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슈베르티아데'의 인테리어를 직접 설계하고 지시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으로 피아노연주 실력도 최상급이다
▲ 피아노 연주자 김지욱씨 '슈베르티아데'의 인테리어를 직접 설계하고 지시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으로 피아노연주 실력도 최상급이다
ⓒ 김지욱

관련사진보기


지난 17일 저녁 8시, 브라가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는 클래식 클럽 '슈베르티아데'(경기도 고양시 주엽역 근처). 세 명의 젊은이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까페안에는 두명의 여자 손님이 있을 뿐이다.

외부 연주자를 초청하여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 정도의 정기 연주회를 갖는 까페는 있으나 매일 매일 직접 주인들이 악기 연주를 하는 곳은 드물다. 물론 라이브까페에서 매일 통기타를 치며 대중가요를 부르는 곳은 제법 있겠으나 클래식음악에 관한한 그런 장소를 찾아 보기는 어렵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란 슈베르트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읊고 문학을 논했던 모임의 이름이에요. 당시 슈베르트를 후원하던 예술인들의 모임이라고나 할까요. 우리 '슈베르티아데' 역시 음악을 통해 다양한 모임이 활성화되길 바라고, 대중들이 클래식 음악을 쉽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열성적으로 '슈베르티아데'를 이끌어가고 있는 김지욱(29)씨의 말이다.

첼로의 저음만큼이나 부드럽고 듬직한 젊은이로 '슈베르티아데'의 맏형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첼로 연주자 조항운씨 첼로의 저음만큼이나 부드럽고 듬직한 젊은이로 '슈베르티아데'의 맏형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김지욱

관련사진보기


첼로의 조항운(30)씨와 피아노의 김지욱(29)씨, 둘은 대학 동기로 한국에서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5년 예정으로 독일 유학을 갔으나 1년 만에 귀국하고 만다. 음악에 대한 모든 꿈을 접고서 말이다. 그들의 인생이 늦은 나이에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와도 그닥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유로화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지욱씨는 귀국후 군대생활을 4년이나 하게 되는데, 처음엔 피아노가 군악대에 없었기 때문에 자격증을 딴 뒤 방위산업체를 간다. 피아노를 연습할 시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1년 2개월동안 방위산업체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 몸무게가 10Kg이 빠졌다.

지욱씨는 굳은 결심을 하고 방향을 틀어 새로이 군악대에 들어간다. 이것이 지욱씨가 남들보다 1년 반 정도를 더 군대생활을 하게 된 이유이다. 결국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는지 지욱씨는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었고, 더군다나 군악대와 협연을 하게 되는 기회도 가졌다. 그리고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면서 피아노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진 지욱씨에게 이런 경험들이 그의 인생에 좋은 거름이 되었다.

방금 야간자율학습을 빠져나온 고교생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젊은이다
▲ 바이올린 연주자 문영식씨 방금 야간자율학습을 빠져나온 고교생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젊은이다
ⓒ 김지욱

관련사진보기


바이올린의 문영식(29)씨는 지욱씨와 고교동창이다. 그는 경제사정으로 음악대학 1년을 중퇴한 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군대를 갔다. 제대를 한 그에게 악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이 맡겨졌고 어느 오케스트라의 객원단원으로도 일했다. 지금은 사립오케스트라의 정식단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영식씨는 대학졸업장이 없으므로 국립오케스트라에 지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피아노 레슨을 하려고 광고를 하면 전화통화를 하다가 "어, 남자네" 하면서 전화를 끊어요."

지욱씨는 피아노 레슨조차도 할 수 없는 남자연주자의 현실에 직면한다.

독일에서 돌아온 항운씨와 지욱씨는 바이올린을 하는 한 후배를 불러 함께 연주팀을 꾸린다. 지욱씨는 독일에서 하우스콘서트의 피아노 연주자로 참석을 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그는 자신들도 실내악을 연주하는 전문홀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욱씨와 항운씨는 직접 '슈베르티아데 클래식 클럽'을 운영해보기로 뜻을 모았다. 지욱씨는 애정을 가지고 '슈베르티아데'의 모든 인테리어를 스스로 계획하여 꾸몄다. 이렇게 '슈베르티아데'가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을 때 지욱씨는 고교동창인 영식씨에게 함께 일을 해 볼 것을 권유하게 되고 영식씨도 '슈베르티아데'에 첫발을 내딛었다.

세명의 젊은이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조그만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했다. 순수한 연주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터라 시작할 때는 아예 술을 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한 친구가 술을 팔아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을 때 셋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야 했다.

사오십대의 주부가 고객의 대부분인데 가끔 들른 남자 손님들이 술이 과해지면 주사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다른 손님들의 처지를 생각하여 정중히 돌려보내려고 애쓰지만 아직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속은 탄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그들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후원자들이 많다. 어느 날 힘내라며 손에 십만원가량을 쥐어주던 손님, 고가의 스피커와 오랫동안 모아온 음반들을 그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던 손님들은 '슈베르티아데'의 말없는 후원자다.

지난 6월 12일에 문을 연 이후로 월세를 비롯해서 가게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들이 '슈베르티아데'를 운영하면서 해결이 되었다. 가게가 자리를 잡는 데는 한 2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다들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는 지욱씨는 앞으로도 세친구들이 서로 마음을 맞추어 가면서 까페를 잘 운영해나갈 수 있을거라며 활짝 웃는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 이런 품격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손님, 그리고 자신들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손님들은 세 젊은이들을 감동시킨다. 물론 매일 저녁 8시와 10시에 30분씩 진행되는 연주회에 손님이 아예 없어서 연주를 하지 못한 적이 부지기수지만, 그 시간엔 연습을 할 수도 있어서 크게 신경을 쓰진 않는다는 것이 세 청년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슈베르티아데'에서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8시와 10시에 30분씩 연주회가 진행된다. 월요일은 세사람이 돌아가면서 쉬기 때문이다.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에는 저녁 8시에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처음 정기연주회를 기획할 때는 입장료를 얼마간 받기로 했다. 물론 와인은 무료로 무한제공을 하기로 하고 말이다. 그랬던 것이 주고객층이 주부들인 관계로 연주회가 끝나면 곧바로 귀가를 하는 손님들을 보며 정기연주회후의 파티를 꿈꾸고 있던 그들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지금은 정기연주회가 열리는 날도 입장료는 무료이다. 대신 정기연주회가 진행되는 동안은 어떤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동안 '슈베르티아데'에서는 세차례의 정기연주회와 한차례의 하우스 콘서트가 열렸다. 소규모의 음악회, 파티 및 세미나 등의 장소제공도 되므로 한 모임에서 '슈베르티아데'의 공간을 빌려 작은 콘서트를 연 것이다. 물론 연주자들은 '슈베르티아데'의 세청년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정기연주회는 다음주 목요일날 열려요. 다른 친구들도 불러서 할거니까 아마 다른 때보다 분위기도 많이 다를거예요. 안 보시면 후회하실테니까 꼭 오세요."

아직도 볼살이 통통한 영식씨는 야자를 빼먹고 금방 학교를 빠져나온 남학생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금요일이 아닌 목요일에 열리게 되는 이번 정기 연주회는 좀 특별할 것이라고 귀뜸을 해주는 그들의 얼굴에는 어떤 기대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앞으로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위해 '슈베르티아데'는 항상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계획하고 꿈꾸었던 '슈베르티아데'의 역할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수입은 좀 적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정말로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일산의,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명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태그:#슈베르티아데 클래식 클럽, #낭만주의시대의 살롱문화, #김지욱, #조항운, #문영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