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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범동포 남가주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 300여 명의 한인 동포들이 참석했다.
 '김대중 대통령 범동포 남가주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 300여 명의 한인 동포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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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LA 임마누엘교회를 17년 만에 다시 찾았다. 실의에 빠진 한인들을 독려하던 힘찬 몸짓과 목소리 대신, 말 없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이 강단을 지켰다. 추모식이 열린 LA 임마누엘교회는 1993년 김 전 대통령이 LA 폭동으로 시름하던 한인들을 위로했던 곳이다. '김대중 대통령 범동포 남가주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 300여 명의 추모객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추모식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업적과 삶의 여정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다. 국민의례와 종교의례로 시작된 추모식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천주교는 김효근 신부(성프란치스코수도회), 불교는 만성 스님, 원불교는 최정안 교감(원불교 LA교당), 기독교는 양현승 목사(미주종교평화협의회)가 이날 종교의례를 각각 집전했다.

양현승 목사는 "평화를 위해서 온몸을 던진 김 대통령을 기리며, 우리의 삶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고, 그 평화의 마음을 이웃들에게 전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양현승 목사는 "평화를 위해서 온몸을 던진 김 대통령을 기리며, 우리의 삶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고, 그 평화의 마음을 이웃들에게 전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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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LA 한인회의 스칼렛 엄 회장과 김용현 추모위원장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김 위원장은 "석 달이 채 되기도 전에, 흐르는 눈물 채 닦기도 전에, 존경하는 두 지도자를 모두 다 잃다니 너무도 허망하다"고 말하며 추모사를 시작했다.

"당신은 민주주의 대통령이자, 통일과 평화의 대통령이셨고, 용서와 화해의 대통령이셨다. 독재와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냉전 세력을 헤치고 민족 화해를 이뤄냈지만, 투쟁과 반목이 아니라 사랑과 화해와 용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미주 동포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우리들의 대통령이십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군사 독재로 더불어 시름하던 동포들에게 용기를 주셨으며 폭동과 지진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 고비를 이겨내야 한다'고 '부디 잘 살아야 한다'고 격려해주신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추모사를 낭독하는 김용현 추모위원장. 추모사를 낭독하던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삶을 되새기면서 목이 메이기도 했다.
 추모사를 낭독하는 김용현 추모위원장. 추모사를 낭독하던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삶을 되새기면서 목이 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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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혜, 이민지 양은 "이제 우리가 남북 통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뜻이 아닐까"라고 말하며 <무지개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진다혜, 이민지 양은 "이제 우리가 남북 통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뜻이 아닐까"라고 말하며 <무지개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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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보고와 조가 독창이 있었고, 미국에서 나고 자란 진다혜· 이민지양이 '대통령 할아버지 사랑해요'라는 제목으로 김 전 대통령의 남북통일을 위한 염원을 이어가겠다며 '무지개 마음'이란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 운동에 앞장섰던 랠프 페티그 교수(USC 법학과)가 나와서 그를 추모했다. 전두환 정권이 김 전 대통령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80년대 초, 김 전 대통령을 위한 구명 활동에 앞장서며 공헌했던 사람이다. 당시 미국의 주요한 정치 단체였던 ADA(American for Democratic Actions)의 위원장이었던 그는 카터 대통령 후보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카터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실제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석방 약속을 받아냈다. 

추모식에서 랄프 페티그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추모식에서 랄프 페티그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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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 망명 시절 가깝게 지냈던 이선주 목사가 쓴 '김 대통령을 기리는 글'을 윤우찬 목사가 대독했다. 일부 한인들에게 고인은 정신적 스승이자,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샬롬 여성 합창단이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선구자>와 <그리운 금강산>을 합창했다.
 샬롬 여성 합창단이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선구자>와 <그리운 금강산>을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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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은 미주 한인들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미국 망명생활에서 추진되었던 그의 인권 및 민주화 투쟁은 미주 한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모아 귀국 후 본국에서 그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또 '서울의 불바다' 위기를 잠재운 것도 그가 1994년 5월 워싱턴에 와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보내 김일성 주석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제안하였기 때문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해외 동포들이 조국의 값진 재산이라고 소중히 여겨서 '재외동포특례법'을 제정해 국내 동포와 여러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를 인정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어 이세방 시인이 쓴 '백만인 동포가 애도합니다'라는 시를 낭독했고 샬롬 여성 합창단이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선구자>와 <그리운 금강산>을 합창했다. 마지막으로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함께 낭독하고 남가주 추모식을 마쳤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참석자들은 따로 남아 헌화와 분향을 계속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추모식, #미주,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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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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