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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운전한다.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운전한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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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라버 플레인(Nullarbor Plain)을 운전하며 숙박할 곳을 찾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다. 텐트를 칠 만한 장소도 없으며 요구하는 금액이 너무 비싸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그냥 가자, 가다가 무료로 쉴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 물통에 물도 가득 있다. 저녁은 주유소에서 햄버거로 해결한다. 휘발유도 가득 넣고 다시 길을 떠난다. '광야를 달려가는 카우보이'라는 옛날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도로 표지판에는 이 도로가 세계에서 가장 긴 일직선 도로라고 적혀 있다. 약 150킬로미터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도로다. 핸들을 똑바로 잡고 있으면 150킬로를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도로라는 이야기다. 한번 속도를 내며 달려보고 싶은 도로다.

그러나 서부호주(Western Australia)는 속도 제한이 있다. 여유 있게 120킬로로 달린다.

지는 해를 향해 서쪽으로 계속 달린다. 해는 저물어 가는 데 마땅히 잘 곳을 찾지 못한다. 캐러밴을 끌고 다니는 자동차들이 화장실 시설이 있는 야영장에 주차해 있는 광경이 띄엄띄엄 보인다. 피곤하면 차에서 잘 생각으로 천천히 밤길을 달렸다.

잠잘 곳이 많지 않은 눌라버 플레인에는 여행객에게 샤워만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주유소가 있다.
 잠잘 곳이 많지 않은 눌라버 플레인에는 여행객에게 샤워만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주유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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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달리는 방향인 서부에 시커먼 비구름이 보인다. 밖의 공기도 습기를 잔뜩 먹은 습한 바람이다. 예상 대로 천둥 몇 번 치더니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날이 저물어 불빛 하나 없는 도로다. 지나다니는 차도 보이지 않는다. 좁은 산길로 들어선 지 오래되었으나 어디쯤 가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바람이 너무 심해 천천히 서행을 하며 운전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강한 비바람이 치고 간다. 이렇게 강한 비바람을 도로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다. 

잔뜩 긴장하며 운전을 한다. 30여 분간을 비바람과 씨름을 해가며 운전을 하다 보니 비바람이 조금 잦아든다. 도로에는 심한 비바람이 지나간 것을 이야기해 주듯이 나무가 쓰러져 있고, 나뭇가지들이 즐비하게 길가에 널려 있다. 저 나무가 내 차 위로 넘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런 비바람 속에 운전하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캥거루도 놀랐는지 도로에 나와 있다. 차가 오는데도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캥거루를 피해 운전을 해야만 했다. 유난히 캥거루가 자주 도로에 나와 캥거루를 조심하며 밤길을 운전하다, 여행객을 위해 자동차가 쉴 수 있는 조그만 공터가 있어 차를 세우고 오늘 밤은 이곳에서 지내기로 한다. 아침에 길을 떠나고 나서 오늘 하루 달린 거리가 1,200킬로 이상이다. 자동차도 좀 쉬어야지….

자동차에서 새우잠을 자고 일어난 찌뿌듯한 몸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또다시 길을 떠났다. 라디오에서는 태풍이 불어 지붕이 날아가고 나무가 쓰러져 도로가 막히는 등 피해가 컸다는 뉴스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침 날씨는 언제 태풍이 불었느냐는 듯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태양이 비추고 있다.

어젯밤의 폭풍우를 말끔히 씻어낸 산뜻한 서부 호주의 아침
 어젯밤의 폭풍우를 말끔히 씻어낸 산뜻한 서부 호주의 아침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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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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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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