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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사로잡혀 격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바울
▲ 미친 수행자 바울 광기에 사로잡혀 격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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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 수지따가 캘커타(인도 웨스트벵갈주의 수도) 외곽에서 소띠곤자아끄 멜라(축제)가 열린다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며칠 전 나무 누님이 사준 꾸르따 삐자마(Kurta Pijama, 인도 남성 전통의상)를 멋들어지게 입고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눌러썼다. 서구적인 체형에 피부가 검은 편이라 꼭 인도사람 같단다.

"갑시다."

일행들이 웃는다. 왠지 바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짐을 챙기란다. 인도에 처음 온 나로서는 그들의 웃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 오는 게 아니야?"

같은 캘커타 시내에서 열리는 축제를 가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한가 싶었다. 공연 한두 시간 보고 인도음식도 좀 먹고 사람구경 풍물구경하다 오는 것 아닌가 싶었다. 일행들은 침낭에 두꺼운 옷가지, 모기향까지 중무장. 마치 여행 떠나는 사람 같다. 좀 우스웠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 말 듣고 그렇게 해."

못 이겨서 얇은 바람막이 점퍼 하나와 수건을 챙겨들었다. 내 고집에 더 이상 채근하지 않는다.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화장지를 사용하는 나는 그건 꼭 챙겼다. 한두 번 낭패를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관광지가 아니면 화장지 구하기가 힘들다).

축제가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바울
▲ 춤추는 바울 축제가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바울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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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를 타고 출발했다. 대낮인데도 자동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다닌다. 희뿌연 연무가 안개처럼 도로를 뒤덮고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모두 먼지와 매연이다. 유엔 환경보고서는 세계 최악의 환경오염도시로 캘커타를 꼽았다. 몇 년 안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있었단다. 아침에 하얀 옷을 입으면 한나절만에 옷은 누렇게 변한다. 콧속에 먼지가 쌓여 코를 풀면 시커먼 덩어리들이 튀어 나온다. 차들이 뒤엉킨 도로에 곳곳에선 크락션 소리가 요동친다. 우리와 달리 인도에선 크락션이 안전운전의 미덕이자 에티켓이다.

인도집시, 바울(baul)을 만나다

1시간 남짓 걸려 축제장에 도착했다. 밤에 열리는 축제인데도 축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간단한 음식물을 파는 노점상이 대여섯 곳 서 있고 거대한 나이롱극장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근 30년만에 보는 나이롱극장이 반가웠다. TV나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1년에 한두 번씩 가을걷이가 끝날 즈음 면소재지를 순회하며 나이롱극장에서 상영하던 철지난 영화는 농촌사람들에겐 최고의 문화생활이었다.

수지따는 나이롱극장 옆 비닐포장을 둘러친 허름한 폐 창고 건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장막을 걷는 순간, 희뿌연 담배연기와 마리화나(마리화나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 편에) 연기가 가득하다. 조금은 거북스럽다. 나는 거기서 기이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인도의 집시 바울(baul)이었다. 주황색 혹은 조각 천으로 기운 옷을 입고 해금과 비슷하게 생긴 엑따라와 손풍금을 연주하며 마치 주술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광기, 광기, 우리는 모두 미쳤나니!/'미친다'라는 말은 왜 이다지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나?/가슴속 물길 속으로 뛰어들 때, 당신을 알리라./미친 이 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바울의 노래 중에서)

바울은 'batula'(산스크리트어 Vatula)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람에 사로잡힌 자'. 다시 말해서 자신의 삶과 생각 모두를 내면의 근원적 충동에 내맡긴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광적이다. 마치 미친 자처럼 노래하고 춤을 춘다. 마치 마리화나에 취한 듯 내뱉는 그들의 격정적 광기는 신이라는 절정에 이르러 불나비처럼 산화한다.

