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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라도 김영환 후보 측과 조건 없이 만나라. 먼저 만나자고 하고 제안해라. 그게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 주선을 해 달라.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대민주당 후보가 무소속에게 질까봐 단일화 못하는 것 아니냐. 내가 한나라당 후보에게 단일화 요구하던가?"

"이렇게 하다가 한나라당 후보 어부지리 시켜주면 어쩌려고 하나?"

"지금 나한테 이러는 것은 선거운동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노력했음에도 잘 안 되는 것 자꾸 강요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24일 밤 11시. 선거를 나흘 앞둔 안산 상록을 임종인 후보 사무소. 선거 유세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온 임종인 후보와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후보를 기다리고 있던 일단의 시민들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늦은 시각 선거사무소를 찾은 이들은 촛불시민연석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 안산 상록을 범야권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시민들이 직접 후보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작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임종인 후보와 대면한 이들은 어떻게든 단일화를 반드시 이뤄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야권 단일후보로서 대승적 차원에서 품으면 안 되겠냐" "끝까지 단일화 노력을 보여 달라" "진정성을 지켜 달라"며 임종인 후보를 압박했다. 또 17대 때 민주당 해남 진도지역 의원 출신으로 이번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영호 후보와의 단일화도 제기했다. 지지율이 약하다고 하지만 1%라도 아쉬운 때 민주세력이 하나로 합쳐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임종인 후보는 "김영환 후보와는 합의안이 있다, 그렇지만 이영호 후보와는 지지율 차이가 크게 나 큰 의미가 없다"며 주장을 일축했고, 이들은 "지지율 차이를 언급하는 것은 민주당 주장과 똑같은 것 아니냐"며 반박했다.

 

이야기를 옆에서 경청하고 있는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 끼어들었다. "임종인은 단일화 의지가 있다, 단일화 의지가 없는 것은 김영환 쪽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단일화 노력을 하겠다"며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취했고, 그때서야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표정들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다들 선거에 매여 있어 넓게 생각하지를 못하네요. 큰사람이 나오면 좋겠는데 너무 답답합니다."

 

선거사무소를 나서는 촛불시민연석회의의 관계자는 대화가 만족스러웠냐는 물음에 착잡한 듯 짧게 답했다. 말로는 단일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단일화를 외면하는 후보들에 불만이 얼굴에 배어나오고 있었다.

 

말뿐인 단일화, 행동으로는 못 보이는 후보들

 

선거 막바지에 야권단일화가 무산된 데 대해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각 후보 진영을 찾아다니며 단일화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야권이 연대의 틀을 외면하고 제 밥그릇만 챙기려는 행태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후보들을 찾아다니며 직접적인 압박에 돌입했다.

 

반MB단일화를 외치던 이들의 우려는 한 가지. 야권 분열은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후보들의 행태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이들은 수원 장안의 민주노동당 후보와 안산 상록을의 민주당 김영환 후보 및 무소속 이영호 후보의 사무소를 찾아 단일화에 대한 시민들의 뜻을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임종인 후보를 만나러 온 것이라고 했다.

 

촛불시민연석회의에서 '싸울아비'란 닉네임을 사용한다는 김창건씨는 "지난 22일 안중근 기념 음악회가 있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단일화가 지지부진할 경우 후보 사무소를 한번 돌자는 이야기가 있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가 무산되자 위기감이 커져 결국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수원의 민주노동당 후보 측에 찾아가 대의와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것을 던지라"고 했는데 "그쪽도 충분히 수긍하겠다는 표정으로 후보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을 보였다, 어떻게든 단일화로 보여 져야 함을 강조하고 왔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민주당 김영환 선거사무소였는데, 우리의 뜻을 전달했으나 단일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였다"면서 "단일화 실패 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약간 옥신각신했다"고 전했다.

 

촛불시민 단일화 압박에 소란 피운다며 경찰 부른 민주당

 

민주당 김영환 후보 사무소에서는 단일화를 촉구하는 이들과 선거운동원들 간에 한때 고성이 오가며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외부인들이 선거사무소에 찾아와 소란을 피운다며 김영환 후보 사무소 관계자들이 경찰에 신고했던 것.

