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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다르게 올해는 심의위원 전체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 모아놓고 거창하게 위촉식을 하고 안병만 장관이 직접 나오셔서 격려사까지 하신 모양입니다.
▲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위원 위촉식에서 격려사를 하는 교과부 장관 예년과 다르게 올해는 심의위원 전체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 모아놓고 거창하게 위촉식을 하고 안병만 장관이 직접 나오셔서 격려사까지 하신 모양입니다.
ⓒ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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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 아래부터 교과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 1차 시안' 공청회가 있던 다음 날인 9월 30일, 765명을 '2009 개편 교육과정심의회' 위원으로 위촉하는 위촉식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거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뉴스로 보고 그동안 제가 교육과정 심의위원이라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 심의위원들을 뽑은 걸 보면, 저는 이제 교육과정 심의위원이 아닙니다. 2년 전에 받아둔 위촉장을 꺼내보니 9월 26일자로 '즐거운 생활과 교육과정 심의위원'이 끝나 있었습니다.

심의위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위촉장을 꺼내보니 2009년 9월 26일로 심의위원 활동기간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위촉장'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도대체 써 먹을 곳이 없습니다. 이 '위촉장' 어디에 쓰나요?
 심의위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위촉장을 꺼내보니 2009년 9월 26일로 심의위원 활동기간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위촉장'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도대체 써 먹을 곳이 없습니다. 이 '위촉장' 어디에 쓰나요?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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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임기 시작 2개월이 지나서야 각 과별로 교과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 회의실에 모여 담당 연구사로부터 서류 봉투 속에 든 위촉장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예년과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심의위원 전체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 모아놓고 거창하게 위촉식을 하고 안병만 장관이 직접 나와 격려사까지 한 모양입니다. 

장관 이름으로 금띠까지 두른 위촉장을 받는 교육과정 심의위원이 참 대단해 보이지 않나요? 거창한 위촉식을 치르지 않은 저도 처음에는 '교육과정 심의위원'이라는 말만으로도 스스로 대단해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교육과정 심의위원 2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대단한 '교육과정 심의위원'으로서 한 일은 위촉장을 받은 것뿐입니다.

위촉장 받고 나면 심의위원 역할 끝?

'교육과정 심의회'는 무엇이고 '교육과정 심의위원'은 누구이며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까요? 교과부 보도자료는 교육과정 심의회와 심의위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심의회'는 관계법령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자문 기구로서, 국가 교육과정 개정 사항 심의, 현장 여론 수렴 및 개선 방향 조사·연구 등을 수행하게 되며, 심의 위원들의 위촉기간은 2011년 9월 29일까지 2년간이다.

'교육과정 심의회'는 운영위원회, 학교급별 위원회, 교과별 위원회 등 총 36개 소위원회로 구성되며, 심의위원들은 전공 교수, 현장 교원, 학회, 직능 단체 및 학부모 대표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이번에 새롭게 구성되는 교육과정 심의회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 여론 조사 및 수렴, 현장 적합성 검토 등을 통해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자료출처 : 9월 30일 자 교과부 보도자료)

그러나 '교육과정 심의위원'을 해 본 경험으로 보건대, 위에 적어놓은 교육과정 심의회와 심의위원 활동이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제가 교육과정 심의위원 활동을 한 때가 '2007년 개정 교육과정' 고시 이후 실험본 교과서 작업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교육과정 심의회 첫 회의 때(이것이 곧 마지막 회의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2007년 개정 교육과정'과 그에 따른 실험본 교과서와 관련한 질의자료를 준비해 갔습니다.

첫 회의 때부터 빡빡한 질의자료를 준비해서 인쇄한 자료를 나누어주자 모두들 놀라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이번 교육과정 심의회는 전과 분위기가 아주 다른데요?"
"이번 교육과정 심의회는 제대로 하겠는 걸요?"
"교육과정 심의회에서 이런 자료는 처음 봐요."
"그동안 심의위원들은 조용하게 끝났는데, 이번 심의위원들은 의욕들이 많군요."

