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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두레생협에서 주최한 '벼 베기 체험' 기념사진을 황금들판에서 찍었다.
▲ 단체사진 안성두레생협에서 주최한 '벼 베기 체험' 기념사진을 황금들판에서 찍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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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안성 양성면 덕봉리 마을 들녘에서 알찬 곡식만큼이나 알찬 추억을 만든 이들이 있다. 안성두레생협 식구들과 지원한 가정들이 모여서 만든 '벼베기 체험' 한마당 속으로 가보자.

메뚜기 잡아도 보고, 볶아 먹어도 보고

평온한 가을 황금들판, 갑작스런 인기척에 메뚜기들이 놀랐다. 아이들에겐 조용히 접근해야 메뚜기들이 도망가지 않는다는 기본 전술이 애당초 없다. 메뚜기를 잡아보겠다는 의욕이 앞서고, 가을 산들바람에 기분이 들뜬 아이들은 입은 왁자지껄, 몸은 야단법석. 메뚜기더러 잡히지 말고 도망가라고 친절하게 미리 광고를 한 탓에 메뚜기들은 이미 아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일행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용히 메뚜기를 잡던 몇몇 어른과 아이들이 횡재했다. 드디어 아이들 중 한 명이 "메뚜기 잡았다"라며 외치는 소리가 들판을 뒤흔든다. 마치 심마니가 온 산을 헤매다가 산삼을 본 후 "심봤다"를  외치듯. 의기양양하게 그 메뚜기를 준비해간 PET병 속으로 골인시키고. 이에 잡지 못한 아이들은 더욱 애가 탄다. 잡다가 결국 직접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한 아이는 "아저씨, 저도 메뚜기 좀 잡아주세요"라며 농부 아저씨에게 부탁한다. 어떤 아이들은 메뚜기가 잡히지 않자 아예 포기하고 들판을 메뚜기처럼 신나게 뛰어나기도 한다.

지금 황금들판에서 메뚜기를 잡고 있는 중이다.
▲ 메뚜기 잡기 지금 황금들판에서 메뚜기를 잡고 있는 중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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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들판에서 아이들과 함께 잡은 메뚜기를 고소한 기름을 넣고 볶는 중이다. 물론 볶아서 모두들 나눠 먹었다.
▲ 메뚜기 볶기 오전에 들판에서 아이들과 함께 잡은 메뚜기를 고소한 기름을 넣고 볶는 중이다. 물론 볶아서 모두들 나눠 먹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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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본인들이 잡은 메뚜기를 어떻게 할까. 그렇다. 점심시간쯤에 메뚜기요리 파티가 시작된다. 요리라고 하니 뭐 거창하지만, 사실 고소한 기름 넣고 프라이팬에 볶은 것. 갓 볶아낸 메뚜기요리 냄새에 어른들은 어린 시절 추억에 젖는다. 아이들 중에서도 작년에 이미 경험해본 아이들은 "나 저거 먹을 줄 아는데"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어떤 아이는 끝끝내 징그럽다며 메뚜기 시식에 불참한다.   

벼 베는 것도 재밌고, 벼 타작도 재밌고

'벼를 벨 땐 손이 다치지 않도록 하고, 낫의 각도는 이정도로 하고' 등등. 안내자가 주의사항을 전달해도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논둑을 걸어 벌써 벼 베는 자리에 저만치 가 있다. 시작하라는 신호와 함께 온 가족이 낫을 들고 벼와 한판 승부에 들어간다. 아무리 낫을 들고 베는 거라도 처음부터 그리 녹록치 않다.

낫의 개수가 한계가 있어 순서를 기다릴라 치면 서로 먼저 해보려고 아이들은 난리다. 아이들에겐 쌀이 열리는 '쌀나무'일 수도 있는 것이 자신들의 손으로 베어지니 신기하다. 어설픈 낫질에 혹시나 하는 걱정은 걱정일 뿐.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도 벼를 베 낸다. 어떤 아이들은 "이제 그만"이라는 신호가 떨어져도 한사코 벼를 벤다. 재미 붙인 게다. 그렇게 자신이 벤 벼는 자신이 직접 들고 가서 타작해야 한다는 안내자의 말을 잠시 깜박했다.

