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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 찾아가는 길

 

가을. 까슬까슬 햇살이 너무나 좋다. 벌교를 지나 구불구불한 뱀재를 넘어 고흥반도로 들어선다. 섬도 아니면서 마치 섬처럼 생각되는 곳. 복주머니 마냥 잘록한 허리를 가졌다. 시원하게 뻗은 15번 국도를 따라 운암산 수도암으로 향한다.

 

고흥읍 조금 못 미쳐서 운곡마을을 찾아간다. 길을 잃어 운암관광농원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되돌아 나온다. 초행길이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운곡마을을 지나고 산자락으로 따라 들어가니 돌무지 탑이 서있는 수도암 입구가 나온다.

 

쑥부쟁이가 피어있는 임도를 따라서

 

수도암 주차장 옆으로 넓은 임도가 있다. 산행을 위해 임도를 따라 걸어간다. 임도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차바퀴가 지나간 곳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 임도 위로 선명하게 난 두 줄은 영영 만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길가로 쑥부쟁이가 햇살을 가득 받고 있다. 연한 보랏빛. 활짝 핀 꽃이지만 애처롭게 느껴진다. 하늘하늘 연약한 꽃대 위해 커다란 꽃을 달고 있는 모습.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쑥부쟁이. 마음이 바짝 마른 가을, 길가 양지바른 곳에 피어서 그리운 사람을 아직도 기다리나 보다.

 

옛날 쑥을 캐는 대장장이 딸이래서 쑥부쟁이랬지. 순진해서 첫눈에 반한 사냥꾼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연모했다네. 그러던 어느 날 쑥을 캐러갔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지. 그곳에는 연한 보랏빛 꽃이 피어났다지.

 

욕심 없는 산. 여유로운 산길

 

중섯재 삼거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간간히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풀냄새가 상큼하다. 너무나 좋다.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풀들의 향기. 꽃만 향기를 담은 건 아니다. 산길은 완만하게 올라간다. 햇살 가득한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가는 길이 좋다. 길가로 하얀 구절초가 소담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피어있다.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올라서니 병풍바위. 병풍바위를 지나니 산길은 해안가 산들에 군락으로 자라는 소사나무 숲길이다. 햇살이 빗방울처럼 스며드는 숲길을 걷는다. 가을 산길. 서둘러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여유롭게 산길을 걷는다.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 운암산(雲岩山) 정상(487m)에 선다. 정상은 나무로 둘러쳐져 주변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바다가 보일 것을 기대했는데… 정상 표지석도 세우지 않았다. 대신 나무 팻말을 달아놓은 욕심 없는 산이다. 잠시 쉬었다가 내려선다. 왼편으로 팔영산이 보이고 올망졸망한 산들이 이어간다.

 

잠깐의 바위능선 길. 돌출된 끝자락에 서니 산 아래가 내려다보인다. 산들 사이로 황금빛 들판이 보이고, 그 너머로 바다가 이어진다. 시원하다. 잠시 쉬었다 간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게 내려간다. 볏바위라고 알려주는 커다란 바위를 지나고 임도로 내려선다. 힘들지 않은 산. 적당한 산행거리. 따사로운 햇살. 너무나 좋다. 다시 수도암 입구로 돌아왔다.

 

긴 숲길을 따라 올라선 작은 암자

 

수도암(修道庵)으로 향한다. 길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조금 아쉽다. 하지만 하늘을 가린 숲이 울창하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길은 부드럽게 가다가 심하게 구불거린다. 마치 커다란 뱀이 수도암을 향해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지름길이 있을 것도 같은데. 여유로운 사람들만 다녔나 보다.

 

 

기도하는 나무도 있다. 나무속이 상처가 났는데 그 모양이 마치 기도하는 사람 같다. 20여분 쉬엄쉬엄 걸었을까. 구불거리는 길은 막바지 춤을 추더니 작은 암자와 만난다. 들어가는 문이 편안하다. 마치 시골집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절집임을 알려주는 현판이 없다면…

 

문으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 건너 아담한 대웅전이 있다. 수도암은 비록 작은 암자지만 고려시대에 명승 도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암자다. 양편으로 요사가 마당을 감싸고 있다. 대웅전 문은 닫혔다. 조용하다. 문을 열어본다.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다. 작은 대웅전에 작은 불상. 산 속 깊은 암자에 잘 어울린다.

 

 

대웅전 뒤 우물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절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무루전(無漏殿)으로 올라선다. 번뇌가 없는 곳. 너무나 조용한 암자 풍경에 모든 번뇌가 흩어져 버린다. 산마루로 다가서는 햇살이 아쉬운 듯 절집을 감싸고 돌아나간다.


태그:#수도암, #운암산, #쑥부쟁이, #고흥,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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