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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조강 생산 능력을 보유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그러나 광양만은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50일 전 발생한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는 인재였다. 쪽빛 바다를 흑빛으로 만든 폐기물 침출수는 환경 대재앙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고로 광양제철소 동호안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사고 원인과 대책을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말]
지난 8월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로가 해안쪽으로 4m정도 밀려났고, 지진이 난 듯 도로 곳곳이 뒤틀리거나 파손됐다.
 지난 8월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로가 해안쪽으로 4m정도 밀려났고, 지진이 난 듯 도로 곳곳이 뒤틀리거나 파손됐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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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2시경 포스코 광양제철소 페로니켈공장 옆 오탁수처리장. 제철 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물을 정화해 동호안으로 내보내는 곳이다. 처리장 내에 고여 있는 물은 시큼한 냄새와 함께 짙은 암갈색을 띠고 있었다. 동호안과 연결된 물막이 구간은 처리장과의 경계를 나타낼 뿐, 비가 조금만 내려도 오탁수가 넘칠 만큼 낮았다. 게다가 유실 가능성이 큰 슬래그(광석으로부터 금속을 빼내고 남은 찌꺼기)로 만들어졌다.

김형윤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차장은 "정화되지 않은 오수가 동호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 일주일 전 내린 비로 물막이 일부 구간이 유실됐고, 제철 공장에서 나온 오탁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동호안으로 흘러들었다. 이 물막이 구간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유실된 바 있다. 동호안 바닥에는 이미 상당량의 각종 슬래그가 매립돼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포스코... 사고 50일 지났지만, 후속 대책 없어

광양제철소측은 동호안 물이 폐수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수질오염물질의 배출허용기준 수소이온농도는 PH5.8~8.6이다. 그러나 동호안 물은 PH9~1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화되지 않은 사실상의 폐수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어 갈 경우 환경 참사를 피할 수 없다. 특히 동호안 제방 곳곳에서 누수 현상이 발견됐다. 이 때문에 광양만 어민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은 동호안 제방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그러나 광양제철소는 "물이 절대 새지 않는다"며 이를 무시했다.

지난 8월 23일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가 붕괴되면서 어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특히 제방 내 오폐수뿐만 아니라 제방과 맞닿아 있는 산업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까지 광양만으로 흘러나오면서 인근 해양생태계를 황폐화 시키고 있다. 사고 발생 직후 광양제철소측은 "당초 (동호안에) 차수막은 없었고, 차수 기능이 있는 지오텍스타일을 썼다"고 입장을 바꿨고, 이제는 "언젠가 제방을 터 버리려 했었다"며 책임 회피에만 골몰하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확장부지 위성사진. 지난 8월23일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로 300m 가량 길이의 도로가 4m가량 해안쪽으로 밀려나면서 동호안 오폐수를 비롯, 인접해 있는 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까지 광양만으로 흘러들어갔다. (사진 포스코 제공)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확장부지 위성사진. 지난 8월23일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로 300m 가량 길이의 도로가 4m가량 해안쪽으로 밀려나면서 동호안 오폐수를 비롯, 인접해 있는 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까지 광양만으로 흘러들어갔다. (사진 포스코 제공)

오탁수처리장을 나와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 현장으로 향했지만, 출입이 여의치 않았다. 광양제철소측은 붕괴 사고 이후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동호안 입구 경비초소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소형 버스 한 대가 밖으로 나왔다. 경비들이 갑자기 자세를 갖춰 버스를 향해 경례를 했다.

직전 광양제철소장을 지낸 허남석 부사장(생산기술부문) 일행이 사고 현장 시찰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허 부사장은 전날 계열사 임원들을 제철소본부로 불러들여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연일 분주한 행보를 이어갔다. 포스코로서는 오는 19일 예정된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동호안 제방도로를 따라 달리자, 오른쪽으로 광양제철소가 운영하는 폐기물 처리장이 보인다. 지난 1993년 8월 처음으로 백탁수(제강슬래그와 해수가 접촉해 발생되는 물)가 흘러나온 곳이다. 광양제철소가 동호안을 만든 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이었다. 광양어민들과 환경단체가 동호안 제방 누수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이 때부터다.

