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역을 맡은 배우 이요원.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역을 맡은 배우 이요원.
ⓒ MBC

관련사진보기

제27대 신라 국왕에 도전하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공주(이요원 분)의 '진보적' 색채가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이라는 것은 그 이전의 역대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에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뜻이다.

지난 9월 29일 방송된 드라마 <선덕여왕> 제38부에서는 그 같은 덕만의 색깔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서민경제의 위기 앞에서 덕만이 기존의 보수적 해법이 아닌 새로운 진보적 해법을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귀족들의 매점매석으로 시장의 곡물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음에 따라 서민경제가 '바닥'을 쿵 치고, 이로 인해 많은 소농(小農)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여 귀족들에게 예속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거금을 주고도 곡식을 살 수 없는 기막힌 현실에 분노한 어느 백성이 곡물상점 주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여 신라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 같은 위기 앞에서 진평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덕만은 '말로만 서민을 위할 뿐, 실상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여느 보수 정치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비축해둔 구휼미를 과감히 방출하여 시장의 곡물가격을 하락시킴으로써 서민경제의 숨통을 틔어주는 한편, '곡물 투기'로 이익을 꾀하는 귀족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다 주었다.

드라마 속에 나타난 덕만의 태도는 단순히 '애민정신'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경제적 자원을 기득권층이 아닌 서민층을 위해 사용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득권층을 견제하기 위해 시장에 과감히 개입하겠다는 덕만의 '진보적 색채'가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덕만은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국가의 시장 개입을 통해 계층 간의 균형을 도모하려 한 셈이다.

서민경제를 크게 배려한 군주, 선덕여왕

물론 위의 줄거리는 드라마 속 내용이다. 그래서 제38부에 묘사된 경제현상들 중에는 실제 역사에서 벗어나는 내용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상품경제의 발달 정도가 미흡한 7세기 전반의 신라에서 시장의 수요공급법칙에 의해 곡물가격이 그처럼 완벽하게 급반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작가적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 제38부는 진보적 색채를 '선덕여왕의 필수조건'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의 덕만공주 아니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은 어떠했을까? 실제의 선덕여왕도 드라마 속의 덕만처럼 진보적 색채를 띤 정치가였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이라는 것은 역대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에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의미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를 종합해보면,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이 이전의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진보적인 정치가였다는 판단을 갖게 된다. 세 가지 측면에서 선덕여왕의 진보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선덕여왕은 서민경제를 크게 배려한 군주였다. <삼국사기> 권5 '선덕여왕 본기'에 따르면, 즉위 8개월 만인 선덕여왕 1년(632) 10월에 선덕여왕은 홀아비·홀어미·고아·외톨이로서 경제적 자활능력이 없는 서민들에게 무상으로 곡식을 분배했다.

선덕여왕에게 힘을 실어주는 천명공주의 아들 김춘추.
 선덕여왕에게 힘을 실어주는 천명공주의 아들 김춘추.
ⓒ MBC

관련사진보기

어느 통치자이건 어느 집권세력이건 간에, 누구나 다 말로는 서민경제를 위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선덕여왕처럼 그것을 몸소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밥 굶는 사람에게 "밥을 제때 챙겨 먹으라"고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갑에서 만원권 지폐를 꺼내주면서 식당 쪽으로 등을 떠미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는 선덕여왕이 취한 복지정책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밀히 말하면, 선덕여왕은 아버지인 진평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게 아니라 국인(國人)으로 표현되는 귀족세력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 '약간 불안정한' 군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즉위 직후의 선덕여왕은 자신을 옹립해준 귀족세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즉위 8개월 만에 귀족들이 아닌 서민들을 위해 국고를 활짝 열었다는 것은 선덕여왕이 평소 서민경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신념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그 문제에 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귀족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우리는 선덕여왕 1년의 구휼정책이 자활능력이 '없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활능력이 '있는' 농민들이 구휼미를 먹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내년에 세금을 더 많이 내줄 것을 기대하고 그런 구휼정책을 편 것이 아니었다. 이는 선덕여왕이 본질적으로 서민지향적인 경제관(觀)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유신과 김춘추, 선덕여왕에 날개 달아주다

둘째, 선덕여왕은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엘리트들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삼았다. 어느 대권주자나 다 말로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들 한다. 하지만, 구시대의 마인드를 가진 엘리트들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삼는 대권주자가 있다면, 그런 인물은 군주가 된 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덕여왕의 양 날개인 김춘추와 김유신은 '새로운 엘리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폐주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와 가야왕실의 후손인 김유신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높은 사람들이지만, 상류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의 엘리트들과는 분명히 색깔을 달리하는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색다른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색다른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선덕여왕이 7세기 초반의 동아시아 위기에 대해 그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마인드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엘리트들이 뿜어내는 새로운 에너지를 국정에 충분히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마인드에 얽매인 낡은 엘리트들로는 변화무쌍한 당시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덕여왕이 서민위한 복지정책 펼 수 있었던 이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 역을 맡은 배우 엄태웅.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 역을 맡은 배우 엄태웅.
ⓒ MBC

관련사진보기


셋째, 선덕여왕은 서민 출신들을 지배층의 일원으로 충원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말로는 서민경제를 외치고 재래시장에서 이따금씩 군것질을 할지라도 정작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사람들만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군주가 있다면, 우리는 그런 군주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배층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 선덕여왕은 말로만 서민을 위하는 군주들과 분명히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제8세 풍월주 문노 이후로 가야 출신과 서민 출신들이 화랑도에 대거 진입하여 신분의 상승을 획득했고, 또 15세 풍월주 김유신 이후로 가야 출신들이 화랑도 내부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 점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에 가야세력은 물론이고 서민 출신들까지도 대대적인 신분상승을 이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선덕여왕 시대의 지배층 내부에 서민 출신들이 상당수 포진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고도 남는 대목이다.

김유신이 선덕여왕 시대에 국정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김유신의 배후에 있는 가야세력은 물론이고 그 가야세력과 함께 신분상승을 이룩한 서민 출신들 중 상당수가 지배층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을 것임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상당수의 서민 출신들이 지배층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선덕여왕이 서민지향적인 복지정책을 펼 수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말로만 '서민경제' 부르짖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위와 같이 서민경제를 크게 배려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엘리트들을 친위세력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서민 출신들을 지배층의 일원으로 충원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선덕여왕은 이전의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에 상당히 진보적인 정치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 선덕여왕의 이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 '선덕여왕의 닮은꼴'이 갖춰야 할 필수조건이 무엇인지를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왕의 딸'로 태어났다는 점만으로는 결코 선덕여왕의 닮은꼴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는 우리에게 단순히 입으로만 '서민경제'나 '새로운 정치'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결코 선덕여왕의 닮은꼴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정으로 선덕여왕의 닮은꼴이 되고자 한다면, 서민을 위해 실제로 지갑을 열어 돈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엘리트들로 친위세력을 형성하고 또 서민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지배층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갑을 꽁꽁 닫아둔 채 그저 말로만 서민경제를 부르짖고 또 낡은 엘리트들에 둘러싸여 그들의 도움을 받고 또한 서민지향적인 정치세력의 지배층 진입을 막으면서도 "나도 한 번 왕이 되어보겠다"며 나서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런 정치인의 미래는 '선덕여왕'이 아니라 '악덕여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속 덕만처럼 서민 대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진보적 해법을 선택할 수 있는 세계관과 용기를 갖춘 정치가에게서 한국인들은 선덕여왕의 진면모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태그:#선덕여왕, #덕만공주, #덕만, #구휼미, #매점매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