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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갈고 한지를 서진으로 눌러 펴놓고 붓을 든다. 글을 쓰는 것이다. 마음의 수양이나 예술을 위한 행위다. 누군가와 소통하거나 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핸드폰을 들고 각기 다른 버튼을 눌러 글자를 만들고 문장이 완성되면 '전송'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원하는 상대방은 내가 썼던 문장을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시차 없이 받아 볼 수 있다. 하지만 100여 년 전엔 글을 쓰는 것이 바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방법이었고 자신의 생각을 저장하는 방법이었다.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이익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사람을 싣고 가고, 스위치를 누르면 밤에도 환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됐으며, 비행기를 타고 다른 대륙으로 한나절 만에 날아갈 수도 있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았다가 내일 또 들을 수도 있다. 또한 높은 사람의 행동과 연설을 영상을 통해서 전 국민이 공유하는 일도 이젠 일상이 됐다. 이 모두 과학 발달이 이루어낸 오늘의 '편리'다.

 

이익과 편리의 과학?

 

이런 이익을 준 과학에 딴죽을 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고 그 익숙함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오는 불편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되돌리는 일'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가치에도 맞지 않다.


이에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나섰다. 거꾸로 가자는 것은 아니다. 잠시 멈춰 생각을 하고 나아가자는 이야기다. <과학, 일시정지>는 현대 과학이 지향하는 가치와 흐름이 너무 빨리, 생각 없이 진행되는 것을 경계한다. 과거에 경험했던, 과학의 실수 혹은 잘못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모든 이를 위한 가치, 삶에 대한 가치를 위한 도구로서 과학이 되길 바라는 일이다.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모임이 지은 이 책은 물음에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현재의 과학이 지니는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과학이 맡을 역할에 대한 일반의 물음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과학의 발전을 심의하는 역할을 대중이 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정보를 주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물음'은 우리에게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기후변화는 오늘날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협약. 교토에서 이뤄진 결정이 시한을 다하고 코펜하겐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그냥 집에서 개인이 행동해서 될 일의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탄소배출원인 제조업의 공장들을 줄여야 하며, 자동차 매연을 규제하려면 현재 운행되는 차량 수를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거의 모든 제품의 생산 및 에너지원인 전력 생산 방법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경우, 그냥 이대로 가겠다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내비치고 있어 우려스럽다. 현재의 경제력에(국민총생산 13위 국가) 비해 너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실정이다. 회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국가 정책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합의 사안이 곧 결실을 맺을지 기대되는 시점이다.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일은 과연 지구온난화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사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돈이 오갈 뿐이지 현재의 배출량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받은 후진국이 산업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오히려 전체 배출량은 훨씬 늘어날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 신재생에너지는 어떤가. 과연 그것은 탄소를 줄이고 에너지원에서 석유를 제외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해결책은 어떤 것인가.

 

잠시 멈추어서 생각해보기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수많은 동물들에게 실험실에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올바른 것일까. 무수히 희생된 동물들 덕택에 탄생한 신약과 백신, 화장품을 인간에게 사용되는 임상 이전의 테스트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장 적절한 선택인가. 개를 먹는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주제가 되긴 하는 것일까?


국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배아줄기세포 복제연구의 세계적인 학자가 될 뻔했던 황우석 박사의 연구방식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 아인슈타인이 핵무기개발에 공헌한 일은 시대의 사명이었는가. 과학자가 가져야 할 윤리는 어떤 것인가.


원자력에너지는 과연 '녹색에너지'인가. 방폐장 건설은 불가피하고 그곳은 안전한 것인가. 원자력발전 의존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은 한국은 앞으로 시설 관리와 운영을 어떻게 해야 미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나노기술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그 혁신 기술에 주의해야 할 점은 없는가. 아주 작은 입자가 세포를 자유로이 통과하는 일이 인간의 삶에 재앙이 되진 않을까.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시대는 과연 유토피아를 펼칠 것인가. 개인생활 제한과 몰인간화 우려는 없을까? 유전자조작 농산물 및 식품 논란은 왜 있는 것이며 어떤 이익과 단점이 있는 것인가. 부족한 식량을 해결할 혁신이라는데 정말 그럴까. 유전자를 조작해서 종을 변환시키는 일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지속가능한 에너지는 있는 것일까. 지금 클린에너지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원자력에너지의 비율이 높은 한국의 미래는 어떨까? 나를 움직여서 내는 에너지가 가장 깨끗한 에너지 아닐까. 피크오일의 시대에 사는 우린 어떤 가치를 지녀야 계속 지구 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엄청난 탄소배출을 유발하는 현재의 음식유통을 개선할 방법은 무엇이고, 소비자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잘못된 흐름을 바꿀 수 있다

 

과학 현안에 대한 의문 및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이 발동한다. 지금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물을 아껴쓰고 전등 끄는 일만 하고 있으면 될까? 과학자와 기업, 정부가 주도하는 과학기술의 개발과 사용을 감시할 권한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과학에 의존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과학은 우리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중요한 과학기술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연구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사회는 시민에게 한 가지 권리를 더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과학의 발전 방향을 심의하는 과학적 시민권이다." (서문 중)

덧붙이는 글 | <과학, 일시정지>,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모임 지음, 양철북, 11000원


과학, 일시정지 - 과학 선생들의 현대 과학 다시 보기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지음, 양철북(2009)


태그:#과학발전, #유전자조작, #기후변화, #황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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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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