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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취객이 모욕적 발언을 한 것을 한국사람 전체가 인종 차별한 것인 양 확대해석 했다."

'외국인 노동자 대책 시민연대'의 박완석 간사는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준 한국인이 처음으로 기소당해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경종을 울린 '후세인 보노짓 사건'(관련기사 : 욕설 봉변당한 인도인, 불법체류자 취급한 경찰)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긴 시간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이주민 관련 문제 해결에 천착해 온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후세인 보노짓 사건은) 공공연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점점 늘어가고 있는 외국인 혐오 범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일찍이 다인종 사회가 된 유럽, 미주 등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가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그 싹을 틔우고 있다는 것이다.

"너 불법체류자지?"... 외국인에 대한 불편함이 행동으로 발전

포털사이트 다음의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 자유게시판, 인종차별금지법 입법예고와 관련한 비난과 행동 제안들이 잇따르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 자유게시판, 인종차별금지법 입법예고와 관련한 비난과 행동 제안들이 잇따르고 있다.
ⓒ 인터넷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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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 하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태반이었고 그들이 전반적으로 겪고 있는 폭력, 월급체납, 인권 등 부정적인 측면에 동정적인 사회적 시선이 쏠렸지만 지금은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가 통과·시행되면서 합법과 불법, 등록과 미등록의 경계선이 구분됐다. 더불어 합법적인 구조 안에서 이주노동자의 수가 많이 늘어나면서 '내국인 일자리 잠식', '사회적 비용 부담' 등의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5년 한국여성개발원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성인 2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차별에 대한 국민의식 및 수용성 연구'에 따르면 집단별 호감도 및 신뢰도에서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는 여덟 번째로 매우 낮은 편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행동'으로 발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정영섭 사무차장은 "취객들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퇴근하던 노동자가 일반시민에게 일방적으로 '불법체류자'로 몰려 경찰서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에는 이주노동자를 주로 고용하게 되는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및 인권 개선 등에 대한 문제에 '내국인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이 일반 내국인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국가에서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일정 정도의 반감은 표출된다.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적으로 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예로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될 때 내국인 직원이 사내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라고 허위로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알고 있다."

경제위기 틈타 들썩이는 외국인 혐오... 정부 정책 따라 '법치주의' 정당화

지난 2008년 11월 12일 오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내 한 공장 기숙사. 이곳에서는 남자 단속반이 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속옷 차림인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갔다.
 지난 2008년 11월 12일 오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내 한 공장 기숙사. 이곳에서는 남자 단속반이 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속옷 차림인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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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역시 이러한 행동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불거졌던 지난 2008년 9월 정부는 ▲ 기숙사비 및 식대분담 제외 ▲ 최저임금제 감액 적용 수습기간 3개월 확대 ▲ 정부합동단속을 통한 불법체류 외국인 20만 명으로 감소, 5년 내 체류외국인의 10% 이하 감소 등을 골자로 하는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또 고용쿼터 소진을 이유로 1, 2월 신규 고용허가 발급을 제한했다.

명분은 중소기업의 비용절감(기업 당 416만 원 절감)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증가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였다. 반 외국인 단체의 '일자리 잠식론'과 '사회적 부담 비용'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 사무차장은 이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를 줄이면 내국인이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검증된 바 없는 논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IMF 당시에도 정부는 자국민 일자리를 보호한다며 이주 노동자를 대거 내보내고, 이번 금융위기 때도 같은 이유로 지난 1, 2월 신규 고용허가 발급을 제한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일자리는 나아지지 않았다"며 "현실적으로 대다수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열악한 3D 업종에는 내국인들이 사실상 지원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아시아의 친구들'의 김대권 사무국장 역시 "정부가 예전과 달리 너무나 빠르게 (반 이주노동자)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사무국장은 "당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됐지만 눈치를 보지 않고 빠르게 정책이 발표됐다"며 "정부가 이렇게 나오다 보니, '불법체류자 추방운동본부' 등 반 외국인 단체들이 기세등등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 이주노동자 관련 집회 때 불법체류자 추방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출입국관리소 직원들과 함께 다니며 기세등등하게 행동한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반 외국인 단체는 정부의 이런 방침을 명분 삼아, 자신들의 주장을 '법치주의'로 정당화한다."

"외국인 혐오 방치하면 우리 사회도 인종차별사회 진입"

지난 2005년 10월 열린 '반인권적 이주노동자 정책과 차별로 숨져간 이주노동자 합동 추모식'에 96명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지난 2005년 10월 열린 '반인권적 이주노동자 정책과 차별로 숨져간 이주노동자 합동 추모식'에 96명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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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무국장은 이제 국내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 외국인 혐오에 대해 "외국인 혐오는 그동안 이주노동자에 대한 동정적 시선의 뒷면이라 생각한다"며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이주자 등 외국인들이 내국인과 같은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인식은 얕았기 때문에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이주민 관련 문제 해결에 동정적 시각에만 너무 안주해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며 "근본적인 인식이 변화하지 않은 이들에게 반 외국인 단체의 부정적인 주장들이 그런 한계점을 잘 파고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 사무처장은 "내국인들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 및 전환이 필요하다"며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사무처장은 "이민 수용의 역사가 짧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른 시간 안에 다문화 사회로 진입해 실제적으로 필요한 다문화에 대한 학습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한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진척될수록 빛과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라며 "이민 수용의 역사가 오래된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적긴 하지만 인종 등에 기반한 이유 없는 폭력, 모욕 등이 더러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설 교수는 이어 "오래 전부터 이주노동자가 한국 동료 노동자들에게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있었다"며 "개별적인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던 일이 사회 전체 수면 위로 나타나는 현상을 방치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도 인종차별, 폭력이 만연하는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현행 형법으로도 충분히 폭력 행위에 대한 처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로 발생한 문제는 포괄하지는 못한다. 물론 단순히 외국인을 싫다고 하는 것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처벌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거기에 인종차별금지법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태그:#인종차별금지법, #이주노동자, #외국인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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