벼를 베려고 동생이 낫을 대며 잡아당긴다. 잘 베어지지 않자 누나는 동생의 허리를 잡고 힘을 보태고, 그 옆에서 다른 동생은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다. 벼를 베는 게 아니라 거의 쥐어 뜯는 수준이지만, 소중한 체험이리라.
▲ 벼 베기 벼를 베려고 동생이 낫을 대며 잡아당긴다. 잘 베어지지 않자 누나는 동생의 허리를 잡고 힘을 보태고, 그 옆에서 다른 동생은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다. 벼를 베는 게 아니라 거의 쥐어 뜯는 수준이지만, 소중한 체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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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벤 나락을 가슴에 한아름 안고 타작마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 추수꾼들 자신이 벤 나락을 가슴에 한아름 안고 타작마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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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수동 탈곡기로 자신이 직접 벤 벼를 탈곡하고 있다. 발은 타작기를 돌리고, 손은 벼를 턴다. 아마도 이날 경험 중 제일 색다른 경험이었으리라.
▲ 탈곡 옛날 수동 탈곡기로 자신이 직접 벤 벼를 탈곡하고 있다. 발은 타작기를 돌리고, 손은 벼를 턴다. 아마도 이날 경험 중 제일 색다른 경험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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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들은 자신들이 추수한 벼를 가슴에 안고 타작마당으로 이동한다. 거기엔 아주 옛날 발로 밟아 곡식을 터는 수동 타작기가 있다. 생전 처음 본 기계에 눈이 휘둥그랗게된 아이들은 이내 먼저 해볼 거라는 의욕이 가득 차오른다. 발로 밟아 타작 기계를 돌리고, 손으로는 곡식을 돌려가며 털고. 어떤 소녀는 아예 테크노댄스를 추듯 리듬을 타 가며 타작을 하니 주위에서 어른들이 감탄을 한다. 번호표도 없는 시골 들판에는 한 번이라도 더 타작해보겠다고 늘어선 줄이 짧지 않다. "터는 것도 재밌고, 밟아 돌리는 것도 재밌어요"라는 아이의 말이 좀 전 타작마당을 고스란히 표현해준다.        

잔치엔 역시 잔치 국수

"점심시간이에요"라는 목소리에 그제야 자신들이 배가 고프다는 걸 알아챈다. 신나게 타작하느라 몰랐던 배가 그 목소리 하나에 갑절로 배가 고파진다. 들판에서 일하다가 점심 먹는 재미를 놓칠 수 있나. 언제 그랬냐는 듯 일손을 놓고 하나둘 점심이 준비된 곳으로 떠난다. 몇몇 열혈 소년소녀들만이 타작을 좀 더 해보려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역시 잔치에는 잔치국수다. 냉면 그릇 안에 돌돌 말린 하얀 국수 위에 김이랑 달걀이랑 양념이 얹어지고. 맛깔스러운 육수가 부어지면 잔치국수 준비 끝. 이렇게 준비되는 잔치국수에 침은 저절로 꼴깍 넘어간다. 처음 먹어본 국수가 아니건만 이날 들일을 끝낸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맛이"가 절로 나온다. 

들판에 차려진 잔치 상에서 아이들이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잔치엔 역시 잔치국수다.
▲ 잔치국수 들판에 차려진 잔치 상에서 아이들이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잔치엔 역시 잔치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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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일에 싸서 갓 구워낸 군고구마를 아이들이 신나게 먹고 있다. 더군다나 밤고구마였다.
▲ 군고구마 호일에 싸서 갓 구워낸 군고구마를 아이들이 신나게 먹고 있다. 더군다나 밤고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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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선 숯불 바비큐가 한창. '두레생협'의 한 회원이 직접 기른 흑돼지. 항생제 섞인 사료 먹이지 않고 '짬밥'으로만 먹여 키웠다는 소위 친환경 돼지고기. '자글자글' 돼지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는 거기 있는 사람들의 식탐을 자극한다. 아이들은 맛있는 고기부위 하나가 주어지면 손에 들고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먹는다. 아이들은 잠시 원시인들이 된다. 어른들은 숯불 바비큐에 시원한 양성 막걸리 한잔. 어른들 중 누군가가 "캬~ 내년엔 곡차체험대회를 해도 되겠어요"라고 던진 농담에 들판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된다.   

"무슨 군부대 훈련 같아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제는 움직여야 하는 시간. 소위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라는 체험 시간. 사람들은 '그래봐야 시골마을 한 바퀴 도는 거겠지'라며 가벼운 마음. 하지만 이내 그 선입견은 마을 뒷산 허리를 넘어 감으로서 산산조각 났다. 오래된 전통마을이라 산 중턱에 있는 사당과 오래된 전통 묘들을 체험하고자 함이다.

이 마을에 어르신 중 한명이 일행들을 이끌고 다니며 마을 곳곳을 소개한다. 어른들은 소개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아이들은 산을 올라가며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언제 요즘 아이들이 부모와 친구의 손을 잡고 산을 넘어 봤을까. 산을 넘고 난 후 되돌아보며 모두들 자신들이 넘어온 산이라는 게 신기한 듯. 비록 마을 뒷동산이지만, 그리 낮지 않은 산이 분명하다. 오죽하면 한 소년이 "무슨 군부대 훈련 같아요"라며 신나해 했을까.

