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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조강 생산 능력을 보유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그러나 광양만은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50일 전 발생한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는 인재였다. 쪽빛 바다를 흑빛으로 만든 폐기물 침출수는 환경 대재앙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고로 광양제철소 동호안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사고 원인과 대책을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말]
정준양 포스코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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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제가 좀 피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포스코가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더욱더 강하게 갖고 좀 더 전향적이고,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2004년 10월 영산강환경관리청을 대상으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증인 정준양'이 한 말이다. 국회 환노위는 광양만 환경오염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당시 광양제철소장이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6개월 뒤 정준양 회장은 광양시민과 환경운동연합에 10가지 조항의 '확약서'를 제출했다. 광양제철소 주변에 대한 환경영향조사와 환경협약 체결, 불측 환경사고에 대비한 대책수립 등이 골자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나도록 확약서의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광양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정준양 회장이 확약서만 제대로 이행했더라면 지난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나 오폐수 누출 같은 환경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포스코가 환경문제로 곤경에 처했을 때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약속까지 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발뺌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오는 19일 포스코는 5년 만에 다시 국정감사 증인대에 서게 된다. 조뇌하 광양제철소장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 공교롭게도 정 회장이 이명박 정권의 인사 개입 논란 속에서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한 지 8개월만이다. 포스코가 이번에는 어떤 묘책으로 상황을 피해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광양주민과의 약속도 못 지키면서 '녹색경영'?

올 2월말 취임한 정준양 회장은 열린경영, 창조경영과 더불어 환경경영을 3대 경영이념으로 채택했다. "환경경영은 철강 산업이 당연히 추구해야 할 윤리"(2008 지속가능성 보고서 CEO 메시지)라는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 7월 'Global Green Growth Leader'라는 비전 아래 CEO직속부서로 '범포스코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또한 범포스코 녹색성장 마스터플랜도 수립할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전형적인 현장 중심의 엔지니어 출신인 정 회장은 환경 문제와 관련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광양제철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돼, 포스코의 환경파괴 사례를 열거하는 의원들 앞에서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 회장이 광양시민들과 환경운동연합에게 제출한 확약서가 갖는 의미는 크다.

하지만 확약서의 이행 실적이 미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녹색경영' 행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포스코 측은 '확약서를 100% 이행했다'고 주장하지만, 환경시민단체측은 "광양만 지역의 환경개선 노력은 포스코 측의 무성의와 태만으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빠져 있다"고 성토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지난 2005년 광양시민과 환경운동연합에 제출한 확약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지난 2005년 광양시민과 환경운동연합에 제출한 확약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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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확약서의 8, 9번 조항에 따라 광양제철소장을 대표로 한 6인과 광양환경운동연합을 대표로 한 6인이 모여 2005년 5월 말 환경개선협의회를 구성했다. 이후 환경개선협의회의 실무추진기구인 실행위원회는 1번 조항에서 제시된 환경영향조사(오염물질, 확산정도, 환경영향, 생태계영향, 농수산물영향 및 기타 필요사항) 및 조사팀 구성과 조사기간 및 규모 등에 대해 조사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지난 20여 년 동안 매년 수십억 원의 비용을 들여 포항과 광양 인근지역의 환경현황을 조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포스코는 조사 결과 중 유리한 것은 공개하면서도 불리한 것은 대외비라며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에게 열람할 수 없도록 했다는 불만을 사왔다.

그동안은 포스코가 원하는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원하는 방식으로 조사 분석을 했다면, 새롭게 구성된 환경개선협의회에서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의 의견을 대폭 받아들여 진행하게 된 것이다. 앞서 정준양 회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자체, 시민단체와 서로 협의하겠다"고 의원들에게 약속한 취지를 살린 셈이다.

실제 같은 해 8월 중순 열린 5차 회의까지 합의된 광양만 지역 환경조사 계획은 그동안 포스코가 독자적으로 시행해 온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추진됐다. 그러나 포스코 측은 6차 회의에서 태도가 돌변했다. 수질해양, 토양 분야의 책임자를 자신들이 동의하는 전문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입장을 바꾼 것.

