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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유승호 분)가 요즘 한창 열애에 빠져 있다. 미실(고현정 분)의 손녀이자 보종(백도빈 분)의 딸인 보량(박은빈 분)과의 열애 현장이 카메라에 계속해서 노출되고 있다. 미생(정웅인 분)의 손에 이끌려 룸살롱과 카지노에 푹 빠져 살더니, 연인을 만난 이후로는 춘추의 유흥업소 출입이 좀 줄어든 듯하다. 그만큼 '그 연인'이 춘추의 맘을 쏙 사로잡은 것 같다.

 

김유신의 '계략'에 휘말려 유신의 누이인 김문희를 임신시켜 놓고도 춘추가 문희와의 혼인을 꺼렸던 이유는 바로 '그 연인' 때문이었다. 춘추는 '그 연인'과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문희와 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문희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춘추를 겁주기 위해 유신이 문희를 불태워 죽이려는 척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의 설정처럼 '그 연인'의 이름은 정말로 보량이었을까?

 

실제 춘추의 연인은 보량이 맞을까

 

필사본 <화랑세기> 제16세 풍월주 보종 편에 따르면, 보종에게는 보라·보량이라는 두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18세 풍월주 춘추 편에는 "그때에 공의 정궁부인인 보량궁주는 보종공의 딸이었다"(時公之正宮夫人寶良宮主, 乃寶宗公女也)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그때'란 문희가 춘추의 아이를 임신한 때를 가리키고, '공'이란 춘추를 가리킨다. <화랑세기> 춘추 편에서는 춘추와 보량이 서로 몹시 잘 어울렸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기록들만 놓고 보면, 춘추의 연인이자 첫 부인은 보종의 딸인 보량이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춘추의 연인을 보량으로 설정한 것은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료에 적혀 있는 내용이라고 하여 언제나 100% 신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사료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서 그 안에 오류가 전혀 없다고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성스레 워드를 친 뒤에 몇 번이나 검토를 했는데도 막상 프린트를 해놓고 보면 오자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경험을 누구나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웅 모세가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돌판(성경 출애굽기 31장 18절)처럼 신이 직접 썼다고 일컬어지는 기록이 아닌 이상, 인간이 쓴 기록을 읽을 때에는 항상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당연한 이치 때문이다.

 

특히 <화랑세기>의 경우에는 더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1차적으로는 원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수 있고, 2차적으로는 그 원문을 베끼는 과정에서 또다시 오류가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화랑세기> 춘추 편에서는 춘추의 연인이 보량이라고 했지만, <화랑세기>의 여타 부분을 읽다 보면 <화랑세기>의 지은이 혹은 베낀이가 춘추 편에서 뭔가 실수를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보량이 실제가 아닌 증거 두 가지

 

<화랑세기> 춘추 편에 따르면, <1>보종의 딸인 보량은 춘추와 몹시 잘 어울리는 사이였으며, <2>보량이 춘추의 딸인 고타소를 낳은 이후에 문희가 춘추의 아들인 김법민(문무왕, 626~681년)을 임신했고, <3>법민이 문희의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보량은 춘추의 또 다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 한다. 여기서 보량이 법민의 출생 이전에 죽었다고 했으므로, 보량은 서기 626년경에 죽은 셈이 된다.

 

그런데 <화랑세기>의 여타 부분에서는 위의 <1> 및 <3>과 충돌하는 내용들이 많이 발견된다. 각각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1>과 충돌하는 부분.

 

<화랑세기>의 여타 기록에 따르면, 보종의 딸인 보량은 양도라는 남자를 극진히 사랑했다고 한다. <화랑세기> 제22세 풍월주 양도 편에서는 평소에 보량은 양도(하종의 손자)를 열렬히 사랑하여 다른 데에 시집가기를 원치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진평왕(재위 579~632년)의 후궁으로 들어갔다가 계비인 승만왕후의 미움을 사서 출궁을 당한 뒤에 양도와 재혼을 했다고 알려주고 있다.

