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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벌써 열흘 전 일이 되었다. 열흘 전의 일을 가지고 오늘 글을 쓰는 것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님 서거 관계로 작업을 미뤘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또 한 번 서울에 가서 '용산미사'에 참례했다. 다시 서울에 가서 용산미사에 참례한 데에는 작은 이유가 있다. 인터넷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벌어진 '용산미사'를 둘러싼 또 한 차례의 논쟁(?) 때문에 마음이 혼곤해진 탓이었다.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의 용산 관련 논쟁은 내 글이 단초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거의 모든 글을 일단 <오마이뉴스>에 올린 다음 정식 기사로 채택된 글을 가져다가 '굿 뉴스' 게시판에도 올리는데, 특히 용산 관련 글들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내 글에 대해 누군가는 어김없이 반론을 제기하고, 그러면 그 반론 글 때문에도 또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다. 반론이나 논쟁에는 가급적 초연하고 싶고, 짧은 '댓글' 싸움에는 끼어 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 여기면서도, 어쩌다 댓글 싸움에도 끼어 들다 보면 마음은 참담한 비애와 혼곤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내가 용산 관련 글을 자주 쓰고 또 굿 뉴스 게시판에도 올리는 것은, 단연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기에 용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정의·평화'를 실생활 안에서 구체화시키고 추종하기 위해서는 용산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눈물을 잘 알고 흠모하기에 나 역시 용산 문제를 눈물 어린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용산 관련 글을 굿 뉴스 게시판에도 올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신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달째 거의 매일저녁 천주교 미사가 봉헌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운회 주교께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말한 것처럼 '정부가 하지 않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일을 천주교 사제들이 미사를 지내며 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용산미사 자체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적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많다. 용산미사와 최근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은 정의구현사제단을 초월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인데도 한데 묶어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때로는 "천주교 신자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고, 그 믿음 안에 이런 '심성'들이 있구나!"하며 놀라고 신기해 하고 뼈아픔 같은 것도 느끼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수없이 접하고 확인한 일이면서도 여전히 이해 난망이다.

 

 그런 이해 난망의 신자들 중에는 정의구현사제들, 용산미사에 참례하는 사제들, 또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사제들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글을 쓰면서 그 글의 끝에다가 '기도'를 적는 사람도 있다. "자비하신 주님, 저 사제들을 불쌍히 보시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용서하소서" 따위의 말로…. '오묘함'의 극치인 그런 글에도 또 어김없이 '추천'은 10여 개씩 달린다.  

 

 

 1970년대와 80년대 어둡던 시절, 한국천주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다. 내 주변에도 1980년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에 이끌려 천주교 신자가 된 이들이 여럿이다. 한국천주교의 성장에 정의구현사제단이 큰 밑거름이 되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정의구현사제단에 반감과 적의를 가진 '신자'들이 있는 것은, 교회 역시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일 터이다. 하느님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긴 하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뒤섞여 살기 마련인 세상 이치를 초극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잘 인식하면서도, 또 한번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의 용산미사 관련 논쟁 속에서 큰 슬픔과 혼곤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슬픔과 혼곤 속에서 불현듯 용산미사에 다시 참례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용산미사에 참례해서 쓸데없는 논쟁으로 더욱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죄를 용서 빌고, 스스로 자신을 위안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2>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신자들 간의 과격한 논쟁으로 상처받고 상처를 준 잘못을 용서 빌고, 스스로 위안을 얻고, 하느님 신앙의 중심 요체인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실체를 더욱 가슴 가득 안고 더불어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나는 다시 지난 18일 서울을 간 것이다. 그리고 또 한번 내 대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용산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18일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이승을 하직하신 날이다. 나는 김 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을 그 날 오후 대림동 강남성심병원에서 들었다. 아들 녀석의 '병사용 진단서'를 떼는 일로 병원에 갔을 때였다. 아들 녀석이 9월 2일 징병검사를 서울에서 받게 되는데, 2006년 2월의 '콩팥 이소성 요관 협착증' 수술과 관련하여 진단서를 발부 받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아들 녀석 혼자 할 수도 있고, 9월 2일 이전에만 하면 되는데, 내가 용산미사 참례 목적으로 서울에 가면서 그 일도 처리하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18일 서울에 간 덕에 나는 용산미사를 지내면서 그 특별한 장소에서 김대중 토머스 모어 전 대통령님을 위한 위령미사도 처음으로 지낸 셈이 되었다. 생각하면 매우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미사를 지내며 '용산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용산문제는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거기에는 '인간의 권리',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걸려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도리'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임이 명백하다.

 

 세입자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일에 공권력이 개입하여 철거민 다섯 명이 불에 타죽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 희생자들은 지금 불법을 자행한 '폭도'로 몰려 있다. 생존자들 다수는 도심에서 불법 테러를 감행한 죄로 구속되어 있다. 생존자 아들이 희생자 아버지를 불태워 죽인 '패륜'마저 성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그렇게 몰아가기 위해 짜맞추기 수사를 했고, 짜맞추기 수사의 성공을 위해 총 1만 쪽의 수사기록 중에서 무려 3천여 쪽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수사기록 전부를 공개해야 한다. 그것은 지엄한 법칙이고 도리이며 상식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하라는 법원의 결정도 무시하고 3천 쪽을 계속 감추고 있다.

