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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계속 여정길을 이어 나간다. 화력발전소를 조금 지나면 도로변에 왕검성 주차장이란 표지판이 있고 넓은 주차장이 있다. 이곳이 정양산성을 오르는 길의 시작이다. 왕검성으로 알려져 있는 정양산성을 오르기 시작한다.

정양산성
▲ 정양산성 정양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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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산성 오르는 길
▲ 정양산성 오르는 길 정양산성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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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대왕 태실비

정양산성을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조금은 가파르다. 처음 만나는 유적은 정종대왕 태실이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두는 작은 돌방으로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태를 모셨던 곳이며, 그 앞에는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는 비가 놓여 있다.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맏아들이다. 태실은 현재 2기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받침돌 위에 둥근 몸돌을 올리고 8각형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며 그 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정종대왕 태실비
▲ 정종대왕 태실비 정종대왕 태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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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대왕 태실비
▲ 정종대왕 태실비 정종대왕 태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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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원통형 돌함(石函) 위에 반원형의 뚜껑돌을 얹은 모습이다. 태실비는 거북받침 위에 한 돌로 된 비몸과 머릿돌을 세웠다. 거북받침의 등에는 5각형 무늬를 조각하였고 머릿돌에는 두 마리 용을 양옆에 새기고 그 사이에 구름무늬를 채웠다. 비몸은 앞면에 비의 명칭을, 뒷면에는 만든 날짜를 새겼다. 정조가 태어난 다음해인 영조 29년(1753)에 태실을 만들고, 순조 즉위년(1800)에 비를 세웠다. 1929년 조선 총독부에서 전국에 있는 태실을 창경원으로 옮길 때 이 태실의 태항아리도 꺼내 갔고 1997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정양산성

정종대왕 태실비을 둘러보고 한참을 가면 정양산성 문화재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이 설치된 것에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한참을 더 가면 평지처럼 넓은 공간이 나오고 서서히 무너진 성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인 것은 틀림없어 보이며 고구려에서 보이는 성벽 양식이 보인다.

정양산성
▲ 정양산성 정양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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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산성
▲ 정양산성 정양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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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산성
▲ 정양산성 정양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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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 정문인 듯하고 남문, 북문 및 동문지가 그대로 잘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정비될 계획이 있다고 한다. 1시간 정도 성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벽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당시 어떻게 이런 성벽을 쌓았는지 의문과 함께 공력들이 보이며 쌓은 이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보덕사

보덕사는 넓은 공간에 조용한 곳이었다. 입구에는 근래 지은 일주문과 넓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아직도 늦게 핀 연꽃이 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곳은 오래된 해우소이다.

보덕사 해우소
▲ 보덕사 해우소 보덕사 해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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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 연꽃
▲ 보덕사 연꽃 보덕사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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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 극락보전
▲ 보덕사 극락보전 보덕사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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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3호인 건물이 극락보전으로 주 건물이고 주변에는 산신각과 삼성각, 칠성각이 있다. 1457년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자, 사찰명을 노릉사라 개칭후 1726년(영조 2) 6월, 장릉수호조포사의 은전이 베풀어져 태백산 보덕사로 개명하고 장릉(莊陵)의 능사(陵寺)가 되었다.

금몽암

보덕사에서 조금 더 가면 금몽암이 있는데 절집 분위기가 아주 조용하고 암자 건물로는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단종이 이곳에 대한 꿈을 꾸고 금몽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훼손되었으나 1610년(광해군 2) 군수였던 김택룡이 건물을 보수하고 노릉암으로 고쳐 부르다가 다시 중수하였다.

금몽암
▲ 금몽암 금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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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숙종 24) 단종이 복위되고 보덕사가 원당이 되자 폐사되었다가 1745년(영조 21) 당시 단종의 무덤인 장릉의 참봉이 옛터에 암자를 다시 세우고 금몽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릉

영월에서 이제 꼭 보고 가야할 유적인 단종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곳 장릉과 청령포이다.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무덤으로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 · 표석 · 장명등 · 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장릉
▲ 장릉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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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더욱 더 찾는 이들이 많아진 곳이다. 단종역사관이 있고, 장판옥, 영천, 정려각, 정자각과 낙촌비각 등 볼거리가 많다.

단종그림
▲ 단종그림 단종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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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청령포는 울창한 송림속에 있으며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알려진 곳이다.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 등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청령포
▲ 청령포 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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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어소와 단묘재본부시유지, 금표비가 있으며 청령포를 바라보며 옲은 시조인 왕방연의 시조가 유명하다. 자연과 함께한 고장 영월에서의 여정은 많은 곳을 느끼게 하였다.


태그:#영월, #정양산성,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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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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