 

소위 '내조의 여왕'이라고 불려도 될 만한 보량은 언제라도 양도와 함께 죽을 생각으로 늘 은장도를 품고 다녔으며, 실제로도 그는 흠돌의 난(681년) 이후에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칼로 자결했다고 한다. 물론 <화랑세기> 제23세 풍월주 군관 편에 따르면 보량이 남편의 부하인 찰의라는 낭도와 내통을 했다고는 하지만, 남편 양도에 대한 극진한 사랑만큼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살펴본 <화랑세기> 춘추 편에서는 보량이 춘추와 몹시 잘 어울렸으며 춘추의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고 한 데에 반해, 지금 살펴본 <화랑세기> 양도 편에서는 보량이 양도를 변함없이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는 진평왕의 후궁을 지내고 찰의와도 내통을 하다가 흠돌의 난 이후에 양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고 한다.

 

둘째, <3>과 충돌하는 부분.

 

<화랑세기> 춘추 편에 기록된 보량의 사망 시점과 <화랑세기>의 여타 부분에 나오는 보량의 사망 시점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화랑세기> 춘추 편에서는 보량이 626년경에 죽었다고 하지만, <화랑세기>의 여타 기록에서는 보량이 626년경 이후에도 생존한 사실이 발견된다.

 

예컨대, <화랑세기> 양도 편에서는 남편 양도가 풍월주가 되던 637년에 보량의 나이는 33세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 <화랑세기> 제25세 풍월주 춘장 편에서는 풍월주 춘장(재임 647~652년)이 보량을 자기 어머니처럼 극진히 섬겼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결정적으로, <화랑세기> 양도 편에서는 보량이 681년 흠돌의 난 이후에 자결했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두 가지를 종합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춘추와 몹시 잘 어울렸으며 626년경에 춘추의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화랑세기> 춘추 편의 보량과, 양도를 몹시 사랑했으며 681년경에 양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자결한 <화랑세기> 여타 부분의 보량은 서로 동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두 명의 보량을 동명이인으로 볼 수는 없다. 둘 다 보종의 딸이라고 했고 보종에게는 보라·보량이라는 딸이 있었으므로, <화랑세기> 춘추 편과 <화랑세기> 여타 부분 중 어느 한쪽에는 '보량'이 아닌 '보라'라고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화랑세기>의 지은이 혹은 베낀이가 양쪽 다 '보량'으로 잘못 표기함에 따라 나타난 실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보라와 보량의 첫 글자가 같은 데에다가 두 사람의 아버지가 같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화랑세기> 춘추 편에 나오는 여인의 진짜 이름은 보량일까 보라일까?

 

지은이 혹은 베낀이도 착각할 수 있다

 

<화랑세기> 전체적으로 '춘추의 부인 보량'보다는 '양도의 부인 보량'에 관한 기록이 압도적으로 훨씬 더 많은 점을 볼 때에, '양도의 부인 보량'에 관한 지식이 머릿속에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는 <화랑세기>의 지은이 혹은 베낀이가 <화랑세기> 춘추 편을 기록하면서 무심코 보라를 보량으로 착각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즉, 춘추의 연인은 보량이 아닌 보라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필사본 <화랑세기>의 번역자인 이종욱이 <화랑세기> 춘추 편의 '보량'을 '보라'로 수정한 것도 바로 그와 같은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종욱은 <화랑세기> 춘추 편의 "그때에 공의 정궁부인인 '보량'궁주는 보종공의 딸이었다"라는 표현을 "그때 공의 정궁부인인 '보라'궁주는 보종공의 딸이었다"라고 수정하여 번역한 뒤에 각주에다가 "(박창화가) '보량궁주'로 필사한 것을 '보라궁주'로 고쳤다"면서 "(내가) 고친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위와 같이,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춘추의 연인이자 부인이 보량이었다고 표기되어 있지만, 이 기록이 <화랑세기>의 여타 기록과 충돌하는 점을 볼 때에 <화랑세기>의 지은이 혹은 베낀이가 보라를 보량으로 잘못 적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춘추의 연인은 보종의 딸인 보량이었다'라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설정은 필사본 <화랑세기>의 표기에 입각한 것이므로, 이 드라마가 큰 실수를 범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기록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기록을 무조건 신뢰하기보다는 해석을 통해 역사기록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태그:#선덕여왕, #김춘추, #보량, #보라, #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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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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