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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인 3일, 오전 10시가 남짓한 시간. 용산 참사현장에는 유족들이 상식(上食)을 올리기 위해 분주히 준비 중이었다. 좁은 공간에 마련된 분향소에 모인 다섯 유가족은 친인척도 없이 조용히 그들만의 추석을 준비했다. 촛불의 가는 떨림 사이로 철거민 다섯 분의 영정이 불빛에 흔들렸고, 조촐한 음식 몇 가지가 앞에 놓여 있었다.

추석인 3일, 유가족들이 분주하게 상식(上食)을 준비하고 있다.
 추석인 3일, 유가족들이 분주하게 상식(上食)을 준비하고 있다.
ⓒ 서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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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범대위(범국민대책위원회) 진행 아래 상식(上食)은 시작되었다. 제일 연장자인 故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68)씨가 대표로 먼저 영정 앞에 나와 한층 야윈 손으로 고인을 위해 술잔을 올리고 절을 올렸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와 카메라 셔터소리가 뒤엉켜 들렸다. 뒤이어 자녀들과 신부님들이 절을 올렸다. 故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47)씨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울음을 삼키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권씨는 "남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아들이 13일 군 입대를 해 오늘의 슬픔이 더욱 크다"고 했다.

상식(上食)을 올리는 가운데 유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상식(上食)을 올리는 가운데 유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서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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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다 지냈을 무렵,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용산을 찾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이 의원은 연신 안경 사이로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자 이 의원은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한 채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목메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답답해요… 너무…."

오전 9시쯤에는 정운찬 총리도 현장을 다녀갔다. 정 총리는 중앙정부가 용산 참사 해결의 직접적인 주체로 나서기는 힘들다는 말로 일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 의원은 "그래도 오늘 추석인데… 차라리 그런 말씀보다 아무 말 안하셨으면 더 좋았을텐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다 눈물 흘리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유가족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다 눈물 흘리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유가족들
ⓒ 서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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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분에 걸쳐서 진행된 상식이 끝나자 분향소 앞에 마련된 천막에서 추모 미사가 곧바로 열렸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자리를 옮기던 故 한대성씨의 부인 신숙자(51)씨는 " 즐거운 추석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장례라도 치러줘 빨리 마음 편히 보내드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기쁘기만 할 추석이 다섯 유가족에겐 너무 슬픈 또 한 번의 명절로 기억되었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중이라 제대로 된 차례상도 올리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제가 웃는 것처럼 보여도 정말 웃는 게 아니예요."

검은색 양복에 쓸쓸하기만 해 보이는 故 양회성씨의 아들 양종원(30)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그만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드리고 싶어요.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라는 단지 그 이름만큼은요."

덧붙이는 글 | 세명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입니다.



태그:#용산참사, #정운찬, #이정희,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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