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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자투표시스템에는 본인확인 절차가 없다. 다른 사람이 남의 자리에 가서 버튼만 누르면 얼마든지 투표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의 투표절차는 어떤가. 철저한 본인확인이 수반된다. 본인확인 절차 없이 이뤄진 투표를 적법하다고 판단할 수 있나. 이건 무효다."
 

김갑배(57) '언론법 권한쟁의청구 대리인단' 단장의 말이다. 헌법재판소가 다음달 10일 대심판정에서 야4당(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이 제기한 미디어 관련법 권한쟁의심판청구사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하겠다고 나서자 여야 변호인단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225명의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야4당측 법률대리인단은 거의 날마다 회의를 열고 헌법재판소를 설득할 법적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첫 번째 공개변론 준비에 바쁜 김갑배 단장은 26일 서울 강남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연히 무효"라며 그 논리적 이유를 설명했다. 2시간여 이어진 인터뷰 내내 김 단장은 법조문을 뒤져가며 '무효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김 단장은 "본인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이뤄진 투표행위가 적법할 수 있느냐"며 "개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본인여부가 확인된 다음에 한 투표라야 적법하다"고 밝혔다. 일반 유권자의 투표에서도 신분확인은 당연히 이뤄지는 절차인데,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이 같은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된 투표결과를 용인하라는 것은 우리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또한 김 단장은 "헌재가 언론법 통과는 무효라고 판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주 명쾌한데 구구한 논리로 적법했다고 판결한다면 그 자체로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후퇴시키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는 적법절차의 역사인데 이에 반기를 든다면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단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본인확인 절차 없는 '버튼의 기록'

 

- 헌법재판소가 다음달 10일 '언론법 권한쟁의심판 청구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우선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 상정했고,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표결에 붙여 신문법과 방송법, IPTV법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재석인원 과반수가 안돼 재투표까지 갔다. 다 아시는 것처럼, 당일 국회는 혼돈 그 자체였다. 국회법 해설서에 따르면, 재석의원이 과반수가 안됐을 때는 투표행위를 보류하거나 중지하거나 산회를 선포하도록 돼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투표를 종결한 뒤에는 의장이 투표결과를 공표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이윤성 국회 부의장은 투표결과를 공표하지 않고, "투표를 다시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외쳤다. 관련 영상물을 보면, 국회 의사국장이 이윤성 부의장에게 쪽지를 전해주니까, '재석의원이 과반수에 미달해 투표가 불성립됐으니 다시 투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 후에 68명이 더 투표했고, 과반수를 넘어 통과됐다고 선언했다.

 

기립투표 때와 달리, 전자투표 실시 이후에는 출석의 의미가 재석으로 변경됐다. 의원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재석 버튼을 누른 뒤, 찬성과 반대, 기권버튼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누르면 전광판에 투표결과가 게시되는 형태다.  

 

문제는 누구든지 버튼을 누르면 투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인확인 절차가 없다.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남의 자리에 가서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립투표 때는 의원들이 각각 자리 자리에서 일어나 기표했다. 본인이 확인되는 절차다. 그런데, 전자투표에서는 본인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투표가 이뤄진다. 전광판에는 본인이 한 것처럼 뜨지만, 실제는 그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들이 국회의원 선거할 때 어떻게 하나. 신분증을 지참한 뒤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한다. 투표가 끝나면 관계자들이 투표 집계가 잘 됐는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면서 확인한다. 그런데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그런 절차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사건 당일 국회 안에 몇 명이 들어와 있었는지 확인한 바 없다. 국회에 진입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투표 과정에서 본인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치고 로그인 한 뒤에 투표하는 절차도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절차다." 

 

- 이번 재판의 쟁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첫째, 본인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이뤄진 투표, 과연 이것이 적법한 절차인가 하는 점이다. 또 여야가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뤄진 투표행위를 정상적인 절차로 인정해야 하는지 쟁점이 될 것이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벌써 이 같은 절차에 의한 투표는 원천 무효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둘째, 앞으로도 헌법재판소와 국회가 미디어법 절처처럼 비정상적으로 통과되는 절차를 용인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헌법상 적법한 절차이냐, 또 국민 상식에 비춰 정당하다고 볼만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본인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투표에 대해서는 일일이 확인하는 게 정석이다. 정말 의원님이 하신 투표행위입니까, 이렇게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이 절차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화면은 국회의원 몸싸움에 집중돼 있고, 국회 사무처는 당시 CCTV 고장으로 녹화된 게 없다고 주장한다.

 

전광판은 재석과 찬반 의견을 누른 '버튼의 기록'만 있다. 이걸 믿어야 하느냐, 상당한 논란이 될 것이다. 국회는 의원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표결을 했는지 증명할 의무가 있다. 국회의장은 고유권한인 질서유지권으로 의원들을 모두 자리에 앉힌 뒤 평온한 상태에서 투표를 하고 의안을 통과시킬 의무가 있다. 그렇게 안했다면 이 역시 국회의장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불성립? 가결의 기회가 봉쇄된 게 아니기 때문에 다음 회기에 처리해야"

 

- 야당은 방송법 재투표가 국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나, 한나라당은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 선례집에 따르면, 의결정족수(재석 의원의 과반수) 부족으로 의안이 통과되지 못했을 때는 일단 산회를 선포하고 재투표 절차를 밟도록 돼 있다. 국회는 일사부재의 원칙(국회법 92조)이 있다. 한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안에 다시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한 부결일 때는 아예 회기를 다음 회기로 넘겨서 처리해야 한다. 물론 주주총회 같으면 재투표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거기는 일사부재의 원칙이 없으니까. 그런데 국회가 이런 점을 알고도 재투표를 실시한 것은 강행처리에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히 '불성립' 논란을 할 필요도 없다. 정당하다면 다음 회기에 처리하면 된다."

