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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금표(禁標)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록에 따르면, 조경전 부근에 여러 개의 금표가 있었다고 전하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표는 해당지역의 벌목이나 개장, 채석 등을 금하는 경계석으로 삼았던 비석이다.

자만동금표
 자만동금표
ⓒ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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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문화원과 전라금석문연구회는 10일, 전주시 완산구 교동1가 자만길 54-43에 있는 '자만동금표'의 가치를 밝혀내기 위해 사전 답사를 한 후, 최근 탁본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 비석의 전면에는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라는 5자의 해서글자가 있으며, 규격은 높이 70㎝ 폭23㎝ 두께 12㎝로, 석질은 쑥색의 화강암이다. 후면은 현재 벽이 가로막고 있어 글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을주민 강재철(72)씨에 따르면, 30년 전에는 이 금표가 현재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12미터 지점에 있었으며, 현재 위치에 세운 것은 15년쯤 전이라 한다. 또 다른 마을주민 역시 비석을 없애지 말고 잘 보관하라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자만동금표가 있는 지점은 승암산에서 내리 뻗은 발산의 남쪽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로 인근에는 오목비와 이목대비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 자만동은 이태조의 5대조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고종이 친필로 쓴 목조대왕구거유지비가 있는 곳이다.

이 금표는 서자와 간지 기록이 없어 연대추정이 불가능하지만, 조선말기인 1900년경에 오목대비와 이목대비, 그리고 조경단비가 제작될 때 같이 세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은 "자만동금표는 오목대와 이목대, 그리고 목조대왕구거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에 새로운 표석을 세워 이 지역의 벌목, 개장, 채석 등을 금하는 경계석으로 삼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한 "자만동금표는 작은 빗돌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중요시책사업의 하나였고, 조선왕조 뿌리의 자긍심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 자만동금표는 발산과 더불어 한옥마을 연구에 중요한 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주, #금표 , #자만동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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