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의 '공무원노동조합 옥죄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3일 충북 옥천에서 열린 통합공무원노조 전국 본·지부 간부 토론회 때 참석했던 이들이 '민중의례'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징계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앞서 행안부는 지난 22일 공무원노조가 각종 행사 때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하는 것은 국가공무원법 제63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5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이를 금지시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각급 기관에 내려 보냈다. 소위 민중의례를 통해 공무원노조가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하고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금지 사유였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 관계자는 이날 "노조 측이 각 기관에 통보된 민중의례 금지 지침을 인지했는지 확인한 뒤에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공무원 수는 약 250여 명. 지난 22일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공무원노조 간부 100여 명에 이어 대규모 징계 사태가 또 벌어지는 셈이다.

 

앞서도 정부는 오는 12월 출범을 앞둔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해직자 조합 배제'를 요구하며 이에 불응한 전공노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공무원노동조합법에 명시된 '단협 무효사유'를 예외적으로 무시하고 13년 만의 '사법경찰권'을 행사하며 손영태 전공노 위원장을 형사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중의례를 금지하겠다는 발상, 그리고 민중의례를 한 공무원들을 징계하겠다는 발상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MB도 인정한 5.18 정신... 누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막나

 

'국민의례'가 애국가 제창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구성돼 있다면 민중의례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한다. 정부는 이 민중의례가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고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시키는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주장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알다시피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민중가요다. 5.18 당시 계엄군의 대공세에 맞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숨진 사수대 중 한 명인 시민군 지도자 윤상원 열사가 그 주인공이며, 백기완 선생이 윤 열사를 기리며 지은 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제2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가 지금과 같은 민주화 사회를 이루는 데 큰 초석이 됐다"고 밝힌 것처럼 우리나라의 민주화 역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 1995년 특별법 제정을 통해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정부가 인정한 '국가유공자'들을 기리는 노래가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의식"이라고 주장하는 행태는 당시 전남도청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던 독재 정권이나 할 만한 발상이다.

 

이를 두고 이충재 전국민주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중의례는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만들어진 의식인데 이것이 무슨 위법 사유냐"며 "행안부 고위 공무원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통합공무원노조의 이상원 대변인도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을 검열한다고 하더니 이제 행안부가 '노래'나 '말'도 검열하려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이번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기록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라고 탄식했다.

 

이 대변인은 특히, 행안부의 민중의례 금지 지침이 부당노동행위라고 지적했다.

 

"공무원노조가 정부 공식 행사 때 국민의례와 애국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중의례는 노동조합 행사의 절차 의례이자 활동일 뿐이다. 민중의례를 금지하는 것은 노동조합법 81조에 정확히 합치하는 부당노동행위다. 공무원노조는 이를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위원회로 제소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제소할 계획이다."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강요로 정부가 얻는 것 

 

오히려 '국민의례'와 '애국가'를 욕되게 하는 것은 정부일지도 모른다.

 

60~70대 노인 회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지난 19일 시민운동의 새로운 정치운동을 선언한 '희망과 대안' 창립총회에서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생략을 문제 삼으며 '난장'을 부렸다.(관련기사 : '희망과 대안' 창립식, 보수단체 난입 무산) 이 사건은 곧 1987년 4월 통일민주당의 20여 개 지구당에 폭력배들이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당원을 폭행하는 등 난동을 부려 창당대회를 방해한 '용팔이 사건'과 비교됐다.

 

현재 정부는 "정치깡패의 행패나 다름 없다"고 맹비난을 받았던 수구단체 회원들과 같은 논리로 공무원노조에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을 강요하고 있다. 또 은연중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을 보수·진보를 나누는 '기준'으로 삼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정부는 자신들의 '치졸한 수'를 국민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통합공무원노조가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ARS 방법조사·신뢰수준 95%·최대허용오차±2.8%)에 따르면 국민들은 정부가 아닌 공무원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통합공무원노조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사회동향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23일~24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무원노조가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44.9%가 "정당한 활동"이라고 답했고 응답자의 40.2%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전공노를 법외노조로 규정한 것에 대해선 응답자의 절반(50.2%)이 "지나친 조치"라고 답했다. "정당한 조치"라고 답한 대답은 전체 응답자의 34.4%에 머물렀다.


태그:#공무원노동조합, #민중의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