마냥 즐거워했던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잔칫날 이틀 전부터 서울·대전 등지에 사는 형제들이 하나 둘 도착,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메주콩을 말리는 마당 한쪽에서 동서들이 김치를 다듬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옆에서 재미있게 지켜보는 예쁜 꼬마를 보니까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만연한 딸 하나를 둔 필자도 걱정은커녕 집안에 대사가 있을 때마다 부침개를 하는 '난순네 엄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며 구경하던 코흘리개 시절이 떠오르며 괜히 신이 났다. 잔칫집 분위기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신랑 부모는 학력이 높거나 부자도 아니다. 하지만, 남에게 모범이 되는 부부이다. 남편은 시내에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아내는 회사에 다니는데, 퇴근을 하거나 쉬는 날에는 농사일도 돌보고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 수발까지 들면서 가정을 꾸려 가는데 맛깔스런 음식 솜씨도 빼놓을 수 없다. 

남편은 필자보다 예닐곱 살 아래인데 작년 8월에 이사를 마치고 나니까 채소를 직접 갈아드시고 싶으면 밭을 내주겠다면서 논도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지난 여름에도 마당에 심은 풋고추와 상추를 실컷 따다 먹었는데 아주머니는 색다른 반찬을 할 때마다 맛이나 보라며 가져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10회 정도 이사를 다녔는데, 몸도 마음도 지금 사는 집이 가장 편한 것 같다. 아내도 필자와 같은 말을 자주 하는데, 주인의 넉넉한 인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청사초롱은 못 밝혀도 외등은 켜놔야지

주인집 큰아들이 결혼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축의금은 성의껏 전달하면 되니까 걱정할 게 없는데 고민이 되었다. 작은 이벤트라도 열어서 신랑하고 신랑 부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사초롱 대신 환하게 밝힌 외등. ‘폭을 잘 잡으면 마음도 편하다’는 어머니 말씀이 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청사초롱 대신 환하게 밝힌 외등. ‘폭을 잘 잡으면 마음도 편하다’는 어머니 말씀이 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하루는 깜짝 놀랄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현관하고 처마 밑 외등이 1년 가까이 들어오지 않았어도 미뤄왔는데 결혼식 전에 사다 끼우고 저녁 내내 밝히면 잔칫집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 집주인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말해, 잔칫날 청사초롱은 못 밝혀도 외등이라도 환하게 켜놓자는 의도였다.

해서 주인아저씨에게 잔칫날을 앞두고 집안에 불을 환하게 밝히면 좋을 것 같아 외등을 모두 갈아 끼고 현관도 센서 등으로 교체해야겠다고 했더니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며 좋아했다. 아저씨는 아래층도 갈아야겠다면서 등을 모두 사주겠다고 했지만, 말리고 곧바로 시내로 나가 전구 열 개와 센서가 달린 등 하나를 사왔다.   

이튿날 아침에는 혼자 힘으로 할 수가 없어 주인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전구를 모두 갈아 끼우고 구질구질하게 널려 있던 전선도 모두 잘라냈다. 그랬더니 새로 단장한 것처럼 말끔하게 보였고, 아저씨도 만족해하며 "시원하고 좋네요!"를 몇 차례 반복했다.

이사할 때부터 외등이 두 개나 들어오지 않아 테라스가 캄캄했다. 그런데 등을 닦고 전구를 새로 끼워 이틀 밤을 늦게까지 켜놓으니까 대낮처럼 밝아서 잔칫집 분위기를 돋우어주었는데, 이렇게 하찮은 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돈으로 사들일 수 없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작은 것을 주고 큰 행복을 얻기도 하고, 큰 것을 주고도 불행의 늪으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욕 때문으로 풀이되는데 별것도 아닌 일을 소개하는 이유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도 마음을 함께하면 기쁨과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쯤은 신혼여행의 단꿈에 빠져 있을 신랑·신부는 서로 단단한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되려고 노력해서 사랑의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지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가가는날, #청사초롱, #행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