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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앉아 수확한 참깨에서 깨벌레가 싼 똥'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 깨벌레 똥 찾아내는 시간... 함께 모여 앉아 수확한 참깨에서 깨벌레가 싼 똥'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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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가 자랄 때쯤이면 참깨 잎에 붙어 참깨 잎을 먹는 '깨벌레(박각시나방 애벌레)'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참깨에 깨벌레 똥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문득 사십여 년 동안 살아오면서 이때까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또 모르는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싶다. 그동안 엄마가 농사짓고 수확해서 나눠주었던 참깨를 먹어오면서도 전혀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았다는 것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부모님이 직접 농사한 참깨로 참기름도 짜 주고, 깨를 한 봉지 가득 주기도 해서 부엌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반찬에 들어가는 조미료로 사용해오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몰랐을까. 무심해도 보통 무심한 게 아니다. 깨가 열리기 시작하면 깨벌레가 싼 깨벌레 똥이 있어 깨 농사하면서 벌레를 잡느라 손길이 많이 닿아야 한단다.

조금만 손이 덜 가도 깨에 붙은 깨벌레가 싼 똥이 깨와 함께 말라서 깨 속에 섞여 들어오고 만다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모처럼 명절을 맞아 멀리 흩어져 있던 형제자매들이 다 같이 한데 모이진 못했지만 남동생식솔들과 넷째 여동생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와 한데 모여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확한 참깨에서 깨벌레 똥!을 찾고 있습니다.
▲ 참깨에 든 깨벌레 똥을 찾아라! 수확한 참깨에서 깨벌레 똥!을 찾고 있습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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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던 중, 이럴 때 '깨누리똥이나 골라내자'며 엄마는 커다란 대야에 담긴 참깨를 거실로 내왔고, 그때서야 깨벌레 똥에 대해 처음 들었다. 깨벌레를 엄마는 깨누리벌레라고 불렀다. "깨누리 똥이 뭔데요?!" 하고 눈이 동그래져서 우린 물었다. "깨벌레가 깨에 똥을 싸서 깨 안에 섞여 있어 일일이 골라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어머, 깨벌레 똥도 있어요?"
"깨를 그냥 먹는 줄 알았더냐?"
"처음 듣는데~"하고 샐쭉해져서 말하자,
"깨농사처럼 까다로운 것이 또 있을라고!" 하고 말했다.

동그란 상을 펴고 그 상위에 날짜가 지난 달력을 두어 장 겹쳐질 듯 펴고 잘 마른 깨를 적당히 부었다. 엄마가 먼저 깨벌레 똥을 골라내서 '이렇게 가뭇가뭇한 것이 깨누리똥이다'하고 말했고 우린 모두 엄마가 가르쳐주는 대로 '깨벌레 똥'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넷째 동생과 올케, 엄마와 나 넷이서 눈에 불을 켜고 깨벌레 똥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처음엔 아버지도 거들었지만 엄마가 어설프게 한다고 몇 마디 하자 '안 하려니 그렇고 또 하자니 구박이고~"하시며 슬쩍 몸을 빼내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깨 똥을 골라내면서 우리는 모두 신기해했다. 깨벌레가 싼 똥은 마치 볼펜으로 콕 찍어놓은 것처럼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점만 한 똥이 있는가하면, 밀알만 한 것도 있고 그보다 조금 더 큰 것도 있지만 깨보다는 작았다.

까맣고 단단한 것이 참깨와 구분이 잘 되어서 골라내기는 문제가 없는데 이 작은 깨 속에 깨벌레 똥을 골라내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세심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깨 속에 깨벌레 똥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우리가 먹을 양식에 들어갈 깨인 만큼 그냥 대충 지나칠 수 없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두 눈을 밝히 뜨고 깨벌레 똥을 찾아내느라 눈을 반짝거렸다.

