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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율은 낮아지고~ 안전성은 높아지고' <서울도시철도>가 내 건 우측보행 홍보물.
▲ 안전으로 가는 더 좋은 발걸음, 우측보행 '사고율은 낮아지고~ 안전성은 높아지고' <서울도시철도>가 내 건 우측보행 홍보물.
ⓒ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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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하철, 공항, 항만 등 공공시설들을 동원해 전방위적인 우향우를 선포하고 나섰다. 그간 사회적 합의로 유지해왔던 '좌측보행'을 오는 10월 1일부터 이 기관들을 시범삼아 '우측보행'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2010 대한민국 보행 혁명, 우측보행 시대가 열린다'는 선전 문구를 내걸고, 이번 시범실시를 시작으로 내년 7월부터 우측보행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지난 23일과 24일 둘러 본 서울 지하철역 곳곳엔 실제로 '우측보행'을 홍보하는 선전물들이 넘쳐났다. <서울도시철도>가 내 건 '안전으로 가는 더 좋은 발걸음, 우측보행'이라는 선전물은 "사고율은 낮아지고 안전성은 높아지고"라는 문구와 더불어 "우리 몸에 알맞은 우측보행으로 보행방식이 바뀝니다"라며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보행자 우측보행은 이미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의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국제적 관습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측보행 시 짐이나 가방을 든 오른손끼리 부딪힐 확률이 현저히 낮아짐으로써 보행자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얻고, 차도와 인접한 보도에서의 우측보행은 교통사고 사상자 수를 약 20%나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오는 10월 1일부터 전국 지하철역, 공항, 항만 등에서 '우측보행'이 시범실시된다.
▲ 지하철역내에 있는 우측보행 홍보물 오는 10월 1일부터 전국 지하철역, 공항, 항만 등에서 '우측보행'이 시범실시된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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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인접 보도의 우측보행, 교통사고 사상자 수 약 20% 감소"

정부정책포털 '위클리 공감'은 지난 7월 4일 <우리나라 좌측통행의 역사, 일제 강점기 '좌측통행령' 관습으로 굳어져> 기사를 통해 좌측통행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903년 대한제국 고종황제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황제전용어차를 들여왔다. 이를 계기로 1905년 최초의 근대적 규정인 보행자와 차마의 우측통행 원칙을 규정했다. 이는 당시 대한제국 경무청에서 내놓은 경무청령 제2호 가로관리규칙 제6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921년 조선총독부는 사람과 차량의 통행방식을 도로취체규칙(조선총부령 제142호)에 의해 일본과 같은 좌측통행으로 변경했다. 좌측통행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1946년 미군정은 차량의 통행 방식을 우측으로 변경(군정청법 제65호․제차 및 보행자의 통행규칙)했지만 사람은 그대로 좌측으로 다니게 했다. 정부는 1961년말 도로교통법을 제정하면서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에서는 도로의 좌측을 통행해야 한다(도로교통법 제8조 제2항)'고 규정했다. 도로교통법의 이러한 규정은 엄밀히 말해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 한한다. 하지만 보도와 차도 구분이 명확한 보도는 물론 지하철 보행통로 등 교통시설에도 좌측통행의 원칙이 관습적으로 적용돼왔다."

좌측통행의 역사, 일제 '좌측통행령' 관습으로 굳어져

우측통행에 대해서는 기자가 지난 2005년 6월 5일자 기사 '왜 나를 갈지자로 걷게 만드는 거야?'를 통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기사의 댓글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통계치는 없지만, 우측통행을 지지하는 나름 타당해 보이는 의견도 있었다.

누리꾼 'hur'이 쓴 당시 댓글을 요약하면, 군대에서의 행군 시(보통 행군은 병사들을 길의 좌우로 나눠 한다) 우측보다 좌측에서 이동하는 병사들의 부상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경험과 운동장을 오른쪽으로 도는 이유, 마라톤에선 항상 길의 우측으로 달리고 추월할 때만 좌측을 이용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우측보행이 타당하고 안 하고를 떠나 문제는 국민들에 대한 홍보와 인식 전환에 달려 있다. 우측보행 시범 실시와 내년 7월 전격 시행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여러 공공기관들을 동원해 홍보를 하고는 있지만, 정부의 말대로 무려 88년간 유지돼온 인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횡단보도의 우측보행 화살표가 선명하다. 횡단보도에서는 예전부터 우측보행이 유지돼 왔지만 실상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르고 있다.
▲ 횡단보도 우측보행 횡단보도의 우측보행 화살표가 선명하다. 횡단보도에서는 예전부터 우측보행이 유지돼 왔지만 실상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르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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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우측보행은 좌축통행 규정 어긴 파쇼 행위, 레드컴플렉스다"

한편, 녹색교통연구소 정강 대표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국토해양부의 '우측보행' 실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우측보행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좌측통행 폐지'를 반대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우측보행은 멀쩡하게 존재하는 좌측통행 규정을 어기는 행위이다. 법치주의국가에서 법안도 마련 안 된 내용을 가지고 국민들을 선동하는 건 파쇼나 다름없다. 아마도 레드컴플렉스에서 비롯된 '좌' 없애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 대표가 지적한 좌측통행 규정은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 한해 도로의 좌측 또는 길 가장자리로 통행한다'는 도로교통법 제8조 2항을 말한다. 분명히 법에 좌측통행을 명시하고 있는데, 법안도 없는 상태에서 우측보행하라며 불법을 자행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보행규칙에 대한 규정은 이 법이 유일하다. 물론, 현 법안은 우측보행 시범실시와는 상관없이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의지대로 우측보행을 실시하다 보면 현재 법안은 이도저도 적용이 안 되는 모순이 생긴다. 법안 개정이 시급한 내용인데, 보행규칙을 놓고 좌로 가라, 우로 가라 하기에는 법안 자체의 개정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왜 걷는 것조차 통제하려 하느냐"

시민들이 우측보행 실시에 대해 헷갈려 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 여의도역에서 만난 이민자씨(73세)는 "왜 우측보행을 하라고 난리냐"며 "그냥 편한대로 걸으면 되지 정부가 왜 걷는 것조차 통제하려 하느냐"고 역성을 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붙어 있는 우측보행 안내 표시.
▲ 우측보행 표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붙어 있는 우측보행 안내 표시.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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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길동 한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이영미(17세·고2)양은 "아직 학교에서 우측보행에 대해 별다른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며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서 학생들끼리 이리저리 부딪히곤 하는데, 어느 쪽이든 보행방향을 확실하게 잡아 달라"고 말했다.

보행 규칙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주말 저녁 서울 종로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 환승역에서 이동하다 보면 사람들과 이리저리 얽히는 것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그 혼란스러움이 오른쪽으로 걸어서 한 번에 해결된다면 이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현재 시범 실시되는 우측보행이 지하철역과 공항, 항만 등에서 어떤 성과를 올릴지는 미지수다. 서울의 지하철역 경우만 해도 아직까지 에스컬레이터의 운행 방향이 제각각이며 장애인을 유도하는 보도도 우측보행에 맞게끔 제대로 보수되지 않았다.

사람 중심의 편한 보행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국민들의 의견을 하나씩 수렴해 가야 할 것이다. 자칫,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이상한 보행방식으로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기에 그렇다.

정부가 내 건 우측보행 홍보물. 보행 혁명이 이뤄지기에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대한민국 보행 혁명 우측보행 정부가 내 건 우측보행 홍보물. 보행 혁명이 이뤄지기에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위클리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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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측보행, #좌측보행, #우측통행, #도로교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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