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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해 항해하는 '청년기자'가 길을 잃다 

 

18일, 나는 지난날 기획했던 기사를 밤늦게까지 쓰느라, 오후 느지막히 일어났다. 그런데 티비를 켜는 순간, 무언가 알 수없는 '찌릿함'을 느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끝내 돌아가셨다니...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도무지 앞을 보려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눈'이 볼 수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가슴' 또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이제는 정말 '등대없이 야밤을 항해해야 하는' 그런 심정이 밀려왔다. 아니 "이제 항해를 하지 말아야 할까?" 하는, 정말 순간적으로 내가 하는 일을 관두고 싶었다.  

 

사실 DJ는 연세도 많이 드셨고, 언젠가는 운명하실 날이 곧 올거라는 생각을 올해 종종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되고 난 이후에, 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워 충격을 먹었다. 그래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했다고 평가받는 정부를 이끌었던 '두 분의 대통령'이 모두 올해 돌아가셨다는 게,나에게는 심상치 않은 의미로 다가 왔다. 정말 한국사회에서는 양심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불의와 싸우면 끝내, 그 정의가 승리한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 걸까? 그런 걸까?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존경했다. 그나마 한국에서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던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분이 끝내 돌아가셨다니,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누가 수호할까? '대한민국 서민'들은 누가 보살펴줄까?  나는 '회의감'에 젖어, 한동안 집밖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맘 먹었다.

 

그러나 다시 집밖으로 나가다

 

한동안 집밖에 나기지 않으려 했는데, 그 맘을 이내 접고 말았다. 집에서 '은둔생활' 이틀째 되던 날, 인터넷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대표가 ['노무현, 마지막인터뷰' 저자와의 대화]를 위해 광주에 온다는 것을 알고, '그래 이거라도 나가서 들어보자' 하고 몸을 추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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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일 광주에서는 오후 다섯시가 되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런만큼 분위기도 으스스했다. 입고 있던 모든 옷이 다 젖는 고초를 겪고, 겨우 강연장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이미 오연호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 내가 차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비가 안 내렸는데,갑자기 비가 많이 내립니다. 광주의 하늘도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슬퍼하는 거란 생각이 들고요" 라며 입을 뗀 오 대표는 "이번 광주에서 저자와의 대화를 '김 전 대통령 서거' 전에 기획해서 오늘은 '노무현을 공부해야하는 이유'라고 현수막이 붙어 있지만, 김 전 대통령도 함께 대화의 주제로 삼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저자와의 대화'는 먼저, 사회자가 참가자들의 대표로 오연호 저자에게 몇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이어가고, 그 후에 참가자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왜 노무현을 공부해야 하는가?   

                                                                 

- 왜 이 시점에서 노무현을 공부해야 되는지 설명부탁드립니다?

먼저 말씀드릴것은, 원래 이 책은 단행본이 아니었습니다. 퇴임 얼마 전 노 전 대통령을 '인물연구'대상으로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그것은 오마이뉴스에 연재기사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갑자기 돌아가셔서, 독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공부해보는 교과서'가 필요할 거 같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그것을 토대로 돌아가신 지 두달 만에 책을 만들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공부하는 대통령입니다. 저는 왜 재임중인 대통령이 나랏일 하기도 바쁠텐데, 공부를 하려하는지 그것에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저는 노 전 대통령이 '진보의 미래'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만든 목차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제가 너무나도 치밀하면서도 포괄적이었습니다. 그는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도 이 공부를 지속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금 2009년 2MB정권을 살면서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점과 맞닥뜨려져, 바로 지금'노무현이 공부한 것'을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각성된 시민권력'은 가장 강력하다.

 

나는 얼마 전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됐을 때, 언론인으로서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해, 가만히 앉아있기보다는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광주시내에 나가 '미디어법 반대 홍보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티비에 나온 것과는 달리(미디어법 국민60%반대) 의외로 미디어법에 대해서 정말로 무지하다는 것만 깨달았다. 그래서 여론조사자체가 불가능했고, 미디어법 반대 홍보문구가 실린 피켓만 몇시간 동안 들며, 반대홍보만 하고 왔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하신 '각성된 시민'과 더불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씀하신 '행동하는 양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달았다. 어찌보면 미디어법은 상대적으로 무관심 했던 국민들이 의외로 많아서 통과된 것일 거다.