그동안 엄마는 작은 참깨들에서 참깨보다 더 작은 깨벌레 똥을 일일이 골라내고 우리들에게 주었단 말인가. 부모님이 거저 주시는 것을 거저 얻어먹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도 정성과 수고가 들어가는지 상상이나 했을까. 그저 되는 농사가 없고 작은 것 하나도 시간과 정성과 수고로 나오는 것들인데 우리는 부모님과 농부의 그 수고로움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바로 이것이 깨에서 찾아내 깨벌레 똥!입니다!
▲ 깨벌레 똥을 찾아라! 예...바로 이것이 깨에서 찾아내 깨벌레 똥!입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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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우리는 깨벌레 똥을 자못 진지하게 잡아내느라 시간 가는 것도 잊었다. 얘기하면서 함께 하니 힘든 줄 모르고 하고 있지만 혼자서 일삼아 하려면 어지간히 힘들 일일 것 같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파왔다. 깨벌레 똥을 몰랐을 땐 깨에 섞인 것들이 그냥 먼지나 티끌 정도인 줄 알았지만 똥을 알고 난 이상 작은 '똥' 하나라도 용납할 수도 놓칠 수도 없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두 눈으로 깨벌레를 샅샅이 찾아냈다. 참깨는 이른 봄, 3월에 밭고랑을 만들고 깨를 심으면 곧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이르면 5-6월, 늦으면 7, 8월에 깨를 수확한다. 깨꽃은 대개 7-8월에 피는데 백색 빛깔에 연한 자주 빛을 띠고 씨방은 4실이고 주변에는 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원기둥 모양의 씨방 속에는 약 80개의 종자가 열리고 깨는 45%-55%의 기름이 들어있고 단백질이 36% 들어있다고 한다.

깨벌레는 깨가 열릴 때쯤이면 참깨 밭에 서식하는데 제법 크기가 굵고 큰 편인데다 연녹색을 띤 벌레다. 깻잎 뿐 아니라 고구마나 파, 봉숭아 등 다 뜯어먹고 산다고 한다. 깨벌레가 생기기 시작하면 집게 같은 것으로 깨벌레를 잡아주어야 하는데 조금만 방치해도 깨벌레가 서식해 잎을 뜯어먹고 똥을 싼다고 한다.

밤이 이슥하도록 둘러앉아 깨벌레 똥을 찾아냈지만 한 대야 가득한 참깨를 한꺼번에 다 하기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서 엄마는 우리가 제각기 가지고 갈 만큼만 깨벌레 똥을 골라내라고 했다. 다 하고 보니 엄마가 말 한대로 각각 한 되 정도 되었다. 깨벌레 똥을 찾아낸 것보다 더 많은 대야 가득한 깨에서 언제 그 똥을 골라낼까. 엄마는 일단 채에다 일차적으로 걸러낸 다음 천천히 알아서 할 거라고 했다.

농사, 그 어떤 것도 쉬운 일이 없겠지만 깨 농사는 참으로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데다가 까다로운 농사인 것 같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농작물, 그 어느 것 하나 거저 나온 것이 없다. 오늘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이나 양념에 스며들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깨소금도 3월에 갈아엎은 땅에 깨를 심고 바람과 햇빛과 빗속에서 자라서 깨를 털어 수확하고 또 깨벌레 똥을 골라내고….

한없는 수고와 정성 끝에 오랜 시간을 거쳐 식탁위에 올라온 것이란 걸 안다면 참으로 겸손한 식사, 거룩한 식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농부의 수고와 땀방울, 그리고 하나님이 때를 따라 내려주시는 비와 햇빛과 바람… 그것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낸 한 끼의 식사, 거룩한 식사인 것을 안다면 어찌 한 끼의 식사를 불평할 수 있을까.

오늘 일용할 양식이 된 한 끼의 식사를 어찌 겸허하게 감사함으로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깨소금을 대할 때마다, 엄마가 짜 준 참기름을 음식에 넣을 때마다, 한 개의 반찬이, 한 끼의 식사가 우리의 식탁에 오를 때마다 감사함으로 대해야겠다.

혹 살면서 불평이 나오거나 반찬 투정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이른 봄부터 수확할 때까지 햇빛과 바람과 비와 수고로운 손길을 생각하면 언제든지 감사로,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것 하나도 거저 되는 것 없어라.


태그:#깨벌레, #참깨,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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