카스트라는 엄격한 계급이 지배하는 인도. 불가촉천민이나 소수민족이 아니면서도 어느 카스트에도 속하지 않는 웨스트벵갈의 수행자 무리 바울. 캘커타의 소띠곤자아끄축제에서 인도의 각설이 바울(baul)을 처음 만났다. 바울의 무리에는 브라만에서 수드라, 외국인까지 없는 계급이 없다. 남녀 구별도 없다. 누구나 평등하다. 심지어 브라만 여자와 수드라 남자와 결혼을 하기도 한다. 엄격하게 구분하면 불가촉천민이라는 외국인도 상관없다. 실례로 우리가 가족처럼 지내는 바울 숏도난다의 아내인 호리다시는 일본인이다.

그것은 무슬림 수행자인 포키르도 마찬가지다. 무슬림 특유의 하얀 옷을 즐겨 입는다는 것을 빼면 바울과 흡사하다. 포키르의 여성들은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얼굴을 내어 놓고 똑같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이교도들에 뒤섞여 이야기도 하고 함께 밥도 먹는다. 중동의 이맘(무슬림 최고의 영적지도자)들이 보면 기겁을 하고 경을 칠일이다. 명예살인까지도 갈 일이다. 실재로 포키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은 눈을 제외하고는 검은색 옷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차도르를 벗은 일은 없었다.

무슬림바울 포키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흰색 옷에 악세서리도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것이 특징이다.
▲ 무슬림 바울 '포키라' 무슬림바울 포키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흰색 옷에 악세서리도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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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를 둘러싼 무슬림과 힌두교도의 노래 '배틀'

이날은 무슬림 바울인 포키르(fakir, 수행자 고행자)도 같이 공연을 했다. 축제의 흥행을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무슬림과 바울의 대결은 외국인인 내게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바울들과 포키르들의 신과 깨달음에 대한 '배틀'이 벌어졌다. 석유시장과 자원을 둘러싼 제국주의의 침략과 자살폭탄테러, 게릴라전 이런 단어들에 익숙한 나에게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신에 대한 공연자들의 노랫말을 듣고 무릎을 치거나 추임새를 넣기도 했고 흥에 겨운 이들은 '호리볼! 호리볼!'(신을 경배하라는 뜻의 추임새, '얼씨구 지화자'와 같은 것)을 외치며 춤을 추었다.

'해도 하나 달도 하나/세상의 진리가 둘 일 수 없듯이/ 신도 하나 알라뿐이다.'(포키르의 노래 중에서)

'나무와 꽃과 새들의 이름이 다르듯/세상의 만물에 모두 다른 정령이 깃들어 있는데/어찌 신이 하나라고 하는가?'(바울의 노래 중에서)

유일신을 섬기는 무슬림과 힌두교의 다신주의의 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힙합 배틀처럼 상대 공연자에 따라 공연자를 배치하는 신경전도 이어졌다. 마치 스포츠감독이 작전을 짜는 것 같았다. 노래가 좋은 사람, 춤을 잘 추는 사람,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 깨달음이 깊은 사람 등등 상대 공연자에 따라서 자기 쪽 공연자를 배치했다. 배틀에 따라 자신들이 밀렸는지 우세했는지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래퍼처럼 대기하고 있는 상대 공연자들 앞으로 다가가 훈계조로 자신의 신앙과 깨달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도 하고 고개를 가로 젓기도 한다.

우리도 불교도와 기독교도가 신의 존재와 깨달음을 놓고 노래와 춤을 통해 배틀을 벌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너무나 경건한 한국사회의 종교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인도서 사귄 바울친구 고우땀부자의 공연, 바울은 천형처럼 대물림되기도 한다.
▲ 대물림 인도서 사귄 바울친구 고우땀부자의 공연, 바울은 천형처럼 대물림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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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전쟁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초저녁에 비교적 젊고 격정적인 젊은 공연자들이 공연을 펼쳤다. 춤사위와 노래에 힘이 있었다. 새벽녘에 가까워 오자 우리로 치면 인간문화재급이 되는 60대들의 원로 바울과 포키르들의 배틀이 벌어졌다. 무게와 중압감이 느껴지는 느린 춤사위에 심오한 철학적 화두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울고 웃었다. 노래라는 방식 외에는 그 어떤 충돌도 없었다. 힌두교도가 대부분이었지만 포키르의 노래를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무슬림들은 힌두교도들에게 자신들의 신을 알리는 최고의 선교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이 무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고로 깨달음이 깊고 음악성이 뛰어나 '바울이 왕'이로고 까지 칭송되는 삼랏(Samlat, 경지에 오른 수행자 혹은 명인) '고울떼빠(남, 65세)'가 있는 천막에는 '빠골'(바보라는 뜻, 출가를 결단하지 못하고 바울공연마다 쫒아 다니는 열성팬을 바울들이 일컫는 속어)과 젊은 바울들이 바글 거린다. 포키르들도 고개를 숙이고 경청한다. 그의 음유시에 넋을 잃는다. 음식을 사다가 드리기도 하고 시주를 하기도 한다. 음식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눈다. 엄마의 뒤를 따라 바울의 길을 선택한 막내바울 로끼(15세, 여)는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다.

