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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심판 이미 끝났다'... 도민들의 안도감이 낮은 투표율로 이어져

 

최악의 투표율 11%.

 

김태환 제주지사 주민소환 투표가 예상과 달리 저조한 투표율로 나타나자 제주도내 안팎에서 실망의 목소리가 높다. 도민 7만7367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지난 6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만큼 위세가 막강했던 만큼 쉽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번 제주지사 주민투표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구조적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주민소환투표법의 한계다. 관계법에 따르면 주민소환 청구가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단체장의 직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다시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즉 유권자 1/10의 청구인 서명이 있어야 주민소환 투표 실시가 가능하고, 이 청구가 인정되면 유권자 1/3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서 이 중 과반이 넘는 유권자가 단체장의 직 박탈에 찬성해야 소환대상자는 그 직을 상실하게 돼있다.

 

문제는 주민투표 과정에서 찬성세력이든 반대세력이든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데 있다. 이번 제주지사 주민소환 투표에서도 일반 유권자가 선거분위기를 느끼기란 매우 힘들었다. 자신들의 의견을 밝힐 펼침막 하나 제대로 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투표사무에 종사하고 있는 한 공무원조차 "다른 선거와 비교해보라"며 "어떤 선거든지 선거 고유 분위기가 있는데 이건 분위기 자체가 뜨지 않게 돼 있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낮은 투표율의 두 번째 이유는 '이미 심판은 끝났다'는 정치적 승리감이 제주도민에게 퍼져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청구인 서명에 7만 명이 넘는 도민들이 이름을 올렸다. 고유기 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사실상 이때 이미 김 지사에 대한 제주도민의 정치적 심판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시 연동에서 식당을 하는 양아무개씨도 "저번에 (주민소환 청구인) 서명해서, 임기 1년도 안 남은 도지사 끌어내고 안 끌어내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씨의 "'한 번 혼냈으면 됐고 임기 얼마 안 남았으니 임기는 채우게 해줘야지"라는 말에서 제주도민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김태환 '투표불참' 전략, 내년 지방선거에서 되레 발목 잡는 덫 될 수 있어

 

세 번째 이유는 체면을 가리지 않았던 김태환 소환대상자의 '투표 불참' 운동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는 "주민갈등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소환운동본부와 하는 토론에는 전혀 응하지 않고 '투표불참'이라는 주민참정권 포기를 선동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이 전략의 위력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주민소환투표는 다른 선택지 없이 '김태환에 대한 싫고 좋음'을 분명히 해야 하는 선거였지만 지방선거에서는 김 지사외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쓴 '투표불참' 전략이 되레 그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표불참 선동해놓고 투표를 통해 나를 선택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이율배반 때문이다.  

 

낮은 투표율의 네 번째 이유는 일부 공무원과 행정조직의 노골적인 투표방해와 선거개입에 있다. '투표하러 가지 말자'고 건배사를 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투표하러 나온 주민의 신상을 파악하고, 투표불참을 다른 곳도 아닌 투표소 입구에서 강요했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자유당 관권선거 시절로 되돌린 것이다.

 

'서로 알고 지내는 지역사회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 일부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한껏 이용하여 사실상 '5호 담당제'에 가까운 투표방해 행위를 했다. 소환운동본부는 주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공무원들의 투표방해 행위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따라서 불법과 편법으로 얼룩진 주민소환투표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제주지역 언론의 침묵과 묵시적 방관을 들 수 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광역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청구돼 도민들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뻔히 알았음에도 대부분 지역언론은 의제설정은커녕 있는 사실조차 외면하거나 기계적 형평성을 따지며 축소했다.

 

대부분 지역언론의 실질적 사주는 토목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가장 안정적인 공사를 발주하는 지자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소환운동본부의 한 관계자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지역의 가장 큰 현안을 이렇듯 철저히 외면할 수 있나"며 허탈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에서 바른 언론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며 언론감시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래도 여전히 제주도가 '희망'인 까닭

 

이와 같은 구조적 원인이 있었기에 앞으로 해야 할 과제도 자연스럽게 제시되고 있다. 불합리한 주민소환투표법을 개정해야 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투표불참을 선동하는 선출직 단체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도 주요한 과제다.

 

법까지 무시하며 대놓고 줄을 서서 투표방해를 하고 관권개입을 하는 일부 공무원들에 대한 심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언제든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주민의 권리를 도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주의 눈치를 살피며 지역 현안을 외면하는 언론에 대한 정당한 감시활동도 요구된다.

 

그럼에도 투표결과와는 상관없이 '근거있는 낙관과 희망'이 제주도를 다시 보게 한다. 독선과 오만에 빠진 지방권력자는 언제든지 주민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는 주권재민의 힘을 제주도민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마음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 연대하고 힘을 모으는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의 저력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아니 여전히 제주도는 한국민주주의의 희망이다.


태그:#김태환, #주민소환, #주민투표,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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