 

- 사건 당시 국회 허용범 대변인은 "부결이 아닌 투표 불성립으로 재투표가 맞다"고 주장했고,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도 "국회법 해설서에 따르면 의결정족수에 달하지 못했을 때는 투표 불성립을 선포한다고 돼 있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이 자꾸 불성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불성립은 이미 부결에 포함되는 것이다. 가결에 대한 소극적 의미로 부결, 불성립을 쓰는 건데... 아무튼 해당 의안이 부결되면 다음 회기 때 얼마든지 다시 제출하면 된다. 가결의 기회가 완전히 봉쇄된 게 아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통과된 법을 적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 대리투표 공방전도 치열하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일부 대리투표가 있었다 해도 그 대리투표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따져서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유효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국회와 일반국민의 선거와는 다르다. 일반국민들은 유권자다. 국회는 회의체이고, 회의의 결과를 의결로 표시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헌법상 심의와 표결권을 가진 신분이라는 게다.

 

또 일반적으로 회사 이사회에 무자격자가 참석해 투표했다면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위법하기 때문에 투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도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국회도 무자격자가 재석해서 투표권을 행사했다면 그 자체로 하자가 생긴 것이다. 대법 판례에 비춰 무자격자가 투표에 참여했다면 투표결과와 관계없이 무효라는 논리가 맞다.

 

대리투표가 한건이든, 여러 건이든 확인이 되면 결과에 상관없이 무효다.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론으로 가야 정상적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에서 대리투표가 있었고, 다른 국회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하는데도 국회부의장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투표했다. 이걸 인정한다면 국회 안에서의 대리투표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는다. 헌법이 요구하는 국회 운영상의 적법절차에 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대리투표가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 헌재가 이것을 원할까? 아마도 헌재는 적법절차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투표방해 탓 날치기 통과는 면피가 될 수 없다"

 

- 헌법재판소가 어떤 논리로 이 재판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보나.

"대리투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 또, 일부 대리투표가 있었다 해도 투표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적법절차 부분은 불법성에 대한 침해를 주장하는 청구인측에서 입증하라. 증거를 제시하라. 증거는 불충분하다. 또, 최종적으로는 언론법이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해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됐다.

 

그래서 절차적인 부분은 국회의장 재량의 범위에 속한다. 뭐 이런 논리를 대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런데 헌재가 정말 이 같은 논리를 세운다면 그것은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인 회의나 선거, 학교에서 학생회장 뽑는 선거 절차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비판받게 될 것이다."

 

- 한나라당은 재석의원이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치지 못해서 가결이든 부결이든 아예 표결이 성립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재투표한 것은 적법하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야당이 투표 자체를 봉쇄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이렇게 됐다. 투표자체를 불법으로 막은 사람들이 투표결과를 무효라고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 이렇게 주장할 것 같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아무리 야당이 투표를 물리적으로 방해했어도 국회의장은 질서를 유지한 상태에서 적법한 절차로 투표를 진행할 의미가 있다. 야당이 투표를 방해해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주장은 면피가 될 수 없다."

 

- 헌법재판소가 이번 심판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나.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에 관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했고, 법안에 대한 제안설명은 서면으로 대체하고, 질의토론은 생략했다. 이 과정에서 재투표와 대리투표, 사전투표문제가 발생했다. '표결 불성립'을 말하기 전에 투표한 사전투표도 확인됐다. 총체적인 부실투표과정인데, 이걸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세운다면 얼마나 궁색해질까.

 

헌재가 언론법 통과는 무효라고 판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주 명쾌하다. 민주주의와 국회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헌재가 구구한 논리로 적법하다고 판단한다면 역사는 과거로 후퇴하는 것이다. 적법절차 이론에서 보자면 비극인 것이다."

 

- 이번 재판이 우리 역사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고 보는가.

"민주주의 역사의 핵심은 적법절차의 원칙여부다. 내용의 정당성을 떠나, 어떤 경우는 허용되고, 어떤 경우는 불용되면 민주주의 역사에 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적법절차 발전의 역사다. 적법절차에 반했는데 허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와 국민 인식 수준에서 본다면 국회가 이와 같이 운영되고 법안이 이렇게 통과된 것을 적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언론법 통과는 무효로 보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역사에 부합하는 일이다. 어느 나라든 역사가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전해왔다.

 

헌법재판소는 이 점을 믿어야 한다. 헌재에서 언론법 통과가 정당하다고 한다면 국민들이 헌재를 인정하겠나. 상식보다 못한 판결인데. 법률은 국민적 합의와 상식 수준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상식에 반하고, 정의에 반하는데 이걸 우긴다고 되겠나. 헌법재판소는 함부로 역사를 후퇴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태그:#언론법 권한쟁의청구 대리인단, #김갑배, #한나라당, #국회법, #IPTV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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