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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중에 오십대 초중반의 여섯 아줌마들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아침 8시 20분에 출발하는 '동서울-함평-지리산(백무동)'행 고속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을 빠져 나와 둘레길을 전북 남원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인월터미널'에 도착했다. 12시쯤이었다.

도보 첫째 날은 인월 ~ 매동마을까지 약 10km정도를 걸을 예정이다.
길에는 여러 종류의 이정표가 일정 구간마다 세워져 있었고 하나의 이정표에는 빨간표시의 화살표와 검정표시의 화살표가 맞대어 그려져 있었다. 우리가 걸을 길은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가야 한다. 이정표는 우리가 갈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끔 친절히 잘 세워져 있었다.

첫째 날 인월에서 시작된 지리산둘레길 초입의 제방길을 걸어가고 있다.
 첫째 날 인월에서 시작된 지리산둘레길 초입의 제방길을 걸어가고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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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짱짱히 쪼이는 제방 길에서 잠자리를 잡으면 놀고 있던 어린이들을 만났다. 낯선 아줌마들에게 모두가 인사도 잘한다. "안녕하세요" "안녕, 인사들도 잘하네"

인월 제방길에서 만난 어린이가 잠자리를 잡으려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
 인월 제방길에서 만난 어린이가 잠자리를 잡으려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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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 길을 지나서 농로를 걸었고, 중군마을도 지나고 황매암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수성대를 지났다. 배넘이재를 넘어 장항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갯길에 서 있던 당산나무와 옆 쉼터를 지나 장항교에 닿았다. 추수한 벼를 말리려고 쇠스랑으로 펼치고 있는 아주머니께 "벼를 벌써 베었네요?" 하고 인사 겸 물으며 지나가니 "그라요. 근디 그리 놀러 다니니 얼매나 좋겄소, 우리네는 허리 펼 일이 없다요" 하신다. 장항교 다리 밑을 흐르는 천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다슬기를 잡기에 여념이 없어 정말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짠해졌다.

장항마을을 지나는 곳에서는 벌써 벼를 베어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
 장항마을을 지나는 곳에서는 벌써 벼를 베어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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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경에 매동에 도착했다. 숙박을 하기로 한 부녀회장님 집에 짐을 풀고, 근처 실상사가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저녁어스름의 논둑길은 고즈넉했다. 일행 중에 고향이 시골이었던 사람이 '나락 냄새가 나지 않아?' 한다. 풋풋한 풀냄새가 맡아지는 듯도 했다.

저녁은 시골의 산채 밥상이다. 시원하고 고소한 무말랭이 물도 마셨다. 무말랭이 물은 처음 마셔본다. 고봉으로 밥을 푸는 아주머니에게 밥이 많다고 하니
"난 그렇게 쫌씩 못 퍼요, 많이 잡솨요"한다.
"아지매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요?"
"그냥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들이에요"
" 뭔소리라, 집 살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뭐니 뭐니 해도 그것을(살림을) 잘 살아줘야 국가경쟁력이 생기는 거란 말이지."
부녀회장님이라서 그런가 말씀이 살갗에 착착 달라붙는다.

도보 둘째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경에 매동마을을 출발했다.
오늘은 힘든 걸음이 될 수도 있다. 일정으로 잡힌 경남 함양의 동강마을까지 가려면 무려 25km를 걸어야 한다.

매동마을, 아침 해가 떠서 붉게 퍼지고 있다.
 매동마을, 아침 해가 떠서 붉게 퍼지고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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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에는 지천으로 고사리 밭이었다. 어제 내내 보았던 고사리 밭이 오늘도 눈에 띄고 밭두렁에까지도 고사리가 나 있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고사리의 비릿한 향이 맡아졌다.

둘레길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고사리밭, 모두 주인이 있는 밭이다.
 둘레길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고사리밭, 모두 주인이 있는 밭이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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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구재'를 오르는 길에는 까마중, 고마리, 여뀌, 물봉선, 이름 모르겠는 갖가지 풀꽃들도 제 모양대로 피어 있었다. 우리들은 위아래로 줄서 있는 다랑이 논의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며 감탄의 소리를 냈다.

