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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저녁 7시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가 이뤄진 후 농성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도장공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떠나는 조합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저녁 7시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가 이뤄진 후 농성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도장공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떠나는 조합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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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해고자도 아니고 해고자가 아닌 것도 아니다. 서류상으로는 쌍용자동차의 직원이고, 사실상은 '죽은 자'였다. 파업에 참가했던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자신의 신분에 대해 "우린 다 이거예요"라면서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해보였다.

한 달 전 이맘때 쌍용차 평택공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 민주노총 평택안성지회 사무실에 있다. 지난 2일 찾아간 이 사무실의 벽면에는 '정리해고 특별위원회'라는 글씨가 붙어있었다. 노조는 앞으로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복직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지난달 6일 쌍용차 노사는 "조합원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등을 실시한다"는 대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무급휴직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회사가 '말 잘 듣고 노조활동 안하는 사람'을 골라 무급휴직을 시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이미 블랙리스트가 돌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그는 면도칼과 택시운전자격시험 문제집을 갖고 있었다

공장을 나선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조합원들의 정신적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헬기 환청에 시달리다가 선풍기 소리에 놀라고, '쿵쿵' 소리만 들어도 경찰특공대 같아서 겁이 나며,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이 보이면 무의식적으로 피하는 대인기피증도 있었다.

오히려 파업을 끝낸 뒤 이들에게는 경찰 수사에 대한 공포까지 더해졌다.

조합원 A씨는 가방 안에 휴대폰과 예비 배터리를 보여주면서 "언제든 경찰이 전화할지 몰라서 늘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괜히 짜증을 내는 게 싫어서 얼마 전 집을 나왔다.

조합원 B씨는 아예 면도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구치소에 있으면서 자살의 유혹이 컸다. 자신을 조사하던 경찰이 "(전과자로) 빨간 줄 간다, 애들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냐"고 협박하고 "너는 살려줄 테니 다른 조합원을 불어라"고 회유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 조사를 받던 한 조합원은 지난달 27일 자살을 시도했다. 그의 유서에는 "복직시켜준다는 경찰 말에 속아서 동료를 팔아넘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사실무근이라고 유서 내용을 부인했지만, 다른 조합원들도 경찰의 회유와 협박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의 회유·협박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쌍용자동차 조합원의 유서가 24일 공개됐다(사진 제공 노동과 세계).
 경찰의 회유·협박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쌍용자동차 조합원의 유서가 24일 공개됐다(사진 제공 노동과 세계).
ⓒ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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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잘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13일 박영태 법정관리인은 파업 이후 첫 생산된 완성차인 체어맨W에 입을 맞췄다.

쌍용차의 조업재개는 예상보다 빨랐다. 사측 단전 조치에도 불구하고 도장2팀 공장의 도료가 굳지 않은 덕이다. 그러나 당시 비상발전기로 생산라인을 돌렸던 농성 조합원들은 공장에 들어갈 수 없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입증을 받은 노동자만 공장에 들여보내기 때문이다.

공장에 들어가는 노동자들도 마냥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누릴 처지는 아니다.

파업이 끝난 뒤 평택공장의 시간당 생산차량은 17대에서 22대로 늘었다고 한다. 옆 사람과 대화할 틈도 없이 8시간 가까이 앉지도 못하고 일해야 하지만, 회사에 불만을 토로할라치면 "너 말고도 일할 대기자가 많다"는 답변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여전히 회사 안 동료들과 자주 만나고 있는 조합원들은 "노조가 공장 안에 들어와서 이런 상황을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그러면 뭐 하냐, 그러기에 함께 투쟁했어야지"라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파업 참가 조합원들 "우리가 죽어서 회사 살렸다"

조합원들은 파업에 참가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었다. "정정당당한 싸움" "영웅적 투쟁" "이명박 정권의 희생양"이라는 게 이들의 평가였다. C조합원은 "우리가 죽으면서 회사는 살렸다"고 말했다. 노조가 파업투쟁으로 쌍용차 회생에 대한 여론을 만들지 않았으면 결국 회사가 파산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합의사항이 이뤄지지 않는 현재 상황이 너무 억울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나왔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긴 하지만, 더 버틸 수는 없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하나 같은 얘기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누군가 죽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다만 금속노조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 조합원 D씨는 "다른 완성차 노조들에 열 받는 게 사실이다"면서 "우리가 공장에 고립돼 있을 때 어떻게든 (공장에 들어오도록) 길을 뚫어줬어야 하는데 바깥에 싸우는 걸 내다 보면 앞에서만 좀 힘쓰고 뒷줄의 지도부는 형식적으로 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2일 밤 전기가 끊어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농성중인 조합원이 촛불에 의지해서 책을 읽고 있다.
 지난달 2일 밤 전기가 끊어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농성중인 조합원이 촛불에 의지해서 책을 읽고 있다.
ⓒ 사진제공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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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생계 문제다. 희망퇴직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지만 무급휴직이라도 생활비 마련이 시급하다.

B씨는 택시운전자격자시험 문제집을 들고 있었다. 복직투쟁은 하더라도 "가장 체면에 손가락 빨 수는 없어서" 생계대책에 나선 것이다. 그는 "다른 조합원들도 노가다 뛰고 풀빵 장사하고 대리운전한다"고 말했다. 조합원 E씨는 "아내가 돈 걱정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매일 밤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앞서 박영태·이유일 공동관리인은 지난달 19일부터 26일까지 전국 현장을 순회하면서 '관리인과 직원간 대화의 자리'를 만들었다. 1일에는 평택공장에서 노사화합을 위한 국악공연이 열렸다. 그러나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공장에 돌아가지도 집에서 쉬지도 못하는 쌍용차 조합원들은 노조가 활동하는 지회 사무실을 맴돌고 있었다. A씨는 "혼자 있으면 죽고 싶어진다, 동료들을 만나서 무슨 얘기라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태그:#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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