바울은 노래로 탁발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수행자다.
▲ 기차안에서 탁발하는 바울 바울은 노래로 탁발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수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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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날을 새워 공연을 구경한다. 혹자들은 인도의 젊은이들은 멜라(축제)를 위해 1년 내내 돈을 모으고 나이가 들어서는 죽어 바라나시에서 화장할 장례비를 모으기 위해 산다고들 한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에게 현생은 잠시 머무르는 여행 같은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미래를 설계하거나 저축을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인도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은 신을 향해 다가가는 몸짓 같은 것이기에 생업을 중단하고 축제에서 노숙하며 몇 날 며칠을 보내는 것은 흔한 모습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나라라면 사회문제가 될 일이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인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부끄럽고 추한 일이다. 신의 세계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알라든 예수든/ 모세든 칼리든/부자든 가난하든/성자든 바보든/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하나며 똑 같다.(바울의 노래 중에서)

사실 바울의 신의 실체는 힌두교의 비쉬누도, 시바도, 크리슈나도 아니고 무슬림의 알라도 아니다. 기독교의 여호와도 아니고 불교의 싯다르타도 아니다. 오직 자신의 내부 심연 깊숙이 숨어 있는 신성(神性)을 발견하고 끌어 내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 속해 있다. 내부에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양존한다.

겨울밤, 공연을 마친 바울과 창문도 없는 빈 창고에서 홋이불을 덥고 잠이든다. 춥다.
▲ 공연을 마치고 겨울밤, 공연을 마친 바울과 창문도 없는 빈 창고에서 홋이불을 덥고 잠이든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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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취한 미치광이 혹은 헛되이 꿈을 쫒는 거렁뱅이'라는 뜻의 바울은 인도의 집시이자 각설이다. 이들은 조각보를 덧대고 꿰매서 만든 로브(robe)라는 옷을 지어 입거나 주황색 옷을 즐겨 입는다. 조각천이 모아져 한 벌의 옷을 이루는 것은 모든 종교와 삼라만상이 인간과 관계를 형성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평생 수염과 머리를 자르지 않기 때문에 마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살았을 원시인처럼 느껴진다.

사당패와 각설이의 뿌리는 바울이다?

깨달음을 설파하는 사람, 각설(覺說)이. 바래고 찢겨져 여기저기 기워 입은 옷 한 벌에 밥 얻어먹을 그릇과 숟가락 하나면 족하다. 그것이 밥통이자 악기였다. 그들은 구걸하지 않았다. 장터와 잔칫집을 떠돌며 가난한 민초들 앞에서 선비들의 나라를 조롱하고 세상의 이치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노래와 춤과 사설의 대가로 밥을 얻어먹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각설이와 비슷하다.

우리로 치면 인간문화재급 원로바울들의 공연은 축제의 막바지, 축제가 최고로 무르익었을때 시작된다.
▲ 최고의 바울, 삼랏들의 공연 우리로 치면 인간문화재급 원로바울들의 공연은 축제의 막바지, 축제가 최고로 무르익었을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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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한국의 유일한 바울 나무는 '생사를 벗어난 진리의 세속화, 원효대사의 무애가와 무애춤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와 '디티람브(dithyramb,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찬가)'가 그랬을 것이다. 그들의 노래와 춤은 바울의 수행이고 대화의 표현방식이다. 바울의 노래를 알지 못했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적 영감의 원천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타고르의 문학은 바울의 깨달음의 노래와 춤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일부 바울들은 우리나라의 원효대사의 무애가(無碍歌)부터 시작해서 사당패나 각설이까지 바울이 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원효가 파계하여 설총을 낳았을 때 광대들이 두드리고 노는 바가지를 무애라 칭했다고 한다. 이는 화엄경의 일체무인 일도출생사(一切無人 一道出生死 일체의 구속됨을 버린 사람은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미친 중' 원효는 이 무애(바가지)를 들고 두드리고 노래하고, 여기에 밥 얻어먹으며, 마을을 떠돌아 사람들에게 불교를 널리 전했다. 이때부터 불교는 귀족과 기득권의 종교가 아니었다. 마치 바울 같다.