 

민주당 측 관계자에 따르면 "저녁 9시쯤 선거사무소에 찾아온 사람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든 제비뽑기를 하든 어떻게든 단일화를 하라고 강요하더라"며 "그간의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임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들 중 한사람이 벌컥 화를 내며 '그럼 김영환 후보 낙선 운동을 펼치겠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선거운동원들과 말싸움을 벌인 것"이라고 전했다. "선거사무소에 찾아와 낙선 운동을 이야기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촛불시민연석회의 관계자는 "김영환 선대본부 관계자에게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민주당이 맏형으로서 책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전달했다. 우리가 잘못된 이야기를 한 것이냐"면서, "그쪽 관계자가 떨어지면 정치적 책임을 지면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시민들의 바람을 져버리는 것으로 지지율을 갖고 자만심에 빠져 있는 모습"이라며 김영환 후보 측의 자세를 비난했다.

 

이들은 25일 오후 촛불시민연석회의의 모임이 예정돼 있는데 이 자리에서 야권후보 단일화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 행동을 제안할 예정이라며, 마지막순간까지 양 후보에게 단일화를 압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책임 떠넘기기 공방 속 높아지는 어부지리 가능성

 

시민들이 직접 나설 만큼 안산 상록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 요구가 높지만 민주당 김영환 후보와 야3당이 지원하는 임종인 후보 양 측은 단일화 무산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면서 단일화를 원했던 지역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들의 대립은 결국 다른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유권자들의 뜻을 헤아리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만이 후보가 되야 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양보해야 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고 있다. 각 후보들은 서로 불리할 게 없다며 오직 마이웨이만 외치고 있다. 그간 외쳤던 '야권 통합'은 그저 립서비스였을 뿐 진정성은 없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측은 여론조사 동향을 볼 때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어 승리가 예상된다는 것. 2~3위와의 격차가 어느 정도 벌어져 있어 굳이 단일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김영환 후보 측 분위기다. 차라리 임종인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가 단일화를 이뤄야 할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김영환 후보 선거사무소의 관계자는 "정당 역사상 1위 후보를 주저앉히고 단일화하는 경우가 어딨나? 그렇게 되면 야합일 뿐이다"라며 자신들이 아닌 다른 후보로의 단일화는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유권자 수준과 지지도 등으로 단일화를 해야 하는데, 임종인 후보 측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임종인 후보 측은 민주당의 의지 문제를 지적한다. 시민단체의 중재 아래 합의를 다 해 놓고도 사소한 문제로 합의를 깨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 "민주당이 반MB 연대가 필요할 때는 야권 연대를 이야기 하다가 먹을 것이 생기면 독식할 생각만 갖고 있다"면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민주당의 자세가 단일화를 막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득권 논리에 매몰돼 대의는 외면

 

임종인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진보정당 측 인사들은 "어떻게든 단일화가 이뤄지길 바랐는데, 합의가 된 사안이 사소한 문제를 빌미로 파기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진보진영이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음에도 민주당 쪽이 성의를 나타내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 관계자도 "단일화 안하면 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밑바닥 민심 또한 안 되면 불안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후보자들이 자기가 단일 후보 안 될까봐 걱정하고 있어서 더욱 쉽지가 않다"면서, "누구든 큰마음을 갖고 자신을 던지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행동으로 보여 지지 못하는 '야권 통합'에 반MB 단일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심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인 것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기득권 논리에 매몰된 채 대의를 외면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무산에 심적 부담 느끼는 안산 맹주 천정배 의원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안산지역 민주당 인사들 또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안산의 맹주로 불리는 천정배 의원이다. 임종인 후보와 같은 법무법인에 있기도 한 천정배 의원은 김영환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수락한 20일부터 미디어법과 관련해 헌법재판소 앞에서 2박 3일간 노숙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곧 판결이 내려질 미디어법에 집중하며 선거운동 현장을 잠시 벗어나 있었던 것.

 

지역에서는 어느 한쪽을 지원하기 난처한 입장인 천정배 의원이 언론악법 철폐 농성을 활용해 잠시 피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선거운동 대신 찬바람 맞으며 길에서 노숙하는 것이 선거운동 보다는 속편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천정배 의원은 헌법재판소 농성 기간 중에도 후보자들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 단일화 안을 받을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안산 상록을 단일화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온 천 의원으로서는 어느 한쪽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심적으로 크게 부담되면서 고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태그:#재보선, #안산상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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