그러나 질의 사항은 질의 사항일 뿐, 그 날과 그 이후로도 담당 연구자의 개인 의견뿐 공식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었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말만 '교육과정심의회'가 조직되어 있지 서로 다른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도 없었습니다. 한번 모여서 자기소개하고 위촉장 받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교육과정 심의회 한 번 없이 나온 '2009 개정 교육과정'

교과부가 말한 대로 '교육과정 심의회'가 '국가 교육과정 개정 사항을 심의하고 현장 여론 수렴 및 개선 방향 조사·연구 등을 수행'하는 교과부 장관의 '자문기구'라고 한다면,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의견은 이번에 새로 위촉한 심의위원이 아닌 9월 26일 임기가 끝난 이전 교육과정 심의회를 열어서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2009 개정 교육과정 1차 시안'이 마련되어 공청회를 열 때까지 교육과정 심의회를 한 번도 연 적이 없고 이메일로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교과부 공식 자문 기구인 '교육과정 심의회' 위원인 저도 교과부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진행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물론 교과부가 '2009 개정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공표한 것이 9월 10일이니 저뿐만 아니라 이전 모든 심의위원들도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몰랐을 것입니다.

특히 '2009 개정 교육과정 1차 시안'을 보면, 초등학교 1,2학년 통합교과는 과학과 체육이 독립되고 슬기로운 생활교과가 없어지고, 즐거운 생활과 바른생활 교과목 대신에 아직 이름도 정하지 못한 '통합교과 A'와 '통합교과 B'가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완전히 새롭게 개편되는데, '2009 개정 교육과정 시안'이 마련되어 발표할 때까지 법령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육과정 심의회' 한 번 열지 않았다는 것은 교과부 스스로 공식 법령으로 정한 자문기구인 '교육과정 심의회' 자체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2009 개정 교육과정 1차 시안' 추진 일정을 보면, 10월과 11월에 '2009 개정 교육과정' 심의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미 1차 시안이 정해진 상태에서 새로운 교육과정 심의위원들에게 심의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교과부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에 새로 위촉한 '교육과정 심의회 위원' 앞에 '2009 개편 교육과정'(큰 제목에는 '개편'이라고 되어 있고, 부제에는 '개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또 무슨 차이일까요?)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교과부가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교육과정 심의위원이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새로 뽑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2년마다 새로 뽑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교육과정 심의위원'을 '2009 개편 교육과정 심의회'라고 붙이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냥 '0기' 또는 '몇 년도' 교육과정 심의회'라고 해서 활동기간인 2년 동안에 일어나는 교육과정 관련 자문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전 '교육과정 심의회' 활동기간은 '2009 개정 교육과정' 내용을 구성하고 시안을 마련하는 시기인 지난 9월 26일까지였습니다. 따라서 '2009 개정 교육과정 사항'에 대한 것은 새로운 교육과정 내용을 구상할 때부터, 새로 시작하는 심의회가 아닌 이전 교육과정 심의회에서 심도 있게 다뤘어야 할 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교과부는 '교육과정 심의회'가 구성되어 있음에도 한 번도 '2009 개정 교육과정'과 관련한 회의를 연 적이 없습니다.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법령으로 정한 '교육과정 심의회' 설치 목표에 반하는 문제입니다.

또 하나 이번 교육과정 심의회가 걱정되는 것은, 지난 '교육과정 심의회'가 서로 생각을 달리하는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사람들이 고루 함께 참여했다면, 이번 심의회는 교과부 생각과 다른 단체 사람들은 모두 배제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의위원들은 중임이 가능한데, 지난 심의회에서 그 어느 심의위원들보다 활동업적이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다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교과부의 의견과 달리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모두 빠져 있어서 정말로 교육과정 심의회가 교과부 장관 자문기구로서 현장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고, 중립적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심의할 수 있을지, 혹시 교과부 자문기구가 아닌 교과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힘 실어주는 기구로 전락하지는 않을지, 교육과정 심의위원을 해 본 사람으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교육과정 심의위원을 해 본 저의 경험과 그동안 교육과정 심의위원을 해 봤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육과정 심의회'가 이름만 거창하지, 교육과정 심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위촉식까지 거창하게 했으니 앞으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태그:#교육과정심의회, #교육과정심의위원, #2009개정교육과정심의, #교육과정심의위원위촉식,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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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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