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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고3들을 만나 '수능을 앞둔 나' 라는 주제로 릴레이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 첫 테이프를 끈기 위해 아는 청소년들을 총동원해 수험생을 찾았다. 그래서 만나게된 첫 고3 수험생은 평범한 입문계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하는 '예체능 학생'들이었다.

우리가 하나 구분해야 하는것이 '예체능'을 하는 청소년들이다. 보통 말하는 '예체능'은 사전적인 의미인 '예능과 체육을 아울러 이르는 말' 처럼 음악,미술,연기 등 '학업'외의 활동을 주로 하며, 그것을 진로로 삼으려는 학생" 이라고 할수 있겠다. 그런데 대부분은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미술을 하거나 음악을 하는 학생들이다. 보통 박태환이나 김연아 처럼 어렸을때부터 일찍 예체능 계열의 길을 가는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입문계에 다니면서 동시에 자신이 하는 예체능의 실기를 준비해야하는 대부분의 '예체능생' 들은 입시가 주목적인 학교의 눈치를 봐야함과 동시에 학업,실기 두 개 어느것도 소홀히 할수 없는 상황속에서 고통은 배가 된다.

오늘 만나본 두 고3들도 그런 예체능생이다. 사실 처음 만났을땐 그저 평범한 수험생인걸로 잘못 알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이 말하는 고충을 듣고 알아차렸다.

-오늘 9월 모의평가 시험 봤는데, 정말 수능 보기전에 '마지막 점검'차원이기도 하고 정말 중요한 시험 같은데 전체적으로 어떤거 같았어요?
그냥 '블랙홀' 같아요. 그 자체로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할줄 모르겠어요. 정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줄은 모르는 그야말로 '막막한' 심정이죠. 뭐 그래도 지금 이상태에서 죽어라 하면 좀 이라도 오르지 않을까하는 그런생각도 들고요. 그냥 딱 말해서 '혼돈' 이 한마디로 대표할수 있을거 같아요. (주영)

- 저도 작년에 이맘때쯤 9월모의평가 보고나서 애들 대부분의 반응이 절망이거나 낙담이거나 그랬는데 그래도 희망이 있나보네요?
아니요, 그냥 일종의 '자기합리화' 같은 거죠. 그렇게라도 해야 맘이 놓일거같아서요.

- 고3이되면 거의 한달에 1번꼴로 시험을 보는데 가장 잘봤던 기억이나 못봤던 기억있잖아요. 그때의 기억을 한번 듣고 싶네요.
어...저는 언어를 잘보면 외국어를 망치고, 언어를 망치면 외국어를 잘보고 꼭 이런거 같아요. (현연) 저는 문과라서 과학이나 수학쪽에서는 나도모르게 겁을 먹는거 같아요. 근데 보통 문과생들이 사탐이나 인문쪽에 잘하거나 관심이 있어서 문과에 오는게 아니고 수학에 취약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언어영역 시험볼때도 과학지문같은거 나올때 덜컥 겁부터 먹는거 같아요. 저는 그래도 사회과목이 좀 재밌다고 생각되서 문과에 왔어요. 물론 미술을 하긴 하지만요. 어쨌든 90%이상이 수학이나 과학을 못하니까 문과에 오는데 그게 정말 잘못된거 같아요. 그래서 사탐과목중에서 특히 역사나 이런걸 무조건 외워야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는거 같아요. 그래서 더 부담갖고 그러죠.

