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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중앙입구에 붙은 '신발의 초상, 발의 역사'전 홍보판
 성곡미술관 중앙입구에 붙은 '신발의 초상, 발의 역사'전 홍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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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명화처럼 보게 하는 전시회 '신발의 초상, 발의 역사(Portraits of shoes, Stories of feet)'전이 성곡미술관 본관 및 별관 1전시실에서 11월 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에는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64켤레의 신발이 전시된다. 신발의 변천사, 그 이면에 숨은 사연들, 그 은밀한 성적 유혹과 권력의 음모도 엿볼 수 있다. 신발로 한 시대정신을 읽고 역사를 바꾸고 인생에서 큰 변화를 주는 마술과 같은 신화로 보면 어떨까 싶다.

섹션주제를 다섯 개로 나누고 종류별도 전시

성곡미술관 제1전시실에 짚신코너. 우리나라 짚신도 있다. 전시용이라 한 켤레씩만 선보인다
 성곡미술관 제1전시실에 짚신코너. 우리나라 짚신도 있다. 전시용이라 한 켤레씩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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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은 종류별과 함께 섹션을 5개의 주제로 나눈다. 섹션은 바로크와 록 앤 롤, 정치 혹은 호사(권력과 춤), 스포츠와 자연(유연성과 기록), 대담한 혹은 관능적(쾌락과 외설), 기괴한 형상(재료와 형태)이다. 신발에도 이렇게 부제를 붙이고 문화로 읽으니 재미있다.

위 사진은 짚신 코너, 프랑스 로망 시(市)에 있는 '국제신발박물관'에서 대여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온 것과 캐나다 원주민 눈신발 등이 전시되고 있다. 그 모양이나 제조방법이 제각각이라 흥미롭고 천연재료라 정겨움이 묻어난다.

기획자는 이번 전을 바로크나 록 앤 롤로 비유

전시설명회에서 기획의도와 그동안 준비과정을 설명하는 이브 사부랭씨. 로망국제신발박물관 팸플릿(뒷면)
 전시설명회에서 기획의도와 그동안 준비과정을 설명하는 이브 사부랭씨. 로망국제신발박물관 팸플릿(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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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의 기획자인 큐레이터 이브 사부랭(Yves Sabourin)씨는 서울 전을 바로크나 록 앤 롤(Rock'n roll)로 비유한다. 그 속성에서 두 가지가 닮은 구석이 많은 모양이다.

바로크나 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하고 매혹적이고 기상천외하나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발이 바로 그런 분위기다. 그래서 그런가 여기 신발은 그냥 소모품이 아니라 예술적 감각을 일깨워주는 오브제 같다.

권총구두, 전구달린 신발 등 번뜩이는 아이디어

샤넬제품 패션구도 2008. 샤넬제품 패션구두 2007
 샤넬제품 패션구도 2008. 샤넬제품 패션구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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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과 2008년에 샤넬에서 내놓은 권총 모양의 구두나 불이 들어온다는 전구알 신발은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사람들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밖에도 나막신, 하이힐, 부츠, 샌들 그리고 포스트 모던한 감각의 스포츠화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남자의 심장을 뚫고 그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은 킬힐도 보인다. 하이힐의 이름이 이렇게 다양한지 전혀 몰랐다. 하여간 이런 신발을 보니 어떤 날은 예쁜 하이힐을 신고 싶고 또 어떤 날은 반항적인 글래디에이터 하이힐을 신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여성들은 왜 신발에 목숨을 걸까?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 명품신발. 이 신발은 우아하고 예쁘지만 많이 불편해 보인다. 19세기 중국전족(아래). 전족은 정말 끔찍해 보인다.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 명품신발. 이 신발은 우아하고 예쁘지만 많이 불편해 보인다. 19세기 중국전족(아래). 전족은 정말 끔찍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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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현대여성이 이렇게 신발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뭔가? 그건 신발이 단지 신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품격과 신분을 높일 수 있는 마술사로 보기 때문인가. 하긴 '신데렐라'를 보면 신발은 여성이 왕자를 만나게 하는 도구다. 신발에는 이렇게 여성의 환상과 욕망이 숨겨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발 모양을 끔찍한 기형으로 만드는 중국의 전족 풍속이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으니 놀랍다. 모 의학지에 의하면 한국여성 10명 중 4명이 발이 아프지만 유행에 따라 불편한 신발을 신는다고 한다. 영국여성도 영국족부의학회 조사에 따르면 37%가 그렇단다.

하이힐에 발을 넣는 순간 미인이 된다(?)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 하이패션구두 2007-2008. 서울거리에서 찍은 한 여성의 하이힐 2009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 하이패션구두 2007-2008. 서울거리에서 찍은 한 여성의 하이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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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는 라크루아의 구두에 발을 넣는 순간 여성은 미인이 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인가. 이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하는 '광고기호를 소비하는 사회'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더 얇게! 더 아찔하게! 하이힐 매력에 풍덩!"과 같은 매혹적 카피에 안 넘어가는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긴 요즘 젊은 여성은 웬만한 개성과 돋보임이 드러나지 않은 신발이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우연히 찍은 하이힐(오른쪽)을 보니 여성의 신발에 대한 취향이 얼마나 다양하고 멋진 신발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신발 속에 서린 권력과 신분상승의 음모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 장화(cuissardes) 1990-1991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 장화(cuissardes) 199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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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화를 보니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권력과 신분상승에 대한 음모가 숨겨진 것 같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이 평민과 차별화된 구별 짓기를 했듯이 이런 신발을 신으면 남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마법의 덫에 걸려 못 빠져나올지 모른다.

