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노동자의 결혼식이 열린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즐기는 피로연이 끝나면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에 대한 기쁨보다 피로연에 들어간 비용에 대한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그것도 낮선 땅에서 외로운 삶을 택한 이주자들. 이주노동자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까?

'유르기스'는 젊고 힘 있는 청년이었다. 패기가 있었고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만사에 자신만만했고 어떤 어려움도 뚝심있게 헤쳐나갈 용기도 가지고 있었다. 결혼한 처와 태어난 자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빚은 늘어나고 집세를 갚느라 굶는일이 늘어났다.

그가 어렵사리 들어가게 된 곳은 도축가공공장이었다. 먹는 '고기'를 생산하는 곳. 소나 돼지를 잡아서 자르고 다듬는 과정과 피를 빼고 창자를 꺼내어 씻는 과정, 큰 도막을 잘게 자르는 과정, 뼈를 발라내는 일, 비게를 따로 모으는 일, 찌꺼기 살들을 모으는 일, 포장하는 일 등이 그곳의 일이다.

부패가 가능한 식품을 다루는 곳은 위생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위생을 위해선 '청소'라는 공정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구와 설비, 그리고 노동자의 의복과 청결을 위한 수세 시설 등은 고스란히 공장 운영자의 투자비용으로 추가되기 때문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장주의 선택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다. 살이 많은 곳. 쥐와 파리, 바퀴가 극성이다. 자연스럽게 그것들의 사체가 가공육류에 섞이기도 한다.

도시전체에 냄새가 흐른다. 냄새는 여간해서 빠지지 않으며 쌓이고, 쌓인다. 냄새의 근원지는 공장이다. 도살장으로 시작해 몸통을 절단하는 곳에는 피가 고여서 썩어가고 벽에 튀어 있는 살점들과 핏물이 말라붙어서 검게 딱지를 이루고 있는 곳은 처음인 누구나 토악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매일 일하는 이들은 냄새에 익숙해진다. 다만 세균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것이란 병에 익숙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유르기스와 수 백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그런 곳에서 일한다. 고기를 자르고 또 자르고 또 자르는 일. 공정이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생산량이 줄기 때문에 공정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그를 위해 힘센 젊은이들이 자르고 자르다가 자신이나 동료의 신체를 자르기도 한다.

반복되는 급한 근육의 사용과 환기도 안되는 부패와 오염의 공간에서의 작업이 주는 병에 걸리거나 아프면 바로 잘린다. 공장입구에 줄을 서고 기다리는 수 많은 미취업이주자들에게 자신의 자리가 돌아가기에 아파도 아플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노동의 덫'에 빠지고 만다.

일의 대가는 말도 못하게 형편없다. 집세를 내기에도 식료품을 사기에도 항상 부족하다. 문화생활이나 여가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밥과 거주공간을 위한 돈. 그 돈조차 벌기 힘들다.

갓난아기조차 굶기 일쑤고 걸음마를 하는 나이엔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 동냥을 하든 신문을 팔든 알아서 먹고 사는 법을 배운다. 유르기스의 아내 '오나'는 작업반장에게 몸을 팔아서 통조림통을 칠하는 직장 일을 유지하고 유일한 기쁨인 자식은 포장도 해주지 않는 집앞 도로의 진창에 빠져서 목숨을 잃는다. 위험에 노출된 작업자들은 매일 다치고, 병들고, 잘리고, 죽는다. 마치 기계의 부속처럼 '소비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자본주의가 적절히 통제되지 않을 때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집안식구들 모두 어디든 무슨 일이든 벌어도 결국 얻어오는 것은 병, 상처, 소외와 자신의 무능함을 책망하게 되는 절망의 아픔뿐이었다. 아이를 잃고, 직장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은 불공정계약에 속아서 계약한 집도 잃게 된다. 방황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곳엔 아내마저 돈이 없어 먹지 못한데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약육강식의 정글의 비유는 맞지 않는다. 인간의 세계엔 지속가능함의 미덕은 없다. 한 없이 추락하는, 빠져서 허우적 댈수록 더 빠지는 늪이 오히려 더 어울릴 듯하다.
▲ 책표지 약육강식의 정글의 비유는 맞지 않는다. 인간의 세계엔 지속가능함의 미덕은 없다. 한 없이 추락하는, 빠져서 허우적 댈수록 더 빠지는 늪이 오히려 더 어울릴 듯하다.
ⓒ 페이퍼로드

관련사진보기

평등과 기회의 땅으로 알고 꿈을 위해서 헌신하던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자신들이 억압과 부정, 기회의 불평등이 주는 악몽과 고난의 진창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빼려고 해도 빠지지 않는 늪에 빠진 듯 서서히 잠기고 허우적댈수록 더 빠져드는 세계.

노동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의 노동자의 모습을 지나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내는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은 발간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착취'에 대한 묘사다. 자본이 인간성을 잠식하고 마치 노예처럼 부릴 수 있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섬뜩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 이 작품을 보는 시각이 '고기'에 대한 비위생적인 생산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을 읽고 미국에서 FDA가 생기게 되고 관련법과 육류 검역법이 생겼다. 너무 '식품위생'을 강조하다가 중요한 가치를 놓칠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노동에 관한 가치와 자본주의가 그 가치를 압살하는 방식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작가의 의도는(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사회속의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 자본주의 정치와 경제구조의 국가가 가진 문제점을 한 인간의 생존과 투쟁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여전히 이물질과 비위생적인 식품류는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 특히 기회를 얻고자 이 땅에 꿈을 가지고 오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긴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그놈'들 까지 챙길 여유가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정글/ 업튼 싱클레어 저, 채광석 옮김/ 페이퍼로드/ 14,800원



정글

업튼 싱클레어 지음, 채광석 옮김, 페이퍼로드(2009)


태그:#정글, #식육가공공장, #소고기, #햄버거, #자본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