마을 어르신의 뒤를 따라 말 그래도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요즘 시골 마을은 온통 깨를 터는 중이다. 추수한 깨들을 도리깨로 터는 것을 본 아이들은 말로만 듣던 도리깨질에 잠시 눈이 머문다. 어르신이 인도한 곳은 400년 된 마을 고택. 그 연한에 놀란 것은 어른들이지만, 아이들의 눈앞엔 거대한 장난감 하나로 보이는 듯. 고택을 보자마자 만져보고 열어보고 뛰어다녀 보고. 심지어는 가져간 나무 가지로 고택 마루에서 칼싸움이 벌어진다. 고택에서 나오는 지하수에 모두가 400년 된 약수를 대하듯 세수도 하고 먹어도 보고.

황금들판에서 마을로 가는 길이다. 오래된 전통마을이라 산에 오래된 묘가 즐비하다. 요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언제 가족이 저렇게 산을 넘어보는 경험을 해볼까.
▲ 산행 황금들판에서 마을로 가는 길이다. 오래된 전통마을이라 산에 오래된 묘가 즐비하다. 요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언제 가족이 저렇게 산을 넘어보는 경험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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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꼭대기에 있는 사당 앞에서 마을을 바라보며 마을의 한 어르신이 마을을 설명해주고 있다.
▲ 마을 마을 꼭대기에 있는 사당 앞에서 마을을 바라보며 마을의 한 어르신이 마을을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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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된 마을 고택의 대청 마루에서 폼을 잡은 아이들. 아이들에겐 또 하나의 놀이터였다.
▲ 고택 400년 된 마을 고택의 대청 마루에서 폼을 잡은 아이들. 아이들에겐 또 하나의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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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을 지나다가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를 그 자리에서 주워서 먹는 맛이라니. 명절이나 되어야 손자들을 볼 수 있는 마을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 대열을 보는 것만도 흐뭇하다. 마을 입구쯤에서 만난 축사. 거기는 말로만 듣던 한우 농장. 커다란 덩치에 커다란 눈의 황소들은 놀러온 아이들 손님에 잠시 호기심을 보이다가 아이들의 유별난 장난에 모두가 뒷걸음질. 어른들은 소가 스트레스 받겠다며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황소와 좀 더 친해지려고 손을 내밀고 소리를 지른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했던 원지점으로 돌아오니 '동네 한 바퀴' 여행을 끝낸다. 아이들의 머리엔 '동네 한 바퀴'란 아파트 한 바퀴 정도로 생각되겠지만, 시골마을은 참 넓기도 하다.   

참새 먹으라고 허수아비 어깨에 벼이삭을 놓다

이렇게 도착한 원지점. 너무나도 반가운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군고구마 냄새다. 두레생협의 한 회원이 길렀다는 유기농 고구마. 그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숯불에 구워낸 군고구마. 지친 어른들에겐 복음과도 같은 에너지원, 아이들에겐 또 하나의 맛있는 간식. 호호 불며 까만 껍질을 손으로 까면 노랗게 드러나는 고구마 속살. 거기다가 밤고구마라니. 조금 전 짧지 않은 마을 행군은 충분히 용서(?)가 되고 남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논을 지키는 허수아비를 만드는 시간. 지칠 법도 한데 아이들은 또 한 번 호기심에 눈이 반짝. 오전에 벼 베던 곳으로 이동해 허수아비를 만든다. 각목 두 개를 열십자로 포개어 만든 후 지푸라기로 얼굴을 만들고, 헌옷으로 아래위에 옷을 입히고, 장갑으로 손을 만든다.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면 금상첨화. 센스 있는 팀은 지푸라기 얼굴에 숯을 박아 눈을 만든다. 서로가 만든 허수아비를 보며 "낄낄, 호호, 하하".

지금 아이들은 허수아비를 만드는 중이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허수아비를 논에 꽂아놓고 돌아왔다.
▲ 허수아비 지금 아이들은 허수아비를 만드는 중이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허수아비를 논에 꽂아놓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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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세운 허수아비 옆에서 아이들이 허수아비처럼 폼을 잡았다.
▲ 허수아비들 자신들이 세운 허수아비 옆에서 아이들이 허수아비처럼 폼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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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조금 전에 꼬은 새끼줄로 줄넘기를 신나게 하고 있다.
▲ 새끼줄 넘기 들판에서 조금 전에 꼬은 새끼줄로 줄넘기를 신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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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닥에 허수아비를 고정시키면 아주 그럴싸한 작품이 된다. 빼놓을 수 없는 기념촬영. 자신들의 허수아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양이 차지 않은 소년소녀는 '어떡하면 좀 더 튀고 멋있게 만들어볼까' 하며 허수아비 치장에 한창이다. 어떤 소년은 참새가 오지 말라고 만드는 허수아비 어깨에 벼이삭을 얹어 놓고는 "참새들이 와서 먹어라고요"라는 엉뚱 발랄한 행동을 해 황금들판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이렇게 그들은 2009년 가을 들녘에서 추억을 가득 추수해서 들고 간다. 황금들판에 허수아비들 을 보초세운 채로.

안성두레생협 http://cafe.daum.net/ansungdure 031-671-2066


태그:#안성두레생협, #벼 베기 체험, #메뚜기 잡기, #농촌체험, #도농교류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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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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