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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등학교 1학년인 저의 아들 영대는 모티프원의 청소를 도와주기위해 주말에 헤이리로 옵니다. 영대는 헤이리로 올 수 있는 주말을 무척 좋아하지요. 몇 시간 근로를 바쳐야하지만 일요일날 아침 정성운 사부님과 팔극권을 수련할 수 있고, 좋아하는 애완견 해모와 만날 수 있으며 간혹은 엄마와 수다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처는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면 비록 아들이 시험기간이라도 둘이 수다피우는 일을 좀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영대의 누나 주리가 '엄마는 영대 공부의 가장 큰 적'이라고 나무랐겠습니까. 저도 하는 일들을 멈추고 둘이 긴 수다에 몰두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얘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요즘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짧은 것이 문제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엄마와 대화하는 것이 문제에요? 남들은 엄마와 아들이 서로 무관심해서 탈인데……."

 

오늘도 청소가 다 끝난 시간, 영대와 엄마의 수다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불쌍해요."

영대의 뜬금없는 소리에 저도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우리 반에서 일등 하는 친구요. 그런데 공부하는 기계 같아요. 등교할 때 가방이 3개에요. 등에 메고 양쪽 어깨에 두 개를 더 걸치고 와요. 간혹 손에도 뭔가 들려있을 때가 있어요. 학교에 오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자요. 선생님이 오셔서 깨워요. 집에서 하루에 2~3시간만 잔데요. 학교에서 노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친구와 대화하는 법이 없어요. 유일하게 말을 불이는 친구는 전교 일등 하는 다른 반 아이에요. 그러니 하루 종일 아마 열 마디도 안 할 거예요. 처음부터 친구들이 말을 걸으면 공부하느라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지금은 아무도 말을 붙이지 않게 되었어요."

 

엄마가 답했습니다.

"영대처럼 공부 못하는 아이의 변명 같은데……. 그렇게 굳은 의지로 공부하는 아이가 대단한 거지."

답답하다는 듯 영대가 다시 받았습니다.

 

"점수가 그렇게 중요해요? 지난번 체육시간에 핸드볼의 수행평가 시험이 있었습니다. 드리블을 해서 슈팅을 하는 거였어요. 마침내 그 일등 하는 아이의 차례가 되었는데 공을 들고 뛰어가서 슛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나무랐지요. '드리블을 해서 슛을 하라고 가르쳤잖아. 다시 해봐!' 그런데 이번에도 다시 공을 안고 뛰어가서 슈팅했어요. 선생님께서 약간 화 난 목소리로 불러서 물었습니다. '너 왜 그래?'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드리블을 하면 슈팅이 잘 안될 것 같아서 드리블보다 점수가 더 높은 슛에서 점수를 얻으려고요.' 그러자 선생님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래 알았다. 들어가거라.' 그럼 엄마는 제가 1~2점 더 받기위해 드리블도 안하는 자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팔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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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엄마가 아무래도 논리에서 점점 밀리는 듯싶었습니다. 듣고만 있던 제가 개입을 했습니다.

"그래도 학생의 기본 의무는 공부야."

"학교는 왜 모든 것을 다 가르치려는지 모르겠어요."

영대는 이어서 학교의 커리큘럼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나중에 다 쓰임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아빠는 학교졸업하고 지금까지 루트(제곱근)를 몇 번 써보셨어요?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이차방정식조차 쓸 일이 있었어요?"

"수학은 사고와 논리의 힘을 키우는 거야. 사실 아빠는 네 말대로 생활을 하면서 루트나 이차방정식을 쓸 일이 없었지만, 아빠가 통합적으로 사고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 믿는데……."

"저는 주위 사람들이 덧셈과 뺄셈, 곱셈과 나눗셈 외에 다른 셈을 쓰는 것을 못 보았어요.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점수를 더 많이 얻기 위해 그것을 공부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잖아요."

 

"그럼, 그 시간에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겠느냐?"

"운동을 해야지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데……. 일등 하는 아이모양 늘 어깨가 휠 만큼 책가방을 세 개나 메고 학교만 다녀야겠어요? 밤에도 2시간만 자고?"

저는 아들의 논리를 획기적으로 뒤집을 만한 적당한 변명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아들이 속으로는 '아빠도 역시 다른 어른들과 다름이 없군.'하는 체념을 했을 수도 있는 상투적인 답을 한 직후 저는 자리를 떴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생각을 담기위해서 학교의 통합적인 공부가 필요한 거야."

 

▲ 이영대 2009년 6월 20일부터 21일까지 전북 전주시에서 개최된 제4회국민생활체육협의회쟁배전국우슈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고등부 개인경기 우승을 하였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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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처는 저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아들 얘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그래도 영대의 생각만큼은 올바른듯해서 다행입니다. 지난번에는 이런 말을 했어요.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간혹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데 자신이 슛을 쏠 수 있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공을 넘겨주곤 했데요. 그랬더니 친구들이 자신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더래요. 스스로 골을 넣는 것 보다 어시스트를 하는 것이 자신의 인기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지난번 학교체육대회에서는 족구를 한 모양이에요. 수행평가에 들어가지 않는 종목은 아이들이 통 관심이 없나봐요. 그런데 영대가 자기 반 아이들을 뽑아 팀을 꾸리고 짧은 시간 가르쳐서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자기반이 일등을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운동도 수행평가에 들어가는 것만 해야겠느냐고 한심해 하드라고요."

 

영대가 요즘 빠져있는 것이 있습니다. 중국어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술의 스승이신 정성운사부님과 그 무술의 발생지인 중국 창저우(滄洲)  멍춘(孟村)에 가서 팔극권의 7세 종가 오련지 노사님을 직접 뵙고 그 가르침을 얻으면서 중국어의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영대의 흥미를 눈치 챈 정성운사부님은 이즘 영대와 일요일 새벽 수련을 마치면 30분씩 고사성어를 중심으로 중국어를 가르치곤 합니다. 오련지노사님께서 영대를 위해 직접 화선지에 먹으로 써주신 금언을 중심으로 한 중국어의 발음과 뜻의 가르침임으로 영대는 더욱 흥미 있어 합니다.

 

 

영대는 지금까지 배운 말들을 제게 종종 섞어 말하곤 합니다.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노자老子의 구절입니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앎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니, 앎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진정 아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미 빛이되 티끌과 함께하는 것을 현동(玄同)이라고 합니다만, 진정 어려운 것이 현동하는 것이지요), 역수행( 주逆水行舟 '배움이란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물러서게 된다'는 학문하는 이의 자세를 말합니다), 부파만 지파참(不怕慢 只怕站 천천히 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다만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걱정하라,는 중국의 속담입니다), 자강불식(自强不息 역경易經에서 유래된 말로 '천체의 운행이 쉼 없이 건실하듯, 군자는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같은 말들입니다.

 

 

정성운사부님은 세상의 다른 일들처럼 무술을 열심히 수련하여 강한 자가 되되, 강한 자가 강한 것을 결코 약한 자에게 쓰서는 안된다, 는 생각입니다. 다만 강한 것으로 족하다, 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정 사부님은 영대가 혹이라도 무술로 인해 경거망동하는 습성이 마음의 한 구석에라도 끼일까 염려되어 끊임없이 겸손과 끈기 같은 보편적인 덕목을 강조합니다.

 

이즘 저는 영대를 통해 저의 학창시절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이영대, #정성운, #팔극권,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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