 

- "대통령은 모든 권력의 1인자가 아니다. 단지 정치권력의 1인자일 뿐이다. 한국에는 언론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 이 따로 있기때문이다." 라고 노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는데 이에 대해서 설명 부탁합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단지 정치권력만이 바뀐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끊임없이 바뀌었는데, 경제, 언론권력은 해방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죠. 결국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려면 정치, 경제, 언론 권력이 모두 바뀌어야 됩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이것이 성사될수 있는 원동력이 '깨어있는 시민권력'뿐이라고 했습니다. 각성된 시민이 조직적인 힘을 발휘한다면, '대한민국은 변화한다'고 본 거죠.

 

- 퇴임 후에 노 전 대통령이 "나는 새롭게 시민권력으로 들어갑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꼭 시민단체활동을 한다거나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봉하마을에 거주하시면서, '진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의 기본적인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에 여러가지 면으로 서포트 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대통령을 해봤기 때문에, 국가의 구체적인 '정책이나 법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사회 현상' 이 작용하는가를 그래도 더 잘 알기 때문에, 시민권력이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방향을 잘못 설정했을 때, 그런 것들을 바로 잡아주고자 하셨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후에도 '인터넷'을 잘 활용해,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였다. 그러면서 시민들과 논쟁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민들의 '생각의 틀'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은 '각성된 시민'의 힘을 믿고, 지속적으로 '각성된 시민'이 나타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정의가 승리한다.' 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존경한 사람을 공부하는것도 중요할텐데요. 노 전 대통령이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는데, 왜 링컨을 존경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가 패배한다'는 것에 너무나도 열받고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정치를 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저 '정의가 승리한다' 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고, 대통령까지 하려고 했던 이유도 다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김구'보다는 '링컨'을 더 존경했습니다. 아무래도 김구선생은 현실적으로 이승만에게 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김구가 대통령이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오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중에도 항상 '소수층'이라는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라며,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됐을 때, "본인의 의도 대로 할 수 있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 하소연했다고 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97년, 2002년 대선은 우리가 우연히 이긴 것' 이라고 말한 것은 '상징적'이라고 했다. 그만큼 노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권력과 반대되는 정의가 소수의 약자라고 생각하며, 여기에 '각성된 시민'이 힘을 더하면 분명히 '정의가 승리한다'는 법칙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정말 어려웠다.

 

- 우리는 '노무현과 김대중' 민주정권을 이끄셨던, 두분의 전직 대통령과 이별했습니다. 그런데 노전대통령이 "나는 '국민의 정부'때문에 많은 열매를 따먹었다." 고 하기도 했는데요...?

노무현대통령은 김대중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공부했습니다. 또, 부러워했습니다. 그만큼 실제 노전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책을 추진하려 했을때,하나같이 DJ정부가 미리 손을 댔던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정부'에게 고마워했죠. 그리고 DJ를 공부한거죠. 그만큼 두 정부가 이루고자 했던, 추구하고자 했던 그 가치는 비슷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최우선의 지향점으로 삼았죠. 그런데 노전대통령은 DJ정권과의 '차별화 욕심'이 없었던것은 아닌거 같았습니다. '참여정부'만이 할수있는 특색을 보여주고 싶어했죠. 그리고 국민의정부와의 현실적인 마찰이 있었을때는 힘들었다고 합니다. '대북송금특검'을 실시했던것은 정말 어쩔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당시 '여소야대'의 상태였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맹공세를 무시하기 어려웠죠. 더군다나 집권초기였으니 한나라당과 초반부터 갈등을 빚고 싶지는 않았겠죠. 지극히 현실문제에 따른 '어려움'이었다고 합니다. 

 

'대북송금특검'뿐만이 아니었다. 노전대통령은 퇴임뒤 한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파병'과 같은 문제에서, 정말 대통령이라면 원치않은일도 어쩔수 없이 할수밖에 없는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사실 '한미FTA' 와 '파병'은 진보진영도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됬다. 거기에 점점 어려워진 경제사정은 그를 괴롭혔다. 이런 요인때문에 노전대통령은 집권말 거의 모든 국민이 '싫어했던' 대통령이 되어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2MB정권이 탄생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래도 '참여정부' 만이 이루어낸 것은 있었다.

 

- 참여정부만이 할 수 있었던, 그런 것은 없었을까요?

'권위주의 청산'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그건 노 전 대통령도 '자의반 타의반'이었다고 하셨어요. '뭐 검찰을 왜 놓았냐?'는 질문에도, "검찰과 함께갔으면 나도 타살됐을 것이다."라고 한것처럼 그는 권력기관과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DJ는 위대하지만, 아무래도 대통령이라는 권위가 있어보여서 그것을 타파하고자 싶었던 거 같았어요. 어쨌든 DJ는 '야당의 주류'였고, 노무현은 '시민의 참여'로 인해 대통령이 되었기때문에 권위주의와는 어느 정도 멀게 지낼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뭐 정권 후반부에 '시민의 참여'가 부족해 많이 힘들었지만 말입니다.

