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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려도 소용없다. 지난해 주식투자로 혼쭐이 난 어머니가 언제 그랬냐는 듯 주식에 다시 손을 댄다. 주식투자를 위해 포털 아이디를 만들고 인터넷을 배운 그였다. 가벼운 자동차 접촉사고로 병원신세를 졌던 2007년 여름, 휴게실 컴퓨터에 동전을 넣으며 '증시현황'을 살피던 모습이 떠오른다. 옆 자리의 꼬마는 쭈그려 앉아 '카트라이더'에 열중이었다.

요즘 강남의 부동산 '불패신화'가 재확인되고 있다. 그 상승세는 강북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서울지역 주택매매가격의 전월대비 상승률이 최저점인 마이너스 1.2%를 찍더니, 올해 2/4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세다. 전국 아파트 거래량도 지난 12월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 4만 3000여 건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금융당국은 월말에 3조원을 넘을 것이라 한다.

 금융투기의 역사
 금융투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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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졌다. 금붕어, 기억력 3초. 햄스터는 대략 3~4분. 전기충격을 준 물고기는 24시간 정도 기억했다는 영국의 어느 보고서도 있었다. 지난 주 '금융위기 이후 1년'이란 기사를 여러 신문에서 봤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억력은? 그 답을 찾고자 에드워드 챈슬러의 책 <금융투기의 역사>를 폈다.

"인생은 투기이고, 투기는 인간과 함께 탄생했다." 19세기 미국의 상인 케네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투기는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로마는 자산이전이 비교적 자유로워 시장이 번성했다.

사람들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었고 외환거래도 등장했다. 조세징수와 신전건립 등 상당부분을 퍼블리카니(Publicani)라는 조직에 아웃소싱했다. 퍼블리카니는 오늘날의 주식회사처럼 '파르테스'라는 주식을 통해 운영되었고, 일반인들이 소유한 소액주식은 장외시장에서 비공식적으로 거래되었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주춤하던 금융투기가 스콜라적 전통이 무너지던 중세말기부터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1960년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 스페인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동유럽의 직물산업이 붕괴되면서 네덜란드의 직물산업은 덩달아 호황을 맞이한다. 풍요를 만끽하던 네덜란드인들은 과시욕을 드러낼 대상을 찾았다. 그 대상이 바로 '튤립'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색깔에 따라 튤립을 다양하게 불렀다. 최상급인 '황제'부터 총독, 제독, 장군 순으로 나뉘었다. 황제튤립은 암스테르담의 집 한 채 값에 달했다. 튤립은 꽃이 만개할 때까지 무늬와 색깔을 알 수 없다. 그런 예측불가능성이 투기로 이어졌다. 자기 밭에 황제튤립의 뿌리가 있다면 그야말로 '횡재'요, '로또'였다.

튤립시장에 소위 '밭떼기'와 같은 선물시장이 등장했고 어음결제도 이루어졌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튤립뿌리를 '주식'처럼 취급했다. 심지어 프랑스인도 참여해 국제시장의 형태를 보였다. 광풍도 잠시 1637년 2월 3일 튤립시장이 붕괴되었다. 시장에 '더 이상 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실제 저가에 내놓은 튤립도 팔리지 않았다. 상인과 서민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그 후로 투기의 역사는 '쭈욱' 계속되었다. 1700년대 초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과 영국의 사우스시 버블, 1820년대 남미 광산 붐, 1845년 철도 버블, 주가표시기가 도입된 1870년대, 라디오와 자동차 개발이 이루어졌던 1920년대,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1990년대는 정보산업기술 발달로 해가지지 않을 '신경제'가 등장했다고 떠들썩했다.

투자는 단순히 '아이큐'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우스 시' 광풍이 불던 1720년대, 영국의 천재 과학자 뉴턴은 85세의 고령임에도 '용감무쌍'하게 주식에 투자한다. 하지만 서인도제도와 남미지역에 무역독점권을 가지고 있다던 사우시 시의 실체가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폭락한다. 빠질 때를 못 맞춘 뉴턴은 2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는다. 그가 남긴 말이 기막히다. "나는 천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미친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다."

혁신적 기술이나 신산업 또는 새로운 자금 운용법이 등장할 때 투기는 쌍둥이처럼 등장했다. 대략 50년을 주기로 투기와 폭락이 반복됐다. 길어봤자 100년을 사는 인간들에게는 일생동안 한두 번 겪는 큰일이지만, 인간사 전체로 놓고 봤을 땐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 과정에 투기꾼들이 '마중물'로써 경기를 부양시켰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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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를 상징하는 것 중 대표적으로 '로또'와 '주식'이 꼽힌다. 일확천금이 서민들의 눈을 멀게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로또와 주식의 '짜릿한' 쾌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그 쾌락의 저변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로또와 주식을 구입할 때  무한한 '평등'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한방'으로 자신을 옭아매왔던 자본계급을 격상시키고 현재의 구조를 해체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적 일탈이 공고한 계급사회를 균열시키는 작용을 한다. 중세 카니발에서 민중들이 분뇨를 던지며 권력과 강제, 권위를 향해 조롱했던 것처럼 말이다. 투기로 인한 긍정적인 현상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개미투자자들은 경제를 이해하려고 책과 신문을 살피고, 민활한 사람들은 기업분석을 하는 등 창조적 행위를 한다. 컴맹이던 어머니가 스스로 컴퓨터를 깨치고 인터넷을 누비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 검증으로 정계가 떠들썩하다. 청문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투기'냐 '투자'냐 하는 논란이다. 하지만 둘 모두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에 기인한 것이기에 구분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투기를 단기간에 기업의 내재가치를 넘어선 과도한 활동이라고 정의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배당률만을 바라보며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차라리 반복적인 '투기의 역사'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투기란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여라"라는 말이 아니라, 투기를 쫓는 인간의 일탈적 행위에서 '희망의 증거'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스스로 학습'하는 개미들의 모습이다.

여기에 정부는 공정한 시장이 되도록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부과하고, 단기 시세차익을 위해 덤비는 투자자들에게 높은 과세를 부과해 장기투자로 유인하자. 국제거래에서는 토빈세를 부여해 전 세계가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눠가지면 더 이롭겠다.

야당이 한나라당의 인사정책에 대해 '이중잣대'라고 뿔이 나있다. 허나 이런 공박이 전혀 새롭지 않은 건 나뿐일까?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를 하는 공직자도 문제지만 기준과 대안 없이 사람만 잡으려 소리치는 그대도 문제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homerunsery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금융투기의 역사 - 튤립투기에서 인터넷 버블까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강남규 옮김, 국일증권경제연구소(2001)


#금융투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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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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