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내 윗밭에서 곡괭이와 삽을 동원해 호박-밤고구마를 캐고나니, 허리와 팔다리가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5년 넘게 잘써온 안경도 힘겨웠는지 그만 콧대가 소리도 없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누가 밟거나 충격을 준 것도 아닌데, 안경다리에 손을 댄 것만으로 타원형의 안경알을 톡하고 떨궈내더군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한 안경, 16년 동안 농구-축구하다 길바닥에 떨어뜨려 깨먹고 방바닥에 놓아둔 것을 모르고 발로 밟아 깨먹은 안경만 해도 너댓 개는 족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안경잽이'라고는 혼자라 안경에 대한 애착과 관리는 참 유별났습니다. 작은 먼지 하나 안경알에 붙어있는 꼴을 보지 못해, 안경닦이 수건으로 '쓱쓱' 닦고 비눗물로 '싹싹' 닦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도 닦는 수행자처럼 안경을 닦아서 그런지, 안경 테두리도 어느새 닳아버렸나 봅니다.
간혹 이런 저를 보고 어머니는 "새로 안경 하나 맞춰써라… 얼마나 된다고…"고 핀잔을 주셨습니다. 가뜩이나 눈도 안좋은데 구닥다리 안경을 쓰고 다닌다고 말입니다.
암튼 다행이 여분의 안경이 있었는데, 이 뿔테안경은 렌즈가 햇빛을 받으면 선글라스처럼 회색으로 변하고 실내에서는 투명하게 변했습니다. 망가진 안경보다 도수가 있어 그간 사용치 않고,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것을 써봤는데 살짝 어지럼이 있어 오래 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추위를 몰고온 거센 가을비가 그친 뒤, 도서관에 가는 길에 안경점에 들렀습니다. 전날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경테를 무려 50%나 할인해 준다는 안경점 두곳에 들러 맘에 드는 안경테를 우선 봐두었습니다.
그 중 한 곳을 택해 안경을 새로 맞췄습니다. 무심하게 안경알이 빠진 안경을 챙겨 가져와서는 점원에게 보여주고, 참 오랜만에 시력검사를 하고 제 눈에 맞는 도수를 찾아 렌즈를 선택했습니다. 지금껏 만나봤던 안경점 점원 중 가장 친절한 이는 4만5천 원하는 안경테를 2만 원에, 2만5천 원하는 자외선 100% 차단 코팅렌즈를 2만 원에 해줬습니다.
그렇게 거금 4만 원을 주고 새로 얻은 눈은 흐리멍텅했던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아참 안경 맞출 때 알게된 것인데, 시력이 0.1이라고 하고 안경을 착용하면 0.7-0.8 정도 된다 하더군요.
남은 생도 천상 안경 없이는 못 사는 안경잽이로 살아야하고, 옛사람들이 왜 눈을 오복 중에 하나라고 했는지 실감케 했습니다. 당신의 눈과 안경은 편안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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