 

- 그런데, '탄핵'부분과 관련된 것이 책에 언급되지 않았는데, 실제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는 어땠습니까?

제가 책에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과 같은 부분은 자세히 다뤘는데요... 일단 주로 포커스가 '깨어있는 시민권력'에 맞추어져 있다보니,주로 이 부분과 관련되서 '진보의 나아갈 길' 이런 것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탄핵'이나,'대북송금특검', '정몽준과의 결별'.... 이런 민감한 부분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편집과정에서 큰틀에  맞추다보니 안 실어졌습니다. 그리고 '인간 노무현'의 소소한 일상과 모습들에 관해서도 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오 대표는 '김대중, 노무현'이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우리의 승리'로 봐야 한다고 했으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두 분은 부당한 권력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부당한 권력을 가진 세력을 물리치지 못했다. 그들과 함께하더라도 10년동안 진정한 가치가 실현된 사회를 만들지는 못했다. 민주정부가 집권한 시기에 '그들'(부당한 세력-친일)을 개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이유로 하지 못했다. 적어도 아직은 '그들'이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난 두 분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나 안타까웠다. 적어도 진정 '정의가 살아있는' 한국사회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주의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양극화는 더 벌어졌다. 국가가 국민을 때리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시대로의 회귀를 맞은 거 같다. 그래서 이 '두 전직대통령의 서거'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크다. 특히 두분이 남기셨던 '행동하는 양심+각성된 시민'이라는 가르침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어느정도의 승리'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가와 기업가의 차이

 

'이명박과 진보'라는 두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오연호 대표를 통해 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은 우리가 귀기울여 들어볼 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대통령'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대통령은 정부를 이끌면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철학적 큰 틀'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MB는 4대강이나 여러가지 정책을 보면, '기능주의'적 측면만 너무 강하게 보이잖아요.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정치 권력이 어떻게 '시장권력의 방향'을 잡아주고, 시장에서의 낙오자나 약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와 같은 것을 항상 생각하신 겁니다. CEO는 자기 집의 자기호 주머니 사정만 생각하는 게 임무죠. 그러나 정치가는 남의 호주머니도 항상 신경써야되는 거죠. 이런 것이 정치를 하는사람으로서의 '철학' 이죠. 그만큼 MB는 그런 것이 많이 부족할 거라는 것을 노 전 대통령은 정확히 예측하셨습니다. 뭐 정치적 대상의 포괄성이 오직 협소하다 보니, 부자들만 자기편을 만들면 된다는 식인거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가 너무 '경제 어렵다 어렵다' 하다보니까 시장의 지도자를 정치 지도자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우리에게도 있었잖아요. 그런 면을 잘 이용해 마케팅을 잘한 게 MB입니다.

 

뭐... 진보는.. 노 전 대통령은 진보를 '민주주의'의 내재된 가치라고 하셨습니다. 즉, 필연적으로 진보주의자는 민주주의를 신봉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진보는 사회적 약자와 시민, 대중과 어떻게 하면 함께 갈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합니다. 보수와 기득권들은 이미 많은 걸 가진 기업가라든지 엘리트잖아요. 그래서 보수는 일방적으로 따라오라고 일방적으로 행동하는겁니다. 자신들이 '사회의 엘리트'니까요. 그래서 이런 보수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보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실용적이고 합리적 진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더불어서 경제와 기존의 권력과의 관계도 항상 신경써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각성된 시민'이 되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면 한국사회는 변할 수 있다

 

사회자 질의가 끝나고, 일반 참석자들이 질문하는 시간이 됐다.

 

-시민사회단체가 나아갈 길을 말씀해주시면요?

