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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머님의 옥상
▲ 어머님의 옥상 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머님의 옥상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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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높습니다.

어머님의 옥상텃밭도 가을을 맞이하면서 여러 변화가 있을 터인데 그동안 늦어지는 퇴근시간때문에 자주 올라가질 못했습니다.

아침에 고추가 올라왔습니다. 가을볕에 약이 오를대로 오른 고추가 입안을 얼얼하게 합니다.

"어유, 고추가 엄청 맵네요."
"옥상에 올라가봐라, 붉은 고추 엄청 많이 따서 말리고 있다. 내일까지 말리면 다 말릴 것 같은데…."

오랜만의 휴일, 어머님의 텃밭이 있는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오늘은 모 방송국에서 어머님의 텃밭을 취재하러 온다고 하여 더 신경을 쓰신 듯합니다.

항아리마다 지난해 담근 고추장, 된장, 간장이 들어있습니다. 며느리는 조금씩 사다 먹으면 편하겠는데, 어머니는 해마다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간장만큼은 직접 담가야 마음이 놓이시나 봅니다. 좋긴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일도 그렇고, 어머님도 점점 연로해가시니 이젠 좀 힘든 일은 쉬셨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옥상에 만든 하우스에서 잘 마르고 있는 고추
▲ 태양초 옥상에 만든 하우스에서 잘 마르고 있는 고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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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가 별로 열릴 것 같지도 않더니만 언제 이렇게 많은 고추를 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매일 보면 붉은 고추는 있지만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아 아버님이 고추 말릴 하우스를 만드실 때 반대를 했는데, 비닐 하우스 안에 가득 고추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말라가는 고추를 보면서 약삭빠르게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손익분깃점을 나누는 나를 봅니다. 부모님은 돈보다는 과정이 중요하시고, 자식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아래도 집에 일거리가 있으면 이래저래 도와드릴 일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고추 잘 말랐지?"
"먹음직스럽기는 한데, 이거 또 다듬고 방앗간에서 빻아오고, 고추장 담그고 하려면 손이 꽤 가겠어요."
"신경쓰지 마라, 방앗간 가는 거나 도와줘."
"또 다 나눠주실 거죠?"
"그 맛에 사는 거지, 너 너무 인색하게 굴지마라, 인생이 그런 게 아니야."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꽃 과꽃
▲ 과꽃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꽃 과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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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턴가 옥상에는 꽃들이 점점 많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화사하고 원색인 원예종 꽃들이 주를 이룹니다. 제가 좋아하는 꽃과는 좀 다릅니다. 나도 나이가 더 들면 크고 화사한 꽃들이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작고 수수한 우리 들꽃들이 좋습니다.

"뭐 이렇게 많이 심으셨어요?"
"나오는 걸 어쩌냐? 그것도 생명인데, 살자고 나오는데 어찌 죽이냐?"
"그래도, 너무 많이 퍼지는 거 아니에요?"
"그냥 둬라, 다 살게 마련이다."

서양봉선화도 가을을 맞아 한창 피어나고 있다.
▲ 서양봉선화 서양봉선화도 가을을 맞아 한창 피어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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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사랑, 나는 이론적이고 어머니는 삶입니다. 며칠 전 뿌린 열무가 어느새 솎아먹을만큼 자랐습니다.

"저거 좀 솎아다가 겉절이 해 먹을까요?"
"그래라, 너그들이 맛나게 먹는 게 제일 좋지."

봄부터 지난 여름, 세상에 너무 큰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나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았습니다.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 그 와중에 한 가장으로서 버벅거리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과 달라 많이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작년 이맘 때 어머니는 역시 고추를 말리고 계셨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겠지요. 그래도 묵묵히 그 반복되는 일상들을 탓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그 와중에 자식들은 다 컸고, 손주에 증손주까지 테어났습니다. 그냥 반복되는 일상이었으되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너무 욕심이 과해서 행복한 일상조차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을엔, 지난 일들,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시간 보내지 말고 주어진 하루를 신명나게 살아야 겠습니다.


태그:#옥상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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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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