중국과 일본, 캐나다 출신 바울들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노래하는 외국인 바울들 중국과 일본, 캐나다 출신 바울들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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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경전이 없다. 따라서 수행의 비밀과 결과물은 노래에 담는다. 그 노래 또한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광기에 가득 차 있다. 그때그때마다 깨달음의 내용이 다르므로 같은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은 없다. 한편의 시(詩)를 64가지 이상으로 부를 수 있어야 진정한 바울로 평가 받는다. 그래서 모든 바울은 시인이자 철학자이다. 악보도 없다. 모든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수천년 동안 그래왔다. 그래서 스승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그들의 춤도 형식이 없었다. 캥거루처럼 '통통' 뛰기도 하고 중심을 잃은 것처럼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한쪽 다리를 잃은 방아깨비처럼 그 자리를 뱅뱅 돌기도 한다. 그들의 내면에서 이는 신성과 깨달음의 카타르시스를 즉흥적이고 광적인 절정으로 표현한다.

인도 전통악기를 제작해 벼룩시장에서 판매하는 바울, 이 바울은 경찰출신이다.
▲ 악기를 파는 바울 인도 전통악기를 제작해 벼룩시장에서 판매하는 바울, 이 바울은 경찰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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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악기는 우리의 해금과 흡사한 외줄 악기인 엑따라가 기본이다. 그밖에 둑기, 아논도 꼴로딸, 로호리, 도따라와 같은 악기도 같이 연주된다. 수행자의 음악이 은은하고 잔잔해야 한다는 내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난잡하고 시끄럽다. 정신 사납고 사람을 왠지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두통이 밀려오기도 한다. 바울의 악기는 사람의 심연에 자리 잡은 신성을 깨우고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 불편함에서 시작되는 격정이 이성뿐만 아니라 본성을 깨우는 것 같다.

이렇게 잠깐 떠난 축제구경은 삼일 밤을 새고서야 끝났다. 수지따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을 직원들에게 맡겨 두고 우리보다 이틀을 더 있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렌터카 기사는 돌려보내 버렸고 일행들 중 아무도 돌아가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렌터카와 함께 화장지도 사라졌다.

인도바울 숏도난다와 일본 출신 바울 호리다시 부부가 방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인도+일본, 다국적 바울부부 인도바울 숏도난다와 일본 출신 바울 호리다시 부부가 방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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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범벅된 옷은 갈아입지도 못했고 결국은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수건으로 대충 가리고 속옷을 빨고 샤워를 했다. 밤이 되면 밀려드는 추위와 모기로 시달렸다. 볏짚 위에 돗자리를 깐 천막에서 바울들에게 빌린 모포 하나를 덮고 뒤섞여 인도인 특유의 노릿한 커리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공연과 상관 없이 바울들은 밤새도록 천막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삼일째 되던 날 더 이상 노랫소리는 귀에 들려오지 않았고 나는 단잠을 잤다. 포크나 숟가락의 호사는 더 이상 없었다. 바나나 잎으로 만든 그릇에 남은 밥풀 하나까지 오른손으로 긁어 먹었다. 화장실에서는 화장지 대신 왼손을 사용했다. 생수대신 수돗물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3일 내내 설사에 시달렸다. 약국이 없었으므로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다(이 설사는 근 2주를 갔다).

사생활을 중요시 여기는 개인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인 나는 그것이 인도에서 얼마나 불편하고 비정상적인가를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경에 있었던 여행입니다.



태그:#인도, #바울, #캘커타, #멜라, #무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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