산업자본가들은 바로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이 아닌가. 하긴 70년대에는 초미니 스커트가 유행되면서 덩달아 하이힐도 날게 돋친 듯 팔리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요즘 소비는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사회적으로 강제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신발이 발전하는 역사
고대 이집트에서는 가죽이나 종려 같은 나뭇잎, 파피루스로 샌들을 만들어 신었고 파라오는 금신을 신었다. 샌들을 신는 것은 신관·왕·귀족 등에게 허용되었던 특권이었지만, 자기보다 고위자 앞에서는 신을 벗었으며 성역에서는 신지 않았다. 부츠는 고대사회 군대에서 썼으며 아시리아는 군인의 화려함 자랑하려고 스파르타에서는 군인들이 전쟁에서 피 흘리는 것은 은폐하려고 신었다.

드몰리셰 아디스타르 2007(앞). 마리 뒤카르테 2006. 스포츠화
 드몰리셰 아디스타르 2007(앞). 마리 뒤카르테 2006. 스포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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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에 샌들은 착용유무에 따라 귀족과 노예의 신분을 구별되었다. 중세에는 구두조합도 생겼고 신발의 유행을 생겼다. 13세기에 와서는 신분이 높을수록 신발이 뾰족해지고 길어졌다. 나중엔 길이가 50cm까지 늘어났다. 르네상스이후에는 신발이 실용적으로 넓어지고 길이는 짧아진다. 

18세기 프랑스혁명 때에는, 나막신이 판탈롱과 함께 혁명파의 상징적 복장처럼 되었다. 단단한 나무로 만든 이 신은 화려한 클록(clog)으로 변신했고 사보(sabot)로 불렸으나 노동파업 때 이 신발을 기계에 던져 공장 문을 닫게 하여 '사보타주'하는 어원을 낳기도 했다. 19세기에는 곰발바닥처럼 신발 폭이 넓어졌고 굽은 60cm까지 높아졌다.

20세기에 들어와 옷과 맞춰 신는 토털패션도 생기고 재봉틀이 보급돼 신발도 대량생산가 가능하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사넬 같은 하이패션신발과 고급제화점도 등장한다. 최근에서 하이테크스포츠화가 하루가 다르게 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엔 조선시대 제사 때 착용하는 '흑피혜(黑皮鞋)'가 있었고 사대부나 양반계급의 고령자가 평상시에 편하게 신는 '목화'와 한말에는 왕도 평상복과 함께 신는 '태사혜(太史鞋)' 그리고 '발막신', '짚신' 등이 있었다. 여자 신으로 고무신과 비슷한 '당혜(唐鞋)', 상류층 부녀자들이 신은 '진신', 서민들이 주로 신은 '미투리', 나무로 곱게 만든 '나막신'이 있었다.

1950년대 유럽에선 신발이 인구증가에 영향

프레드 사탈(Fred Sathal) 무도화 '살로메(Escarpin Salome)' 2005. 샤넬 '패션신발' 1957. 미술관자료에는 사탈신발은 '정치와 호사'섹션으로 샤넬신발은 '관능적 쾌락과 외설'섹션으로 분류한다
 프레드 사탈(Fred Sathal) 무도화 '살로메(Escarpin Salome)' 2005. 샤넬 '패션신발' 1957. 미술관자료에는 사탈신발은 '정치와 호사'섹션으로 샤넬신발은 '관능적 쾌락과 외설'섹션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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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발은 인간의 욕망을 담는 사회적 기표가 되기도 한다.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경우를 보면 당시 신발 콘셉트는 대담한 관능미다. 왜냐하면 2차 대전 후 유럽은 중세 흑사병 때처럼 인구가 절대 부족했고 경제를 부흥시킬 인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1947년 크리스찬 디오르 컬렉션 뉴룩(new look)을 봐도 그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다. 구두 굽과 발가락 부위를 뾰족하게 하여 남자의 성욕을 자극하도록 디자인됐다. 누드화가 연상시키는 샤넬의 1950년대 후반기 작품도 그런 에로틱한 분위기가 남아있다. 신발은 이렇게 한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관련성이 있다.

신발을 주제로 한 다른 작품도 소개

필립 파로-라가렌(Philliippe Parrot-Lagarenne) '작은 모방(Petite Imagination)' 연작 2007. 바로크 풍이다.
 필립 파로-라가렌(Philliippe Parrot-Lagarenne) '작은 모방(Petite Imagination)' 연작 2007. 바로크 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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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번 전은 신발의 변천사와 그 신발마다 가진 여러 다른 얼굴과 표정을 나라별로 시대별로 비교해 볼 수 있어 좋다. 신발 디자이너라면 한번 봤으면 좋을 전시회다.

그밖에도 본관1층에서는 신발과 관련된 기유미노(M. A. Guilleminot 1960~)의 사진과 필립 파로-라가렌의 조각도 볼 수 있다. 또한 발레를 사랑하여 '왕립무용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무용수로 된 루이14세가 후에 명품 발레화인 레페토(Repetto)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는 비디오작품 등도 감상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성곡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01 02) 737-7650. www.sungkokmuseum.com
성곡미술관 어린이교육프로그램도 있음. <미술관에 놀러와 4> - '내가 만드는 신발의 초상'



태그:#하이힐, #로망국제신발박물관, #신발의 역사, #샤넬, #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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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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