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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앞 빈소
▲ 빈소 서울 시청앞 빈소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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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끝났다. '형평을 고려하여 퇴임 대통령에게는 국민장이 옳다.' '국장으로 예우해야 한다.' '삼, 오, 칠, 구, 홀수가 맞는데 6일장이 무어냐?' 말도 많았지만 무사히 끝난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영결식에서 하관에 이르는 전 과정이 TV로 생중계되는 와중에 위태위태한 장면이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안장식을 마친 김 전 대통령의 유해가 의장병에 의해 광중(壙中)으로 운구되었다. 약간 비탈진 언덕길에서 한 사람이라도 삐끗하면 관을 놓칠 위험한 상황이었다. 한 치 착오 없는 국장을 위해 의장병들이 수많은 반복 훈련을 했겠지만 실지로 비틀거렸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수백만 시청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또한 이 모습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멘트도 썩 어울리지 않았다. 영면관이 무엇인가? 인간은 모두가 죽으면 영면에 드는데 굳이 영면관이라 부르는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옛 문자를 쓰려면 관곽이라 부르든지 아니면 관이라 칭해도 크게 결례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도하 각 신문과 방송에서 쏟아 낸 '서거'라는 낱말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사관이 녹아 있는 낱말인데 썩 유쾌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다큐멘터리다. 가감이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가 한국의 현대사다. 그 분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환하여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 분이 있었기에 핍박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시청앞에 마련된 빈소 옆에 걸린 걸개그림
▲ 걸개그림 서울 시청앞에 마련된 빈소 옆에 걸린 걸개그림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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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에서 철의 장막에서 행해진 장례식이 떠오르는 것은 사치일까? 검은 예복을 입은 볼셰비키 핵심당원들이 메고 가던 레닌과 스탈린, 경건하고 엄숙하고 멋있지 않았는가?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교동 패밀리가 모두 함께 관을 메고 광중에 이르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태극기에서 나왔다. 안장식을 마친 김 대통령의 관을 덮었던 가로 5m 세로 3m 대형 태극기가 의장병에 의해 삼각형으로 절도 있게 접혀졌다. 이 장면을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태극기가 유가족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시청자들은 유가족이 보관하거나 김대중 도서관에 보관 될 것이라 예단했다.

하지만 태극기는 김 대통령의 유해와 함께 땅에 묻혔다. 정진태 국립현충원장으로부터 태극기를 전달받은 유가족은 "이것도 고인이 사랑했던 국가의 상징이니 집에 가져가는 것보다 고인이 지니고 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뜻으로 차남 홍업씨를 통하여 현충원 관계자에게 전해졌다. 태극기를 전달받은 현충원은 관을 덮었던 횡대를 열고 태극기를 넣었다. 이때는 이미 대통령 문양이 그려진 횡대를 덮고 허토를 마친 후였다.

만장 하나 없는 국장. 여기까지는 그래도 실수로 봐줄 수 있다. 중계방송 카메라가 철수하고 안장식을 마무리 한 유가족이 현충원을 빠져나간 후 현충원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태극기를 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영구와 함께 태극기를 땅에 묻을 수 없다'는 2007년 7월 시행된 국기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뒤돌아 현장에 도착한 박지원 의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극기가 꺼내지고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국장이 무엇인가? 나라에서 치르는 장례다. 조선시대에는 국상이라 하여 국조5례의(國朝五禮儀)에 준거해 5일 동안 철시하고 5개월에 걸쳐 장례를 치렀다. 조선은 조선이고 현대는 현대라 하지만 인간의 의례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가 느린 것이 상례(喪禮)다. 21세기에 맞는 국가의례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사
▲ 퇴임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사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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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년(1420) 12월 17일. 국가 제사 감독을 소홀히 한 예조판서 허조를 세종 임금이 편전으로 불렀다.

"경은 어찌하여 예서(禮書)도 상고하지 아니하고 제사를 행하여 절차를 틀리게 하였는가?"

준엄한 하문이었다.

"신의 죄가 크기는 하나 정분이 예서(禮書)는 알고 있는 줄로 알고 행한 것이 틀리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정분은 승문원 교리였다.

"정분에게 책임 전가를 하지 말고 문헌통고(文獻通考)와 홍무예제(洪武禮制), 산당고색(山堂考索) 등 여러 책을 참고하여 제사지내는 절차를 상세하게 정하여 뒷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라."

이렇게 하여 조선 5백년을 관통하는 국조5례의(國朝五禮儀)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현군이다. 세종 시대 시작한 편찬 작업은 세조조 강희맹을 거쳐 성종 5년(1474) 신숙주에 의해 완성되었다. 실로 54년만에 완성되었다. 이 후 수정 보완하여 국조속오례의로 집대성 되었다.

우리나라도 정부수립 64년을 넘겼다. 옛 선인들이 54년 만에 완성한 국가의례를 우리라고 못할 바 없다. 그동안 관리들이 복지부동했고 의지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30년만의 국장이다. 국장을 집행한 행정안전부에 기록이 부실하고 경험자가 부족하여 시행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은 면키 어려울 것이다.


태그:#김대중, #국장, #국조오례의, #태극기, #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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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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