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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불독 같아. 한 번 물면 절대 안 놓거든."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한 관계자는 박주식 <광양신문> 편집국장을 '불독'이라고 했다. '기자 박주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환경운동가 박주식'이 그렇다는 거다. 단위 제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광양제철소의 최고 책임자도 그에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지난 2005년 5월 4일 당시 광양제철소장이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확약서 한 장을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에 보냈다. 확약서에는 ▲ 환경개선협의회 구성 ▲ 환경조사 실시 ▲ 민·산·관 환경협약 체결 ▲ 환경정보의 신속한 공개 ▲ 연간 환경보고서 발간 및 배포 ▲ 불측 환경사고 대책 및 환경훼손 복원 등 10개 항목이 담여 있었다.

 

철강 산업은 환경 문제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함부로 '약속'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광양제철소장이 직접 환경단체에게 공식 문서로 된 '확약서'를 보낸 것은 포스코 40여년 역사에 있어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정준양 회장으로부터 문제의 그 '확약서'를 받아낸 주인공이 바로 박주식 국장이다. 당시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었던 박 국장이 포스코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지난한 1년간의 싸움 끝에 얻어낸 첫 쾌거였다.

 

"포스코와 싸운다니까, '미쳤다'고 하더라"

 

박주식 국장과 포스코의 싸움은 2003년 광양제철소의 345kv 송전선 건설부터 시작된다. 이후 광양제철소가 독극물인 시안이 함유된 응축수를 섬진강 하구에 무단 방류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 국장은 가장 심각한 문제인 대기오염 자료까지 조사해 광양제철소가 야기하고 있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광양지역 내에서 포스코와 싸우는 것은 처음부터 녹록치 않았다. '광양제철소 때문에 (동)광양이 만들어졌다'는 말이 무색치 않을 정도로 지역에 대한 광양제철소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지방 재정의 약 50%를 담당하는 것은 물론 74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그 직원들의 가족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따지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광양환경운동연합의 일부 임원들도조차 포스코와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를 맺고 있었다.

 

박 국장은 "광양시민들과 함께 싸우고 싶어도 안 되더라"며 "내가 싸움을 시작하니까,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하라'며 말렸고, 나중에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즈음 중앙환경운동연합은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산단 기업 감시 운동'을 특별사업으로 채택했다. 중앙과 전국조직이 함께 기업 감시 운동을 진행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박 국장은 곧바로 지역에서 모아뒀던 모든 자료를 싸들고 서울로 향했다. 2004년 4월 29일 박 국장은 중앙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소리 없이 환경을 파괴하는 최악의 공해기업 포스코'라는 제목의 고발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박 국장의 '대 포스코 투쟁'은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포스코 측은 "법적 규제 이하의 배출과 환경 투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환경운동연합의 문제 제기는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격에 나섰다. "괜한 생트집 잡지 말라"며 자신들의 환경오염 행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박 국장은 "당시 포스코는 환경운동연합의 요구를 수용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했고, 그나마 몇 차례 열리던 회의도 시간끌기로 일관했다"며 "포스코와 더 이상의 협상을 보류하고 그들의 잘못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강력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광양시내와 광양제철소 입구에서 1인 시위를 시작으로, 포스코 서울사무소 상경시위, 국회 앞 1인 시위, 환경부장관 면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 접촉, 광양제철소장 항의 방문, 전국 53개 지역조직 사무국 처장단 광양제철소 본부 앞 집회, 포스코 환경 파괴에 대한 대 시민 전단지 홍보활동 등 박 국장은 포스코가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며 광양과 전국을 누볐다.

 

'정준양 확약서'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런 와중에 두 가지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첫 번째는 광양제철소로부터 1킬로미터 반경에 있는 태인동 주민들이 피부질환 등을 호소하며 광양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고, 급기야 주민건강역학조사를 하게 된 것이다. 조사 결과는 상당히 심각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조사 결과 광양제철소 오염물질 배출로 주민 2명 중 한 명이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는 전국대비 5배나 높고, 특히 15~19세 청소년(남)의 경우 만성호흡기 질환이 전국대비 무려 53.8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

 

특히 조사연구팀은 이처럼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건강상의 질병들이 광양제철소의 오염원 배출로 인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박 국장과 환경운동연합의 주장이 사실이며 광양제철소의 오염원 배출로 주변지역 주민들이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빈손으로 싸우던 박 국장에서 든든한 '무기'가 생긴 것이다. 이 조사 결과는 두 번째 의미 있는 사건을 만드는 발판이 됐다.

 

박 국장은 조사 결과를 들고 우원식 전 민주당 의원,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 박희태 전 한나라당 의원 등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찾아갔다. 결국 200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광양제철소장이었던 정준양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민영화된 이후 국정감사장에 처음 서게 된 포스코로서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정준양 회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동안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환경 파괴 실태와 인근지역 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방치를 질책했고, 환경 개선을 위한 포스코의 대책 등을 추궁했다. 결국 정준양 회장은 광양제철소가 환경오염과 주변지역에 피해를 끼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후 성실한 협의와 환경 개선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다음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나온 주요 발언이다.

