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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방송된 MBC 스페셜 '취업난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
 지난 9일 방송된 MBC 스페셜 '취업난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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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하는 대학교 4학년, 나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매일 아침 내가 찾는 곳은 신촌의 한 영어전문학원. 기업에서 요구하는 토익점수(공인영어점수)를 얻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한 시간씩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학원을 다닌 지 벌써 두 달째, 그간 들어간 학원비만 해도 5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오전 7시를 막 넘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교실은 토익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대학생이 '토익' 학원 다니는 건 기본이에요. 요즘엔 '토익 스피킹'도 해야 해서 다들 학원 두 세 개쯤은 다녀요."

옆자리에 앉은 취업준비생 홍수진(24)씨가 말했다. 수진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 6개월째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하반기 취업을 노리는 그녀는 현재 '취업 5종 세트'를 갖추기 위해 노력중이다.

'스펙'은 컴퓨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공통된 패턴이 있다. 바로 '취업 5종 세트'라고 불리는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인턴경력, 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준비하는 것.

원래 스펙(specification)은 사양이나 명세서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다. 그러나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펙은 취업하기 위한 외적조건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취업 5종 세트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취업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라도 있는 건지, 취업준비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펙'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9일 늦은 밤, <MBC스페셜>은 '취업난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한일 공동기획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토익 고득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변변한 인턴 자리 하나 얻기 어려운 심각한 취업난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반기 기업 채용을 지원하는 한 학생은 하루에 2편씩, 밤을 새우며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쓴다고 했다. 한 달이면 50개가 넘는 엄청난 양이지만 취업준비생들에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홍수진씨도 9월 한 달 동안 무려 2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했다. 20번의 자소서는 그녀에게 매일매일 주어지는 과제가 되었다. 다이어리에는 빼곡하게 입사원서 마감 날짜가 적혀 있다. 힘들 법도 한데 "100개 정도 쓰면 한 개는 붙겠지"라며 웃는 여유까지 보인다. 이 불황에 신입사원을 뽑아준다는 것에 '황송'하다면서 말이다.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스펙증후군'

취업을 위한 스텝1. 토익 점수를 만들어라
 취업을 위한 스텝1. 토익 점수를 만들어라
ⓒ 유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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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생 중엔 '고3병'이라고 불리는 스트레스성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가장 심각한 증상은 불면증(不眠症)으로 불리는 수면장애다. 하반기 취업을 위해 대학생들은 24시간 내내 자소서를 쓴다. 취업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도 마음 놓고 잘 수가 없고 꿈속에서도 자소서를 쓸 정도다.

또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스펙증후군'을 앓고 있다. '스펙증후군'은 보통 이상의 스펙을 갖춘 후에도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스펙을 얻기 위해 몰두하는 강박관념을 말한다. 대학원 진학률이 높아지고 사회가 점차 고학력화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보다 한발 더 앞서고 싶다는 생각은 심각한 취업스트레스가 되어 취업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사람이 열 명 중에 서너 명이나 된다.

대학은 지금 '5학년' 시대

<MBC 스페셜>에 따르면 일본도 현재 경제위기로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태다. 대학을 졸업하여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학생은 50%도 안 되고 대다수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로 살아간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5학년'을 자청하는 학생이 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백수로 지내느니 대학에 소속된 채 한 번 더 취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4년제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학연수나 부족한 영어점수를 올리기 위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군입대를 제외한 4년제 대학 휴학생 수는 지난해 29만 명을 넘어 전체 대학생 수의 15%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4년을 마치고 '졸업연장'을 이용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졸업연장제도는 대학에 최소 등록금을 내면 학생신분을 유지해주는 제도다.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김정한(23)씨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신청했다.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어서 휴학했어요. 6개월 동안 공부하고 다음 학기에 복학할 예정이에요. 그래도 부족하면 6개월 연장(졸업연장)해야죠."

취업이 안 된 상태에서 졸업하면 곧바로 실업자가 되는 현실이 두려워 대학을 5~6년씩 다니는 학생들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돌려다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보기만 해도 설레는 청춘을 즐기자!
▲ 청춘 만세 듣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보기만 해도 설레는 청춘을 즐기자!
ⓒ 유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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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수필 <청춘예찬> 속에 등장하는 '청춘'의 모습은 힘차게 약동(躍動)하며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이상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 속 청춘들은 그렇지 못하다. 해마다 증가하는 청년실업률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서 '청춘'을 뺏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의 낭만이었던 유럽배낭여행은 어학연수로 대체되고, 스펙을 갖추지 못하고 졸업하면 '몽상가'나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청춘의 한사람으로서 세상에게 묻고 싶다.

과연, 빼앗긴 청춘에도 '봄(春)'은 오는가?


태그:#취업준비, #MBC스페셜, #청춘, #스펙, #하반기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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