 

 검찰은 희생자 다섯 명의 시신을 유가족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또 동의도 얻지 않은 채 다섯 구의 시신을 2시간 30분 동안에 신속하게 부검 처리해 버렸다. 그러고는 순천향대병원 영안실 냉동고 안에 계속 '구금'해놓고 있다.

 

 유족들에게 시신도 보여주지 않고, 장례만이라도 먼저 치를 테니 시신을 내달라 해도 도리질을 한다. 도대체 무슨 심산인지 알 길이 없다.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구속자들은 현재 '불법 테러를 감행한 사람들', 즉 '폭도'로 몰려 있다. 그들의 처지는 저 1980년의 광주 시민들을 연상케 한다. 그 당시 광주 시민들은 '폭도'였다.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그것을 주도했고,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들이 충실히 거들었다.

 

 오늘의 용산 문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의 왜곡된 보도를 그대로 믿고, 정권의 도구일 뿐인 검찰을 편든다. 그리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 모든 일을 돈 문제로만 파악하는 사람들, 참사 희생자들과 구속자들을 '테러리스트', '폭도'로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천주교 사제들, 불교 스님들과 개신교 목회자들을 비롯하여 용산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정한 재판을 원한다. 희생자들과 구속자들이 '폭도'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길은 공정한 재판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기록 전면 공개가 필수적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공정한 재판도 기대할 수 없고, 더불어 용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3>

 

 18일 미사 중의 '공지사항 발표시간'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빈민사목위원회 담당 이강서 신부님은 드디어 20일 재판이 속개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재판에 많은 관심 가져 주기를 부탁하면서, 부디 재판이 하느님의 정의 안에서 공정하고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석 달만에 20일 재개된 용산참사 공판은 수사기록 3천 쪽을 공개하지 않는 검찰측 태도를 묵인하려는 재판부에 항의하며 변호인단이 퇴정함으로써 9월 2일로 연기되었다. 그리고 '검찰과 법원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또 이날 미사 후에도 원로 사제이신 문정현 신부님은 손수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을 두 손 높이 들고 다니며 팔았다. 도서출판 '삶이 보이는 창'에서 펴낸 책으로, 표지에 '대한민국 개발잔혹사, 철거민의 삶'이라는 부제가 올려져 있는 320쪽에 이르는 책이었다.

 

 

 또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속표지 바로 앞 면에 '이 책을 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들에게 바칩니다'라는 말이 올라 있다. 용산참사 발생이 기폭제가 되어 송경동 시인을 주축으로 15명의 작가들이 용산참사 유족들과 여러 지역 철거민들을 직접 만나 자세한 구술을 듣고 사실 확인을 거쳐 기록한 책이다. 용산참사의 전말과 실체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 재개발의 부당한 사례와 철거민들의 비극적인 생활 처지를 기록한 책인 것이다.

 

 도합 열여덟 개의 글들 중에서 용산참사를 기록한 글은 <'용산'에서 확인하는 지독하게 불편한 진실>, <도망가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망루로 올라왔어요>, <중요한 건 침묵하지 않는 거예요>, <여기가 내 집이네, 내 집>, <그 노래가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릴지 몰랐어요>, <뭐 하나 밝혀진 게 없어요> <<내가 아버지였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등이다. 제목만 보고도 애처로움과 어떤 진실이 손에 잡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용산미사 자리에서 여러 번에 걸쳐 이 책을 여러 권 구입했다. 내 집에도 놓고, 서울의 아이들 자취방에도 놓고 여러 사람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의 논쟁에 참여하여 용산미사를 비판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보내 줄 테니 주소를 알려 달라는 말도 했다.

 

 "재개발조합에서 유족들에게 보상협의를 하자고 해도 개입을 한 세력의 작용으로 응하지 않는다"는 말도 보여서, 조합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보상 조건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조선일보'를 검색해 보라는 말이 나왔다. 덧붙여 "개신교 단체에서 4억 원을 모금하여 장례식을 치르자고 하는데도 유족이 응하지 않는다"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조선일보를 검색해보지는 않았다. 조선일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숨이 막히는, 1980년대 초부터 갖게 된 알레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분이 전한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분이 조선일보만 보지 말고, 용산미사 현장에 와서 유족이나 신부님들의 말씀도 좀 들어보고,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도 한 권 사서 읽어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재개발의 문제점과 용산참사의 진실을 현장에서 직접 듣기도 하고, 책값 만원 한 장으로 유족들을 돕기도 한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분의 댓글을 읽은 날 저녁 고장의 '태안문학회' 회원으로 목사님의 부인이시기도 했던 시인이요 수필가인 최영숙 할머니께 이런 말을 했다.

 

 "개신교의 어느 단체에서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비로 4억 원을 모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입니다. 장례비가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장례비가 문제라면 천주교 신자들이 4억 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모금할 수 있습니다. 용산문제는 돈 문제가 아니에요. 돈 문제 이전의,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인간의 권리',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걸려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도리', 그런 게 먼저 고려되지 않으면 용산문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어요.

 

 그런데도 그런 건 생각지도 않고, 돈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모든 걸 돈 문제로만 파악하고 장례비 4억 원을 모금했다는 개신교 신자들, 좀 우습지 않습니까?"

 

 이런 내 말에 개신교 신자인 최영숙 선생은 "맞아요, 옳은 말이에요"라고 동감을 표했다.


태그:#용산참사, #용산미사, #재개발 철거민, #가톨릭 굿 뉴스, #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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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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