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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잡이에 나선 어머니와 아들
 물고기 잡이에 나선 어머니와 아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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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이 병에 가득히 넣어 가지고서
랄랄랄랄 랄랄랄랄 온다야.

샤샤샤 쉬쉬쉬 고기를 몰아서
어여쁜 이 병에 가득히 차면은
선생님한테로 가지고 온다야.
랄랄랄랄 랄랄랄랄 안녕,

어린 시절에 많이 불렀던 윤극영 곡, '고기잡이'라는 동요다. 실제로 내가 어린 시절 여름철이면 어린이들의 재미있는 놀이 중의 하나가 고기잡이였다. 시골 어느 곳에나 흔하디흔한 개울이나 도랑물엔 물고기가 참 많았다.

어린 시절 추억속의 고기잡이

그래서 노래의 가사처럼 양쪽에 대나무를 세우고 가운데 작은 그물을 이어 만든 도구로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물놀이가 고기잡이였다. 그 시절엔 물고기가 많아 도랑물속 수초 사이로 고기를 몰아 떠올리면 작은 붕어와 송사리들이 한 줌씩 잡히곤 했었다. 조금 깊은 강물이나 웅덩이에서는 낚시로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견지낚시와 가짜 파리미끼
 견지낚시와 가짜 파리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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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교 위를 달리는 열차
 철교 위를 달리는 열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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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해본 견지낚시는 도대체 손맛을 볼 수가 없었다. 흐르는 강물에 낚시를 띄우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작은 피라미 한 마리 낚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월을 낚는 강태공도 아니어서 헛손질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쉽지 않았다.

"피라미가 그렇게 어수룩한 줄 아세요? 그런 가짜 파리미끼로는 어림도 없어요"
"가게에서는 그냥 하면 된다던데요? 그럼 미끼로 뭘 써야 되죠?"
"자, 보세요, 피라미는 이런 구더기를 좋아하거든요"

휴전선 너머 북녘 땅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한탄강에서다. 높다랗게 철교와 일반다리 두 개가 가로지른 다리아래를 흐르는 맑은 강물에는 평일인데도 낚시꾼들이 10여명이나 견지낚시를 하고 있었다. 수량도 적당하고 물이 흐르는 속도도 견지낚시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낚시를 물에 띄우고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피라미가 걸려들지 않았다. 그렇게 고기는 낚아 올리지 못하고 한 시간여 동안 헛손질만 하노라니 배만 고프다. 하릴없이 낚시를 내려놓고 소주와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낚시에 나섰다. 그런데 고기가 물리지 않기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조금 떨어진 아래쪽에서 노인 한 분이 낚시를 하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멀리서 보기에도 가끔씩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 같았다.

가짜 미끼로 물고기를 낚겠다고?

가까이 다가가자 견지낚시를 하는 노인은 피라미를 잘도 낚아 올리고 있었다. 노인의 낚시 솜씨에 반하여 구경하다가 잠깐 쉬며 간식을 먹기로 했다.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허기만 진다. 친구들은 애꿎은 술만 많이 마신다.

낚시도 안되는데 점심이나 먹자
 낚시도 안되는데 점심이나 먹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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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18일)이었다. 연천군 최북단에 있는 고대산 등산을 하기 배낭을 짊어지고 일행 두 사람과 함께 동두천 전철역에서 내려 신탄리행 열차를 갈아탔다. 그런데 도중에 마음이 바뀐 것이다.

"오늘도 엄청 무더울 것 같은데 오늘은 산행 대신 낚시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일행 한 사람이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오를 생각을 하니 꽈가 난 것일까. 엉뚱한 제안을 한 것이다. 오전이었지만 날씨는 정말 찌는 듯이 무더웠다. 그는 평소에도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산행 준비를 하고 나온 참이어서 낚시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건 상관없어, 한탄강에 내리면 견지낚시 파는 곳이 근처에 분명히 있을 거야. 값이 비싼 것도 아니니까, 한 개씩 사들고 물속에 들어가 피라미만 낚으면 돼"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는 자신만만했다. 우리들은 그렇게 신탄리행 열차를 타고 가다가 한탄강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역에서 내려 강변으로 나서자 친구의 말처럼 간이매점에서 정말 견지낚시를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견지낚시 한 벌에 3천원,