광양제철소 자체 폐기물 처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불과 몇 백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인선ENT(주)가 운영하는 폐기물 처리장이 시작된다. 사고가 난 지점은 4단계 폐기물 매립장과 맞닿아 있다. 300m에 이르는 제방도로는 바다 방향으로 4m가량 밀려난 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흉측하게 뒤틀리거나 갈라졌다. 특히 바다와 만나는 제방 하단에서는 뿌연 백탁수는 물론 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가 여전히 바다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세한 악취가 느껴졌지만, 바다 냄새에 섞여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고 당일에는 폐기물 침출수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사고 도로 곳곳에는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횡측 균열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형윤 사무차장은 "그만큼 지반이 약하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사고 지점에서는 침출수의 추가 유출을 막기 위한 가물막이 작업이 한창이었다. 황치환 현장소장은 "지금 조치는 임시방편이어서 이 상태로 계속 놔둘 수는 없다"며 "정확한 사고의 원인이 나와야 후속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50여일이 지났지만, 복구는커녕 아직 사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무려 500억 원대로 추정되는 복구비용 때문에 포스코와 인선ENT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지난 8월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로가 해안쪽으로 4m정도 밀려났고, 지진이 난 듯 도로 곳곳이 뒤틀리거나 파손됐다.
 지난 8월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로가 해안쪽으로 4m정도 밀려났고, 지진이 난 듯 도로 곳곳이 뒤틀리거나 파손됐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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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설사 제방이 종이였어도" VS 매립업체 "지반 약화는 누구 탓?"

우선 광양제철소는 동호안 제방이 '단순 물막이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2003년 인선ENT가 폐기물 매립장을 처음 만들 때 기존 동호안 제방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별도의 자체안전성을 확보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찬훈 광양제철소 홍보팀장은 "동호안은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은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동호안 제방 때문에 붕괴됐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만약 제방이 부실하더라도 (인선ENT에서는) 그것을 감안하고 매립장을 지었어야 한다. 설사 제방을 종이로 만들었더라도 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폐기장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또 "지반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폐기물을 너무 많이 쌓았다"며 붕괴 사고의 책임을 인선ENT측에 떠넘겼다.

광양제철소측은 그 근거로 지난 1월 이후 동호안 제방도로 밀림 및 크랙 현상이 발생해 인선ENT측에 복구요청 공문을 발송했고, 실제 인선ENT가 한 차례 보수 공사를 시행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 인선ENT측은 "제방도로에 중대한 이상이 발견된 시점은 매립장 사용 초기였다"며 "광양제철소와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사를 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매립장의 하중 부담이 아닌 도로의 부실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해 이번 사고가 발생한 증거"라고 반박했다.