사실 단순히 고등교육과정을 '문과 이과'로 나눈다는거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수많은 관심사가 있고 다양한 것에 많은 흥미를 느낄수 있는 현대사회인데, 이분법적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을 나누는거 같아 보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청소년 거의 80%정도만 되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이 가능한데 그 많은 청소년들이 누군가가 정해놓은 '언수외'라는것을 억지로 공부하는 이상한 시스템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렇게 청소년의 적성과 특징을 무시하고 단순히 언수외를 강요한채로 학교에 18시간동안 강제로 가둬놓고, 그래서 그것을 못하면 낙오자 취급을 하는게 대한민국 일반 고등학교이니 사실상 '문이과 논쟁'은 아무것도 아닌것일수도 있겠다. 아! 근데 다른거에 관심있으면 예술고나 실업계에 가면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예고는 돈이 없으면 쉽게 갈수가 없고, 실업계에 가면 사람취급을 안하는데 어떻게 갈수있을까 라고 답하고 싶다. 중요한건 일반적으로 입문계에 가지 않는것은 약간 비상식으로 통하는게 한국사회이고, 대학을 가지 않는게 비상식으로 통하는게 한국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거라면, 더 열심히 하고 자연스레 공부하게 될텐데 우리는 강제로 하게 하니까 '주입식 교육'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러는거 같아요. 뭐 수학이라던지 역사라던지 모두 중요하고 분명히 쓰이는곳이 있을텐데, 모두 그것에 대한 '가치'는 무시하고 단순히 '시험보기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니까요 그게 문제인거 같아요. 그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능이랑 토익에서 고득점을 맞아도 외국인이랑 회화를 한마디도 제대로 못한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영어를 단순히 왜 배워야하는지를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고 단순히 대학가고 취직하는곳에만 쓰기위해서 그 토익,수능공부를 억지로 하는거니까요. 그게 끝나면 다 잊어버리는 거죠.

- 예체능이라서 문과를 선택했을수도 있겠네요?
네, 이과가면 더 힘드니까 그런거 같아요. 아무튼 전체적으로 문과를 가야 예체능관련 대학가기가 더 유리하거든요.

- 근데 우리나라에서 예체능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더 번거로운 면이 많을거 같은데 어때요?
솔직히 2학년때 예체능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스트레스도 정말 많이 받았구요. '학교공부'도 해야하고 '미술학원 숙제'도 해야하고 그래야하는게 일단 가장 힘들어요. 우리가 야자를 안하고 학원에 간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공부를 소홀히 할 수는 없잔아요. 그래서 다른 애들 자습하는 만큼 우리도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요. 11시쯤에 집에오면 늦게까지 공부하고 그 다음날 일찍 학교가고 아무튼 스케줄도 너무 배로 빡빡해요.

뭐 입문계에 온이상 공부를 할수밖에 없는게 사실인데, 뭐 그게 비정상적이긴 하지만요. 근데 '우리같은 예체능생' 들은 두 개의 짐을 들고 가는 격인거에요. 더군다나 요즘 홍대도 내신이나 수능성적이 안좋으면 못가게 하는 그런거요, 실기를 중시안하는 그런게 더 세져서요, 공부안하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정말 두배로 힘들죠. 사실 진짜 말이 안되는게요.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학이 전혀 필요없는데 그 쓰지도 않을 수학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것을 못하게 하는 그런게 가장 말이안되죠. 내가 미대에 가는데 '그림실력' 보다는 정형화된 '언수외 성적표'가 더 필요하니까 그게 가장 절망인거 같아요.

근데 정말 학교에서 차별하는게 싫어요. 예체능이라고 은근히 이상하게 보거나 그런게 있거든요. 한번은 어떤애들이 " 우리들도 전남대 가기 어려운데 너네가 예체능하면서 갈수 있겠어."(호남권에서의 전북대와 유일한 국공립대학교. 비교적 가기 쉽지 않다.) 이런식으로 말했거든요. 그니까 예체능은 일반적으로 공부를 못하니까 좋은 대학을 못가거나 가면 안된다고 보는거 같아요.

저는 그것보다 더심한 차별도 받았는데요. 애들이 우리를 "걔들(예체능생)들이랑 같게 보지 말아달라"면서요, 진짜 예체능 하는 애들은 무언가 모자라고 그런식으로 보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럴때마다 진짜 화나요.

- 수능 치르고 난 다음에 그후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저는 정말 미술쪽으로 나가고 싶거든요. 근데 들리는 말이 미술쪽으로 나가서 끝까지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여자분들은 강사하다가 결혼하면 끝난데요. 근데 저희 엄마도 미술하면 할게 거의 없으니까 선생님 하라고 하건든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 아니면 디자인쪽인데요. 요즘은 '디자인 대세'라고 해서요 디자인쪽이 길이 많아요. 근데 저는 미술 전공이 그쪽이 아니라서요. 아무튼 할게 없으니깐요. 저는 선생님 하고 싶어요. 뭐 미술을 정말 하고 싶은데 길이 없고 막연하다고 느껴지니까요. 뭐 정말 백남준이나 이런 사람처럼 되고 싶기도 하지만,이런 사람들은 거의 소수잖아요. 그래서 저도 좀 두렵기도 해서 선생님 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어요.