등산 대신 낚시? 한탄강에서 만난 낚시의 대가 80세 조중엽 옹

덜렁 낚시 한 벌씩을 사들었다. 주인 할머니에게 물으니 미끼를 따로 준비하거나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낚시와 함께 파리처럼 생긴 가짜미끼가 매달려 있었는데 흐르는 물에 낚시를 내려놓고 슬쩍 슬쩍 당겨주기만 하면 피라미가 파리인 줄 알고 덥석 물고 낚여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구명조끼가 걸려 있는 강변 풍경
 구명조끼가 걸려 있는 강변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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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그것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번거롭지도 않고."

견지낚시를 난생처음 해보는 친구는 금방 피라미가 줄줄이 낚여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라도 드는지 벙글거리며 웃는다.

물가로 내려간 우리들은 다리 밑에 배낭을 벗어 놓고 반바지 차림으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저만큼 물속에서는 몇 사람이 우리들과 같은 방법으로 견지낚시를 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견지낚시를 하고, 엄마와 아들은 작은 그물도구를 들고 물고기를 몰고 있었다.

그런데 낚시를 시작하면 금방 피라미들이 줄줄이 낚여 올라올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도무지 낚이지가 않는 것이었다. 자리가 좋지 않은가 싶어 이리저리 자리도 옮겨보고, 피라미를 잘 낚아 올리는 노인 근처로 가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낚이지도 않는 헛손질 낚시에 지쳐 잠깐 쉬기로 했다. 바위에 올라앉아 간식을 들고 있을 때 노인도 쉬려는지 우리들이 있는 근처로 올라왔다. 노인의 고기주머니엔 50여 마리의 피라미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세 사람이 단 한 마리도 낚아 올리지 못한 피라미를 비슷한 시간동안 노인 혼자서 낚아 올린 피라미들이었다.

낚시하는 조중엽 노인
 낚시하는 조중엽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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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할아버지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이만큼이나 잡으셨어요?"

우리 일행들은 입을 딱 벌렸다.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금방 수긍이 간다. 흐르는 강물에서 하는 견지낚시라고 아무렇게나 해도 물고기가 낚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피라미들은 바보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그런 가짜 파리미끼는 물지 않아요, 이런 구더기 미끼를 써야지"

노인은 가슴에 자그마한 주머니를 차고 있었는데 그 주머니 속에는 미끼로 쓰는 구더기가 담겨 있었다. 물고기가 먹을 수 없는 가짜미끼가 아니라 물고기들이 좋아하는 진짜미끼를 사용한 것이다.

오랜 낚시 경륜 노인에게서 삶의 작은 진리를 배우다

물론 가짜미끼를 무는 어수룩한 피라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짜미끼를 사용해야 미라미를 많이 낚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산다는 올해 80세인 조중엽 옹은 낚시의 대가였다. 낚시경력도 50여년이나 된단다.

"낚시도 경륜이 필요하지요, 붕어낚시 바다낚시 모두 마찬가지지만 견지낚시도 아무렇게나 적당히 한다고 물고기가 잡히는 건 아닙니다. 위치 선정도 중요하고 미끼사용이나 기술이 따라야 많이 잡을 수 있습니다."

피라미가 들어 있는 조중엽 노인의 고기 그물망과 쏘가리, 누치
 피라미가 들어 있는 조중엽 노인의 고기 그물망과 쏘가리, 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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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낚시꾼 몇 명도 노인에게 다가왔다. 그들도 낚시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조중엽 노인처럼 많이 낚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대부분 가짜 파리미끼를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 모처럼 낚시하다가 삶의 진리 하나를 깨달았구먼,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적당히 하려하거나 속이려 들면 안 된다는 사실 말이야, 평범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리기 쉬운 일이잖아"

정말 그랬다. 80평생에 50여년 경력의 노인 낚시꾼에게서 배운 작은 진리였다. 노인에게서 삶의 작은 진리와 함께 낚시기술을 전수받아 멋진 낚시 솜씨를 발휘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친구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 소리가 삐리리 울린다. 통화하는 친구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었다. 일행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낚시할 기분이 싹 사라져 낚시를 접고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태그:#견지낚시, #한탄강, #피라미, #이승철, #낚시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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