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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중략)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속에 숨었네.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3구와 관기사이 도로에 코스모스가 활짝피었다.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3구와 관기사이 도로에 코스모스가 활짝피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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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가수 김상희씨가 부른 불후의 명곡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은 계절의 분위기와 딱 어울려 우리의 맘을 향기롭게 때론 구슬프게도 만든다.

살살이 꽃이라 불리는 코스모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 몸에 사로잡는다. 별다른 전설이나 설화가 없어도 코스모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추억에 빠지게 하는 매력과 함께 그가 내민 가냘픈 모가지는 소녀의 순정, 애정 그리고 조화라는 꽃말도 가졌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코스모스에 대한 추억은 많으리라.

가을의 문턱에서 느껴지는 코스모스 길은 고향에 대한 잔잔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현천3구 앞 도로에 코스모스가 활짝핀 가운데 꽃님이네 펜션카페 간판이 인상적이다.
 현천3구 앞 도로에 코스모스가 활짝핀 가운데 꽃님이네 펜션카페 간판이 인상적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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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도 유독 오지였던 나의 고향은 학교까지 왕복으로 10리길을 걸어 다녀야 했다. 시골길이 그러하듯 당시 마을까지는 겨우 한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초가집도 고치고 마을길도 넓히며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만드세"

이른 아침 마을 이장격인 반장 집에서 울려 퍼지는 새마을노래와 함께 마을 부역을 통해 만들어진 새마을 길은 신작로가 부럽지 않았다. 비포장도로이지만 겨우 한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오솔길이 구르마(수레)가 다닐 정도로 넓어진 것이다. 그때 새길이 너무 좋아 밤에도 10리 산길을 걸으며 구경했던 생생한 추억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비포장도로에 시민트가 포장되어 코스모스는 사라졌지만 울창한 숲이 자리하고 있다.
 비포장도로에 시민트가 포장되어 코스모스는 사라졌지만 울창한 숲이 자리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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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교에서는 토요일마다 각 부락별로 모여 조회가 끝나면 부락단장 인솔 하에 하교를 했다. 그때는 마을별로 서로 이기려고 경쟁의식 때문에 때론 부락별 패싸움도 일어나곤 했다. 특히 단합이 잘 되었던 우리 마을은 선후배간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 아침이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동각(마을회관)에 모여 도로청소와 꽃길을 조성하는 일이다.

"도로청소 나오너라!"

부락단장과 선배들의 구령이 마을에 울려 퍼지면 전날 저녁 밤늦게까지 흑백TV에 빠져 부시시한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설잠을 설쳤어도 다들 동각에 모여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는 완벽에 가까운 출석율과 내일처럼 즐겁게 일하던 고사리 손길이다. 왜 그랬을까? 섬지역의 특성상 농사일과 바다 일에 지친 부모님들의 일손을 도와드리기 위한 학교 선생님들의 지역사랑 교육정책을 정확히 꿰뚫은 아이들의 자각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코믹하지만 순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공부를 그렇게 했다면 지금쯤 시대를 풍미할 인물들이 탄행했을 텐데, 유독 공부만큼은 거리가 멀었다.

부락단장은 출석인원을 체크후 때로는 동네를 청소하고 새로 넓힌 길에 본격적으로 코스모스를 심었다. 마을 어귀에서 큰 동네 입구까지는 꽤 먼 길이었지만 많은 날을 거치며 코스모스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어느새 씨앗이 자라 싹이 돋자 모종을 하고 김매기를 통한 아이들의 코스모스 길 조성은 우리 동네 학생들의 등하교길 하루일과가 되었다. 이렇듯 일요일이면 마을 행님과 누님들의 손을 잡고 정성으로 가꾼 코스모스는 초가을이 되자 그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어느새 꽃망울을 피우기 시작했다.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3구와 관기사이 활짝핀 코스모스를 감상하며 차량이 다가오고 있다.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3구와 관기사이 활짝핀 코스모스를 감상하며 차량이 다가오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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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재래종들이 시도 때도 모르고 철없이 꽃을 발랑발랑 피워대지만 아이들이 가꾼 코스모스는 정확히 초가을에 꽃망울을 피워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계절의 꽃이기도 했다. 울긋불긋 연분홍빛으로 물든 8개의 팔랑개비 이파리들은 동심에 젖은 어린 시절 설레임과 함께 보람으로 다가왔다. 지금생각해도 섬 지역에서도 유일하게 우리동네 산길을 따라 피어난 코스모스 10리길은 문학의 거리였고 사색의 길로 추억된다.

이제 3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동네(동고지) 코스모스길은 더이상 볼 수 없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져 학생들이 끊겼고 비포장 흙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코스모스가 자랄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시절 추억의 고향길은 세월속에 묻히겠지.....

관기에서 소라면 가사리까지 학교에 집으로 향하고 있는 김다미(관기초 5학년)양과 최우진(관기초 5학년)군의 모습
 관기에서 소라면 가사리까지 학교에 집으로 향하고 있는 김다미(관기초 5학년)양과 최우진(관기초 5학년)군의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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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미(관기초 5학년)양과 최우진(관기초 5학년)군은 매일 코스모스를 보며 자전거로 학교를 통학한다.
 김다미(관기초 5학년)양과 최우진(관기초 5학년)군은 매일 코스모스를 보며 자전거로 학교를 통학한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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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아스팔트 갓길에 피어난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아이들이 달려오고 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소라면 가사리에서 나란히 학교에 다니는 김다미(관기초 5학년)양과 최우진(관기초 5학년)군은 "코스모스는 멀리서 봐도 예쁜데 밤에 보면 불빛 때문에 더 예쁘다"며 "코스모스를 보려고 우리 마을까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진찍는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들또한 학교 길에서 반겨주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추억도 만들고 태어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30여 년이 흐른 예나지금이나 별반 달리 보이지 않는다.

"아마 천년의 세월이 흘러가도 코스모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추억은 계속되겠지?"


태그:#코스모스, #동고지길, #관리초등학교, #새마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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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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