등구재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보이던 다랑이 논
 등구재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보이던 다랑이 논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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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과 옻나무 밭과 좁은 오솔길 사이를 걸었다.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길들을 걸어서 조밭 샛길을 걸어 내려오니 금계마을이다. 다리쉼을 하며 주먹밥으로 점심을 했다. 벽송사 입구까지 걸어 올랐다가 추성마을로 내려오니 칠선계곡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맑은 물과 덩치 큰 바위들과 잘 생긴 소나무들이 둘러쳐져 있다. 잠시 계곡에서 쉬었다. 벽송사에서 넘어 가는 길은 절을 통과해야 하나본데  통제를 해서 추성마을에서 10분간 버스를 타고 다시 금계로 나와 용유담 앞에서 내렸다. 이상하게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미리 챙겨 두었던 자료를 참고삼아 용유교를 건넜다.

함양 동강마을로 가기위해 건넜던 용유교 아래의 용유담 계곡, 계곡의 물은 검푸른 짙은 색이라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함양 동강마을로 가기위해 건넜던 용유교 아래의 용유담 계곡, 계곡의 물은 검푸른 짙은 색이라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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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담의 물은 어찌나 짙푸른지 혹시 녹조현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어 보였다.
강을 끼고 길게 뻗어있는 신작로를 걷던 어느 지점에서 송전마을이 나타났다. 그 때가 용유교를 건너서 걷기 시작한 지 50분만이었다. 그 지점부터 다시 지리산 둘레길 표지석이 나타났다. 2박 3일 간의 둘레길에서 딱 한 번 길 때문에 우왕좌왕한 길이었다. 송전마을에서 만난 표지석으로 해서 이제 걷는 길에 확신이 들었고, 제 길에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다.

송문교를 지나니 오솔길이 나오고 오르막 농로가 나온다. 운서 쉼터를 지나 운서마을을 스쳐서 내리막길에 들어서니 저만치 우리의 목적지인 동강마을의 엄천교와 마을의 지붕들이 낮게 들어차 보였다. 오후 5시 30분이었다.

운서마을 농로 언덕길에서 내려올 때 보였던 동강마을
 운서마을 농로 언덕길에서 내려올 때 보였던 동강마을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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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셋째 날 은 경남 함양 동강마을에서부터 경남 산청 수철마을까지 11.9km길이다.
셋째 날 아침은 안개가 자욱하니 끼었다. 수철마을의 농로 길에 온통 뿌연 아침의 안개가 길을 점령 했다. 마을길에는 누렇게 익어 단맛을 잔뜩 품고 있을 것 같은 늙은 호박이 언구럭하게 숨어있고 담벼락에는 씨 마늘들이 바람에 제 몸들을 말리고, 벼에 맺힌 이슬방울만큼이나 깜부기들이 벼 잎에 매달려 있어서 벼들이 까뭇까뭇했다.

방곡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추모공원 맞은 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지리산 둘레길인 상사폭포로 가는 길이다. 농로와 산길,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걸으며 쌍재에 도착했다. 산길이 좋다. 잘생겨 보이는 소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늘씬한 키들을 자랑하듯 울창하게 심어져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더덕향이 바람에 날려 콧속으로 스며든다. 산길의 끝인 고동재로 내려와서 수철마을까지 포장된 신작로로 걸었다. 아스팔트길이 끝날 것 같지 않게 발바닥을 힘들게 했다. 정강이가 자꾸 당기며 아프다.

왕산 쌍재에서 수철마을로 가기위해 고동재로 넘어가는 산길
 왕산 쌍재에서 수철마을로 가기위해 고동재로 넘어가는 산길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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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밤나무 농장 주인은 애걸하듯 지나가는 길손들이 밤나무를 건들지 말기를 하소연해 써 놓았다. 율무가 벼처럼 밭에 심겨져 익어가고 있었고 주택 마당에는 연갈색의 둥글레가 햇볕과 바람에 말라 가고 있었다.

수철마을에 도착했다. 아침 7시부터 걸어서 정오에 도착했다. 반나절을 걸은 것이다.
마을회관 앞 평상에 앉아서 마지막 다리쉼과 싸온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고 택시를 이용해서 산청 터미널로 나왔다.

터미널에서 만난 시골 어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둘레길? 그게 뭐요? 와 그렇게 걸었소이? 참말로 힘들게로" 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

우리들의 2박 3일 지리산둘레길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길은 이어져 있었고, 끊어진 길은 둘러가고 돌아가며 옛길을 밟으면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에는 산길, 제방길, 숲길, 오솔길, 신작로, 흙길, 논두렁길, 옛길, 들길, 마을길들이 있었다.
'길, 길, 길'......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자연을 이어 주는 길이 있었다.
우리 아줌마들은 지리산 둘레길의 여행을 그렇게 마치고 서울 길을 잡아서 돌아왔다.


태그:#지리산둘레길, #인월, #금계, #함양동강, #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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