이경준 인선ENT 사장은 "환경청으로부터 허가 받은 물량만 매립했을 뿐, 설계 물량보다 더 매립한 것은 없다"며 "게다가 4단계 구간 매립은 지난 4월에 끝났는데, 왜 8월에 무너졌겠느냐"고 반문했다. 인선 ENT는 오히려 동호안 제방의 지반 약화와 광양제철소의 무리한 준설로 인한 동호안 수압 상승을 이번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경준 사장은 "동호안 물이 바깥으로 새고 있고, 제방에 석회동굴이 만들어져 있는 등 제방 지반이 약화돼 있다"며 "(광양제철소는) 물이 새지 않는다고 말만 하지만, 우리는 증거를 갖고 있고, 국정감사에서 모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또 "(광양제철소가) 동호안에서 준설 작업을 할 때도 '우리한테 영향이 오니까 멀리 떨어져서 하라'고 요청했는데, 조사해보니 가까운 곳은 80미터였고, 수심도 깊은 곳은 16~17미터나 됐다"며 "결국 무리한 준설이 동호안의 수압을 높였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로 오폐수 및 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가 바다로 유출됐다. 사고 지점에서 침출수의 추가 유출을 막기 위한 가물막이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8월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로 오폐수 및 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가 바다로 유출됐다. 사고 지점에서 침출수의 추가 유출을 막기 위한 가물막이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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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부 언론에서는 붕괴 사고 현장의 갈라진 도로 틈 사이를 촬영한 결과 폭 1m가량의 구멍이 뚫려 있다고 보도했다. 동호안 물이 상당 기간 흘러나오면서 형성된 유공이 확대돼 결국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발생한 사고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광양어민회와 환경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포스코 동호사태 비상대책위원회'측도 "이번 붕괴 사건의 원인은 광양제철소가 SNNC, 후판공장과 5소결공장, 5코크스 공장, 회전로(RHF)공장, 부생복합화력발전소 부지 확보를 위해 동호안의 과도한 준설을 감행했고, 이로 인해 동호안 내에 수심이 깊어지고 집중호우에 따른 수압이 더해져 매립지가 밀려나고 도로마저 붕괴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양시의회도 비대위와 같은 입장이다.

그렇다고 인선ENT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백성호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우리는 광양제철소 뿐 아니라 인선ENT측에도 '매립장 인근 제방이 붕괴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를 수 없이 했지만, 인선ENT가 이를 소홀히 했다"며 "광양제철소의 무리한 준설과 연약지반 등을 감안해서 인선ENT가 적절하게 대응했어야 맞다"고 지적했다. 포스코가 제방 붕괴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인선ENT는 매립장 관리를 허술하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동호안 제방 무너져도 큰 문제 없다?"

문제는 광양제철소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로 파손에 따른 피해 보상과 복구비용을 우리가 요구해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박찬훈 팀장은 또 "둑에 구멍이 나서 동호안 물이 바다로 빠져 나간 것은 이번 붕괴 사고와 관계가 없고, 환경 문제로 지적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붕괴 사고의 책임을 피해가기 위해 '환경 파괴 기업'이라는 비판은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박 팀장은 "동호안 제방은 무너져도 큰 문제가 없다"며 "매립장 붕괴로 인한 침출수와 동호안 물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 동호안 물은 바닷물과 비교할 때 단순히 알칼리가 좀 더 높을 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장세문 홍보차장은 "제방 붕괴 등 불측 사고에 대한 대처 메뉴얼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동호안 물이 안 좋다고만 얘기할 수 없다"며 "언젠가는 이 물(제방)을 터 버리려고 했다"고 답변했다.

지난 8월 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로 오폐수 및 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가 광양만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8월 23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로 오폐수 및 폐기물 매립장 침출수가 광양만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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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양제철소는 동호안 물을 바다로 방류하기 위해서 환경영향평가 협의에 따라 수질정화시설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광양제철소는 현재 약품투입, 여과설비, PH조정 등 6단계를 거쳐 매일 6만 톤의 동호안 물을 바다로 배출하고 있다. 광양제철소 스스로도 동호안 물을 그대로 바다에 배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광양제철소는 그동안 동호안 물 누수 가능성을 지적해 온 어민들과 환경단체를 대상으로 "동호안 제방은 물이 새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광양제철소는 붕괴 사고 이후 차수막 설치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자, "당초 차수막은 없었고, 차수 기능이 있는 지오텍스타일을 썼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백성호 사무국장은 "동호안 물은 슬래그 침전물만 있는 게 아니라 각종 오염원, 오탁수, 유해한 성분들이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그대로 바다로 흘러나가서는 절대 안 된다"며 "광양제철소는 어떻게든 책임을 피해가고 싶겠지만, 이번 붕괴 사고를 계기로 동호안의 전반적인 환경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포스코 , #광양제철소 동호안, #광양만 오염, #동호안 제방 붕괴,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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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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