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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광장에서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를 공모한다는 공지를 처음 봤을 때는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 주제가 너무 칙칙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데다, 유서는 지극히 사적인 문제인데 언론에 공개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올라오는 기사를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용기도 얻어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형님 결혼사진을 빼앗아간 아버지'를 올렸는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내에게 했던 당부를 공개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두려워할 사건이 아니다"

6-7년쯤 되었을까.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이면서 작가인 '키케로'가 쓴 <노년에 관하여>라는 수필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시대와 환경이 당시와 달라서 모두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는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고 각자 고유한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 단계라며 노년을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과일에 비교했다.

키케로는 노년의 죽음을 오랜 항해 끝에 육지를 발견하고 항구에 입항하는 배에 비교하며 "삶은 자연이 우리에게 잠시 머물도록 제공한 거처이고, 때가 되면 신성한 영혼들의 집합체 속으로 가야 하므로 죽음은 두려워할 사건이 아니다"고 했는데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주장 같았다. 

아내에게 전하는 당부

큰누님이 입원해있던 부산의 모 신경정신과 병원 천정에 그려진 그림.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에서 본 그림이 떠올라 보관해오고 있었습니다.
 큰누님이 입원해있던 부산의 모 신경정신과 병원 천정에 그려진 그림.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에서 본 그림이 떠올라 보관해오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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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교회와 주일학교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절에는 겁이 많으면서도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연장, 즉 다른 세상으로의 이동으로 알았기 때문에 특별히 두렵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교회 천정에 그려진 하늘나라 풍경과 목사 말씀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회와 멀어지고, 뇌염 등 전염병 공포, 귀신 얘기, 교통사고를 당한 시체, 물에서 놀다 익사한 아이, 동네 뒷산에서 해골이 무수히 나왔다는 급우들의 호들갑을 접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여전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생활환경이 달라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50대 중반부터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내에게 사후에 어떻게 해달라고 당부하곤 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서 공개한다.

첫째, 내가 죽으면 형제들과 사촌에게만 알리고, 부고장 인쇄해서 여기저기로 돌리지 마세요. 내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조전이나 위로 전화는 고맙게 받아야겠지만, 빈소를 차려놓고 문상객을 받지 말라는 겁니다. 당신이 피곤해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베푼 것도 없으면서 사람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부담을 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장기기증입니다. 내 몸의 일부가 어둠을 헤매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는 상상만 해도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거든요. 지난 6월 안나(딸)가 내려왔을 때 걔도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잘했다!"고 짧게 칭찬했지만, 속으로는 '역시 내 딸이로구나!' 했으니까요. 

셋째는 화장(火葬)해달라고 당부합니다. 만약 강이나 산에 뿌리는 것으로 끝내기 서운하다면 분골을 옹기그릇에 담아 아버지·어머니가 잠들어계시는 선산에 묻고 작은 봉분을 만들어도 좋겠지요(비석이나 상석은 사절). 다시 말하지만, 가족과 형제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당부하는 것은 내 몸이 불편한 것을 알면서도 결혼해서 살아온 당신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자 감사의 표시입니다. 장기기증도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어 결정한 것이고요. 당신에게도 얘기했지만, 뇌는 10년 전 대전에 있는 모 뇌 병원 연구용으로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지요. 엊그제 형님이 계시는 자리에서도 얘기했는데 꼭 지켜지기 바랍니다.

매장, 화장 모두 존중되고 보존돼야

결혼하면 최소한 3남매는 봐야 하고, 장기기증은 달갑잖게 생각했으며, 화장을 반대하던 나였는데 딸 하나만 보고, 화장을 찬성하고, 장기기증까지 하게 되었다. 이는 나이를 먹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아들이 없는 이유도 적잖게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해가 지면 잠자던 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들에 내놓았다고 한다. 인간의 먹이가 되었던 짐승들과 나눠 먹는 개념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화장과 매장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매장에도 목관, 석관, 몰관 등이 있어 말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화장과 매장을 놓고 옳고 그르냐를 따지면서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았으면 한다. 화장이든 매장이든 다 같이 존중되고 보존되어야 할 장묘문화 아닌가.

생로병사(生老病死), 사람이 태어나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줄 알면서도 '병'이 빠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헛된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편한 것만을 탐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응모글



태그:#죽음, #유언, #화장, #장기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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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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