 

김영주 위원: "청산가리는 섭취하면 온몸을 마비시켜 수초 안에 사람을 죽게 하는 독극성 화학물질이고……. 그런데 이러한 물질들이 연간 1000kg씩 광양 대기와 바다로 버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문가 의견에 의하면 대부분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배출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증인 정준양: "인정합니다."

 

김영주 위원: "포스코가 진정 환경친화적 기업이라면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도 져야 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하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증인 정준양: "어제 또 오늘 제철소에서도 그랬고 위원님들이 여기 들어오실 때도 환경운동연합에서 여러 가지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국민기업인 광양제철소로서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광양만권 전체 지자체, 시민단체와 서로 협의하겠고, 지금 광양시에서 협력위원회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니까, 거기에 적극 참여해 가지고 풀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원식 위원: "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광양이 산성비 농도가 ph4.6인데 전국에서 1위입니다. 오존오염도도 비교해 보면 서울은 0.014ppm인데 광양은 0.028ppm으로 두 배입니다. 무슨 노력을 했다는 거예요? 어디서 뭘 저감을 시켰습니까?"

 

증인 정준양: "저희가 우선 SOx에 대해서는 원료탄을 황성분이 적은 탄으로 계속 갈아서 쓰는 노력을 하고 있고……."

 

우원식 위원: "그런 것 말고 노력을 하면 부하량이 줄어야 될 것 아니에요? 늘어나고 있는데 무슨 노력을 했다는 거예요?"

 

증인 정준양: "죄송합니다."

 

우원식 위원: "그동안 광양제철소가 해 온 걸 보니까, 2000년부터 4년 동안 매년 관계기관의 지도점검을 받고 있고 그리고 4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고……. 포스코는 그냥 걸리면 벌금으로 때우고 시설은 그대로 두고, 물론 걸릴 경우에 부과되는 부과금이 적기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걸릴 때 걸리더라도 그냥 때우고 간다는 생각 아닙니까? 걸릴 때마다 대비를 해 왔습니까?

 

증인 정준양: "그 건에 대해서는 저희가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우원식 위원: "하여튼 제가 이번에 포스코 문제를 다루면서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환경 문제에 있어서 정말 둔감할 뿐 아니라 좀 심하게 얘기하면 철면피다, 이런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들어올 때 지역주민들이 플래카드 걸고 있었는데, (증인은) 그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뻔뻔하게 하면서 미안하다고 생각할 게 뭐 있습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우면 저렇게 나와서 하겠어요?"

 

비판 기사 썼다고 광고 끊었던 포스코 "박 국장, 잘 부탁합니다"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 정준양 회장은 광양환경운동연합 임원들을 만나 공식 사과했고, 광양만 환경조사와 환경협의체 구성, 민·산·관 협약 체결 등을 진행키로 하는 큰 틀에서의 합의가 이뤄졌다. 2개월 후에는 정준양 회장의 유감표명 내용을 담은 공문이 환경단체에 발송됐고, 이듬해 4월 실무협의회를 통해 '확약서'의 원안이 만들어졌다.

 

박 국장은 "당시 정준양 소장이 확약서를 제출한 것은 그동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식조차 못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문제를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겠다는 전향적 변화를 보인 면에서 큰 의미가 컸다"고 평가했다.

 

박 국장은 이후 환경운동단체에서 나와 언론인의 길을 걷지만, 포스코와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지면에 쏟아내는 주요 기사는 환경 문제이며, 포스코가 단골 메뉴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자리만 바뀌었을 뿐 그의 기업 감시 운동은 계속 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 국장은 지난 8월경 '우리광양시 우리포스코 허와 실'이라는 연재기사를 내보냈다가 포스코로부터 광고 중단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오는 19일 영산강유역환경청에 대한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에서는 상황이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23일 발생한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 때문에 포스코가 5년 만에 다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다. 공교롭게도 5년 전 포스코를 국감 증인으로 불러 세웠던 박 국장도 이번에는 참고인 자격으로 국감장에 직접 서게 됐다. 포스코로서는 '눈엣 가시' 같을 박 국장이지만, 그가 참고인이라는 점 때문에 안면이 있는 포스코 직원들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박 국장은 "정준양 회장이 스스로 약속했던 확약서만 제대로 이행했더라면 포스코가 또다시 국정감사장에 나올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기업은 환경친화적 공정이 더 경쟁력 있는 상품이라는 생각과 이에 대한 주민의 감시체계를 보장할 때 진정한 환경친화기업 이미지가 만들어 진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태그:#포스코 광양제철소, #박주식 광양신문 편집국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정준양 확약서,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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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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