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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 바닷가로, 섬의 해변으로 놀러 갔었습니다. 여름이 한창인 8월의 중순에 갯벌이 있는 서해안의 연륙섬으로 먹을 것을 조금 챙겨 놀러 갔었습니다. 아내와 쌍둥이 딸들도 함께 갔었습니다.

 

차를 타고 좀체 막히지 않는 공항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습니다. 군데군데 설치된 과속단속 카메라를 간신히 따돌려가며 제한속도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질주했습니다. 한 시속 109km 이내로만 달렸던 것 같습니다. 신호등도 없는 넓은 도로에 비싼 돈이 질서정연하게 장판처럼 깔린 것 같은 쾌로를 따라 브레이크를 살살 밟으며 달렸습니다. 조금 사치스럽다 싶게 달렸습니다.

 

어머니는 달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 좋다. 이런 게 천국이고만! 내가 그래도 복 중에 오만 가지 복은 다 타고 났는가 싶네. 우리 아들 차타고 가끔 이리 좋은 구경도 하고, 아이고 좋다! 주여~!"

 

우리 어머니의 나이는 올해가 지나고 내년이면 팔십입니다. 허리도 구부러지고, 온 몸이 가늘게 메말라 연약해 보이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입니다. 여태 살아오시며 자식들에게 모든 알맹이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빈 거죽 같은 양반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소녀 같은 명랑한 목소리를 가진 분입니다. 때때로 수줍게 웃으시며 '좋아라' 하시는 미소를 보면 마치 순진한 어린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을왕리 바닷가에 도착해서 갯내 나는 바다를 만났습니다. 모래밭에 앉아 잔잔히 출렁대는 바다도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물가에 나가 발목을 담그고 무릎까지 적셨습니다. 얕은 물결이 다가와 어머니의 무릎과 허벅지를 살짝 스치자 어머니는 "어이쿠!" 하고 놀라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행복해 하셨습니다.

 

나는 문득 어머니를 업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시골집 처마 밑에 매달린 바싹 마른 시래기처럼 가벼운 어머니를 등에 업고 바닷가를 마냥 걸어 다니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업고서 도란도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괜찮다, 창피하다'시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어머니의 여의고 꼬부라진 손을 다시 잡았습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막내아들과 깍지를 꼭 끼어 잡은 손이 따뜻하고 편안하셨는지 손아귀에 땀이 찰 때까지 오래도록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내와 쌍둥이 딸, 어머니와 함께 우리끼리 갯벌체험을 했습니다. 찰랑대며 저 멀리로 후퇴해가는 썰물의 뒤를 쫓아서 바다로 걸어 나갔습니다. 갯벌의 작은 웅덩이 주변에 몰려 꼬물거리며, 슬슬 기어 다니는 소라고둥과 재빠르고 앙증맞은 소라게를 한 움큼 포로로 잡았습니다. 어머니는 신기한 듯 몹시 즐거워 하셨습니다. 갯벌 바닥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허리를 굽혀 바라보시며 연신 '재미나다' 하셨습니다.

 

먹고 살랴, 아이들 가르치고 키우랴, 평소 해야 할 일도 하랴, 또 앞으로 살아갈 일도 준비하랴. 마땅히 돈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바쁜 척, 시간 없는 척, 어머니께 비싸게 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요즘 들어 실제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살다보니 혼자 계신 어머니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위로 형들이 있고, 누나들이 있어서 더 소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어머니께 전화하고, 일주일에 한번쯤은 찾아가 어머니와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랬었는데, 요즘 들어 도통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가끔 막둥이 아들에게만 속 시원히 털어놓으시던 어머니 마음속에 품은 진짜배기 이야기도 맞장구 쳐드리며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아쉽습니다. 어머니께 죄송스럽습니다.

 

무슨 위세도 아니고, 남 앞에 자랑할 것도 아닌 부끄럽고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여름 간신히 짬을 내어 어머니와 보낸 반나절간의 어설픈 휴가였습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아들을 한결 같이 늘 사랑하시는 고운 어머니와 보낸 마음의 여행이었습니다.

 

흐렸던 하늘이 크고 작은 구름들의 이합집산으로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그 틈에 구름들 사이로 삐죽 고개를 내민 따가운 햇볕은 바다와 모래와 갯바위에 따가운 직사광선을 뿌렸습니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에도, 내 얼굴에도 햇볕은 예외 없이 묻혀지고 발라졌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금세 힘들어하셨습니다. 이마에서 뺨을 타고 흐르는 투명한 땀은 어머니의 허약한 기력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꾸나"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와 집 근처 삼겹살 집에 들렀습니다. 생고기를 연탄불 위 철망에 구워 드시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기름기가 쏙 빠진 직화구이 삼겹살을 상추에 싸지도 않으시고 꼭꼭 씹어서 맛있게 잘 잡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구워주니까 참말로 맛있다!"

"아이고~ 우리 토끼들(쌍둥이 손녀들)도 많이 먹어라, 어멈도 많이 먹고..."

 

어머니께서 맛있게 잡수시는 걸 보면서 나는 저절로 배가 불러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진짜로 기분이 좋으셨는지 쉬지 않고 웃으셨습니다. 마구 즐거운 표정을 하셨고, 신나는 목소리로 얘기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내와 나는 마음속으로 당신께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 못난 불효자식이 잘 살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엄마,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차에 태워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에 언젠가 책을 읽으며 메모해 두었던 생텍쥐페리가 쓴 몇 줄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딸 아이의 디카로 찍은 사진이 실수로 모두 날라가 버려 부득이 지난 사진을 실었습니다.
< 지난 8월 15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태그:#어머니, #어머니와의 휴가, #을왕리, #을왕리 해수욕장,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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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기 위한 모임으로 다음 카페 <고양올레>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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