저는 선생님이아니라 '미술작가' 아니면 '미술 심리치료사' 요. 제가 만화를 좋아하는데요. 만화를 시작하면서 만난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서요, 제가 그림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할 수가 있구나 느껴서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요. 일단 대학에가서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미술심리치료 교육기관이 있거든요. 거기서 아르바이트나 이런거 하면서 배우고 그러다가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미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어요. 전 미술이 단순히 그리는거 그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언가를 표현해내는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미술을 즐기면서 할수있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미술은 절대 어려운게 아니고 누구나 미술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표현해 낼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외국은 자신이 대학을 갈때나 그럴때요, 그림을 평가받거나 그러면 자신이 선택해서 평가받고 싶은 작품을 평가받는데, 우리나라는 굉장히 '정형화'된 그런 것만 보고 또 이걸 그려야 잘그린거고, 그래야 좋은 점수 받는다. 이런거 같아요. 실제로 학원에서도 이 애가 그림 잘그린다 하면 내 스타일은 다 묻히고 그애 스타일을 다 따라하게 하거든요.

음악과 미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이어내려져 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생활속에서 항상 숨쉬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때가 많지만 우리 어디에서나 디자인이 있고, 우리는 언제나 음악을 듣고 살아간다. 그만큼 생활미술,디자인,음악과 관련해서는 길이 자연히 넓다는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런데 왜 내가 만나본 청소년들은 미술을 하면서도, 음악을 하면서도 왜 하나같이 선생님이 되려고 하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럴수밖에 없는건지 모르겠다.

요즘 체육부 학생들도 공부를 시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들은 다 그렇게 시킨단다. 그런데 그 선진국들은 모두 체육,음악,미술 등의 활동을 취미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체험해볼수있게 해놓았다. 근데 우리나라는 이런 상황도 전혀 아닐뿐더러 '공부를 무조건 시키거나 아니면 공부를 안 할수있을만큼 다른걸 천재적으로 잘하거나' 에 따라서 나눠지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 물론 체육,음악,미술을 직업적으로 생각하는 청소년들도 기본 소양을 위해서 어느정도의 공부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공부가 '예체능 청소년'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한마디로 둘 다(공부와 예체능) 우수한 인재를 원하는 거 같다.

- 아무튼 수능이 얼마 안남았는데, 어떤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일단 수능 준비도 하고 그러고 있지만, 절대로 입시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진 않아요. 대학을 현실적으로 봤을때 들어가야 겠지만 그것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진 않을거에요. 제가 하고 싶은것을 꼭 하고 싶구요. 일단은 지금의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벗어날수는 없기에 수능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긴 해요.

저는 힘들어서 울거나 그럴때가 많거든요. 겉으로는 웃거나 그러지만 예체능하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이나 상처가 쌓여서 혼자 꾹 참고있다가 집에가서 혼자 울거든요. 그런데 우리 엄마가 그걸 보고 저를 좀 짠하게 여기고 그러는게 보여요. 정말 '내자식 안되보이지만, 나라 현실이 이러니 어쩔수 없지.' 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만큼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해서 꼭 성공할거에요.

나도 1년전에 한참 이런 생각을 했었던거 같은데 어느덧 1년이 지나간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기보다는 더욱더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나로서는 정말 안타깝다. 1년전 수능이 얼마 안남은 상황에서 그래도 진보적이라 믿고 나만의 길을 걸어야 겠다고 평소에 다짐해왔던 나도 결국 '수능' 때문에 불안해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걱정으로 '골머리를 앓게될' 수많은 청소년들이 나온다는게 너무 당연해 보여서 슬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고3 수험생들 모두 너무 큰 걱정하지 말고, 긴장하지도 말고. 그저 수능 후에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예체능생, #입문계, #대학, #입시위주교육,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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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에서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고, 그 이후로는 광주로 내려와서 독립 언론 <평범한미디어>를 창간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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