환경단체측은 "포스코 측의 태도는 지역주민과 피해자의 입장이나 환경단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며,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연구만 진행하겠다는 아집과 독선에 다름 아니다"며 즉각 반발했다. 양측은 연구진 구성과 조사 규모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면서 1년 6개월 동안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결국 포스코가 원하는 연구진과 방식으로 조사를 실시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12월 발표된 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기존 조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왔다. 당시 실행위원회에 참여했던 박주식 전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현 광양신문 편집국장)은 "포스코가 광양만의 오염원이 되고 있어서 세밀한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기초조사 수준에 머물면서 애초 목표했던 것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포스코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심지어 조사에 참여했던 연구진들조차도 조사의 방법과 규모 등 한계를 지적하며 2차 조사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나섰다. 당시 조사 총괄책임연구원을 맡았던 최상원 전남대 교수는 조사 결과 설명회에서 "365일 중 단 며칠의 모니터 결과를 가지고 광양만권 환경조사 결과라고 하긴 어렵다"면서 "불만적인 요소가 많다. 전체적, 체계적인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환경단체 측의 2차 조사 요구에 대해 포스코 측은 "광양시가 주관하는 '환경 센터'가 구성되면 그 안에서 참여단체와 함께 협의해 시행하자"며 유보시켰다. 하지만 올 상반기 중 설립을 목표로 추진됐던 '그린 광양만권환경센터'는 정작 포스코 측이 '현금 재정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사실상 백지화된 상태다. 이에 따라 환경단체는 지난 1일 포스코 측에 공문을 보내 "2차 조사를 즉시 이행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보냈다.

광양어민회, 광양환경운동연합 등 5개 단체는 지난 9월 16일 '포스코 동호사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지난 8월 23일 발생한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에 대한 포스코 측의 사과와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광양어민회, 광양환경운동연합 등 5개 단체는 지난 9월 16일 '포스코 동호사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지난 8월 23일 발생한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에 대한 포스코 측의 사과와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 광양어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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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약서 못 지켰다면 국회의원과의 약속 위반"

환경영향조사의 목적은 결국 포스코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확약서 4번 조항은 '지방자치단체와의 환경협약을 환경운동연합 참여 하에 2005년에 체결하며 이를 위해 당해 상반기 중에 운영사례 조사 등 실시계획을 수립한다"고 돼 있다. 환경영향조사는 사실 환경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전단계인 셈이다. 하지만 포스코의 "무성의와 태만"으로 환경영향조사가 마무리 되지 못하면서 환경협약은 4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 측은 2번 조항과 관련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2회에 걸쳐 광양제철소 환경관리현황 설명회를 개최했고 전광판을 통해 주요설비의 오염물질 배출농도를 공개하고 있다"며 확약서의 이행 실적을 내세웠다.  

포스코 측은 또 "광양제철소 환경조사 및 환경현황 설명회 결과에 따른 환경복원 및 대책 수립과 공정개선을 실시한다"는 3번 조항과 관련 "총량저감을 위한 환경설비 투자사업을 시행했다"며 지난 2007년 설치한 소결 배가스 청정설비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박주식 전 사무국장은 "포스코가 시설 개선을 많이 하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환경을 위해서 했다기 보다는 회사 입장에서 할 수밖에 없는 공정 개선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2005년까지는 규제받지 않던 다이옥신의 경우 환경부가 규제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포스코로서는 어쩔 수 없이 농도를 스스로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번 조항은 "광양제철소 환경정보를 신속하게 최대한 공개하며,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보고서를 년 1회 발간, 배포한다"고 돼 있다. 이와 관련 포스코 측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해 배포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백성호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의 환경보고서가 아닌, 포스코의 자체 홍보책자에 환경관련 분야 일부만 수록된 자료"라며 "별도의 광양제철소 환경 백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그 당시 정준양 회장도 그런 개념의 확약서라는 것을 이해하고 사인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6번 조항과 관련해서도 포스코 측은 "제철소 자체 환경진단반을 구성해 환경설비 적정운영 여부를 집중점검 했다"고 밝혔지만, 환경단체측은 "환경 사고를 미리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났을 대 바로 공개해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그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오해나 의혹을 받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백성호 사무국장은 "어디까지 예측 가능하냐는 점에서 포스코는 부담스러웠겠지만, (광양시민들에게) 확약한 대로 제대로 오염원을 공개해서 미리 환경 사고에 대비했더라면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 같은 환경재앙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백 국장은 이어 "환경단체와 포스코가 체결한 확약서는 한 번의 시행으로 끝나는 단발성 약속이 아니다"며 "광양제철소가 운영되는 동안, 책임자가 바뀐다고 해도 서로가 환경에 대해 성실하게 협의하고 이행할 것을 약속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4년 정준양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해 국정감사를 진행했던 우원식 전 민주당 의원은 "당시 정 회장은 포스코의 환경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시민단체나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확약했다"며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국정감사 당시 국회의원들에게 했던 약속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포스코 광양제철소, #정준양 회장, #국정감사 증인, #동호안 붕괴 사고, #정준양의 확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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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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