시민사회단체 중요하죠. 뭐 기존의 단체나, 새롭게 생겨난 단체, 모두가 중요합니다. 제가 이런 '대화의 장'을 전국적으로 할 계획인데요. 그런 거죠. 우리가 노 전 대통령 서거정국에 '노무현 공부 붐'이 불었는데, 그런 '작은 바람'이 시민사회가 더욱 더 견고해질 '자양분'이 되길 바랍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정치권력'보다도 더 강하고, 모든 권력들을 교체할 수 있는 원동력이 '시민권력'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시민권력'이 공부를 더 많이 하고 '각성된 시민'이 된다면, '정치권력'이 바뀜과 상관없이, 시민사회가 형성된 정의는 살아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럼과 동시에 기존권력의 하나하나에 진출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뭐 지방선거나 교육감 선거 이런 곳에도 적극적으로 나가야 된다고 봐요. 물론 노 전 대통령은 '정치 하지말라'라고 하셨지만, 저는 오히려 '각성된 시민'들이 실질적 권력도 쥐어야 한다고 봐요.

 

- '행동하는 양심'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도 있구요.

제가 이 책의 추도사를 받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을 인터뷰하러 갔는데요. 거기서 그러더군요. " 담벼락에 욕이라도 해라"며 DJ는 각자에 알맞은 '행동과 실천'을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투표를 하고, 인터넷에 댓글을 달고, 이런 것도 행동하는 것이 될 수 있지요. 꼭 투쟁하고, 고문당하고, 그런 것만이 '행동하는 양심'인 것은 아닌 겁니다. 다 각자의 위치에 알맞은 형태로 행동하면 돼요.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왜 더 적극적이지 못하냐'며 비난할 필요도 저는 없을 거 같아요. 나름대로의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DJ가 그러셨어요.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라." 물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또 독려할 수도 있지만,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 그대로 인정하라는 거죠. 동지의 단점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나는 그래도 너무나 안타까웠다. 정말 한국사회는 아직도 힘들 거 같았다. 두 분의 대통령처럼 정의를 위해 싸우시던 분이라도 한국사회에서는 안 통하고, 끝내 눈감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아직도 맴돌았다. 그래서 난 질문했다.

 

- 저는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역사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 속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접하게 됐고, 너무나 부당한 세력이 지금까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걸 너무나 뼈져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바꿔보고자 생각했고, 그 방향을 '저널리즘'을 통해 하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민주정권을 이끈 두 분'이 돌아가신 것을 보며, 너무나 상심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5번의 죽을 고비도 이겨내며 싸우신 분도, 바보처럼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는 가치를 위해 사신 분도 다 통하지 않는구나" 라는 회의감에 오늘까지도 젖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갑자기 기자가 되고싶은 맘이 사라지려 합니다. 아무튼 두 분의 전직 대통령과, 우리와 같은 양심이 꿈꾸는 그런 사회가 한국에서 가능하시다고 보시는가요?

그래도 DJ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다는거 자체가, '정의'가 승리한 사례라고 볼 수있어요. 더군다나 노 전 대통령은 반에서 왕따가 학생회장을 한 경우니까요. 저는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다만 점진적이고 차근차근 이뤄집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전합니다. 이런 식으로 인류의 역사도 펼쳐졌구요.  아무튼 역사의 흐름을 길게 봤으면 합니다. 네티즌이 흔히들 이렇게 말하잖아요. "일제 30여 년도 버텼는데, 고작 MB 3년을 못 버틸까? "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저는 MB정권은 금방 끝날 것이고 다시 우리가 '민주정권'을 세울 것인데, 그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사실 지난 '민주정권 10년'에 국민들이 "이제는 민주주의도 이뤄졌으니 뭐 신경 안 써도 되겠지" 하며, 너무 자만한 거 같다고, DJ가 말하셨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었죠. 언제나 자만하면 안됩니다.

 

그렇다. 나는 사실 이 정부의 그동안의 행태에 너무나도 질려버린 거 같았다. 이 정권의 권력구조가 계속가는 줄 알았다. 이 정부의 '사악함과 지독함'이 두 전직대통령도 못 견디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절망했다. 안될 것만 같았다. 끝내 이렇게 싸워도 한국의 권력구조는 이승만이 '친일청산' 못한 그 시초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변화'는 불가능할 거 같았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과 김대중' 두 명의 돌아가신 전직 대통령의 유산을 공부하고 실천한다면, 우리 모두가 실천한다면, 가능할 거라는 희망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래 3년만 참고 더 노력해야겠다. 그때, 바로 그때, 3년 후에 정말 그때 두고보자. 그때까지 " 그래 내가 먼저 행동하면 되지. 내가 먼저 각성하면 되지." 하면서 다시 기사를 쓰는 나를 발견한다.

덧붙이는 글 | "후배들이 잘해주십시요"라는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잘 새겨들었습니다.

네, 제가 먼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모범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그:#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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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에서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고, 그 이후로는 광주로 내려와서 독립 언론 <평범한미디어>를 창간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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