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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이 1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이 1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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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이 입을 열었다. 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가진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 참석해, "최근의 경기 회복은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과 재정을 풀었기 때문"이라며 "이에 따른 후유증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경제가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이 전 원장은 경고했다.

'위기가 언제쯤, 어떤 형태로 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일부에선 더블딥(경기 침체후 다시 침체로 빠지는것)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일어날 것인지는 예상하긴 어렵다"면서 "국가재정 적자가 커지면서 (국가) 기능이 크게 떨어질 수 있고, 막대한 유동성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문제가 크게 대두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출구전략(경기침체기에 풀었던 유동성 등을 흡수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이 전 원장은 "지난 여름께 이미 출구전략을 폈어야 했다"면서 "이제라도 (금리인상을 통한) 출구전략을 점진적으로 쓰면서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정운찬 총리의 후배이기도 한 그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낸다"면서 "총리로 내정되기 며칠 전에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렇게 갈 줄은 몰랐고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8개월 만에 입 연 이동걸 전 원장, "심각한 위기 다시 올 수도"

"금산분리 완화는 한마디로 재벌에 은행을 넘겨준다는 것인데 굉장히 신중히 해야 합니다. 대운하를 파면 다시 메우기 힘든 것과 같죠."
 "금산분리 완화는 한마디로 재벌에 은행을 넘겨준다는 것인데 굉장히 신중히 해야 합니다. 대운하를 파면 다시 메우기 힘든 것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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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원장은 지난 1월 말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놓고 돌연 중도 사임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한림대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왔다.

특히 민간 연구소인 금융연구원장을 물러나면서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다"면서 "정부가 연구원을 '싱크탱크'가 아니라 (홍보 수단인) '마우스탱크'로 생각한다"며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만 8개월 만에 외부강연에 나선 그는, 이날도 평소 강한 소신이었던 금산분리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금융에서의 4대강 개발 사업이나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잠시 그의 말을 옮겨본다.

"금산분리 완화는 한마디로 재벌에 은행을 넘겨준다는 것인데 굉장히 신중히 해야 합니다. 왜냐면 은행이 재벌소유로 가면 이를 다시 돌이키기 어렵기 때문이죠. 대운하를 파게 되면 이것을 다시 메우기 힘든 것과 같죠. 요즘은 대운하 대신 4대강 사업이라고 하지만..."

이 전 원장은 재벌의 은행소유에 따른 폐해 역시 운하를 파는 것 못지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외환위기 당시 신동아그룹의 소유였던 대한생명의 유동성 위기의 예를 들면서, "그룹이 위기에 처하자 오너 일가가 하루아침에 (대한생명의) 돈 3조 원을 빼내가 버렸다"면서 "결국 튼튼했던 생명보험사가 흔들리면서 멀쩡한 국민세금 3조 원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는 금융의 4대강 개발사업"

그는 이어 "금융기관을 통한 부실 계열사 지원뿐 아니라 재벌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를 강화에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면서 "이는 금융소비자로부터 맡겨진 돈을 잘 관리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로, 미국 등 선진국에선 형사처벌까지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 전 원장은 "이들(재벌)의 은행 소유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더 가속화 시킬 것"이라며 "만약 이렇게 경제산업 구조가 진행된다면, 10년 전과 같은 위기를 다시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산분리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흥분하게 된다"면서 겸연쩍게 웃으며 말하던 이 전 원장은, 세계적인 기업인 GE와 IBM 등의 예를 들면서  "우리나라처럼 금산분리가 철저하게 붕괴된 나라도 없다"고 말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산업자본(기업)이 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 등 금융기관을 가지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어요. 재벌들이 자주 언급하는 GE캐피탈은 우리로 따지면 대부업체라고 보면 됩니다. 자동차 회사인 GM도 자동차 할부금융을 하다가 망했죠. 다른 세계적인 기업들이 증권, 보험회사 갖고 있나요?.

우리나라는 재벌들이 생명과 화재 등 보험, 증권, 투자은행 등 이미 제2금융권은 다 장악하고 있어요. 이쪽 다 풀어줬는데도, 경쟁력은 국제적으로 아직도 삼류수준이에요. 은행을 달라고 하기 전에 이곳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죠."

"잃어버린 10년 아니다... 엠비정부는 슈퍼자본주의에 가까워"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 참석자들이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에 관한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 참석자들이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에 관한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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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원장은 이날 강연의 주 내용인 <슈퍼자본주의>(로버트 라이시, 김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공존과 균형발전을 유독 강조했다.

특히 미국이 1930년 대공황 이후 진보의 시대, 1970년대 이후 30년에 걸친 보수의 시대,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보의 시대로 넘어가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진 사람이 더 가지면서 투자와 고용도 늘리면 못 가진 사람들에게도 부가 이전된다는 견해를 따르고 있다고 말하고 "이는 성장과 분배 논쟁에서 지난 60~70년대에 유행했던 고전적인 견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이 같은 이론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있는 사람들에게 몰아주기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과거에는 돈이 없어서, 잘 사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고, 거기에서 투자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은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 하는 시대가 아니죠."

또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해가는 현상을 '슈퍼자본주의'로 정의한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밝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생산적 복지,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을 보면 절대로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 전 원장은 이어 "지난 10년은 민주적 자본주의에 가깝고, 현 이명박 정부는 슈퍼자본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면서 "'슈퍼자본주의'의 저자가 지적한 대로, 실제 현 정부 들어서 민주주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3년 내 양극화·교육·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면 이명박 찍을 것"

이어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게 되면, 계층 간·기업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고용시장은 더 악화되며, 대기업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 확대로 결국 민주주의 위기와 함께 균형적인 발전까지도 저해된다는 것이다. <슈퍼자본주의>의 저자인 라이시 교수와 이 전 원장의 생각이 맞닿아있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이 1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이 1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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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슈퍼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단기적으로 보면 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며 "(슈퍼자본주의는) 정치 사회적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결국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그렇다면 이 전 원장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물론 과거 10년 동안에도 양극화와 비정규직, 교육 문제 등은 있어왔지만, 지난 정부에선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의제로 올려놓고,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을 했었죠. 만약 이런 문제를 현 정부가 3년 내에 해결한다면,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를 다시 찍을 겁니다.(웃음)

무엇보다 슈퍼자본주의로 가는 방향은 굉장히 저급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장기적인 번영과 성장의 길로 가기 위해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해야 하고, 시장의 불안정성을 고쳐 나가기 위한 합리적인 법과 규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선진화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죠."



태그:#이동걸, #노무현 강독회, #출구전략,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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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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