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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영겁의 세월을 고난과 함께 살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굴절되고 왜곡된 진실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부산에 살던 2006년 3월 초순으로 기억하는데요, 대구 영남대학교가 남북교류 및 동서화합에 이바지한 공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특별강연도 있을 거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평화통일 대구 시민연대'와 '영남대 통일문제 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특강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의 미래', '역사와 화해, 용서'를 주제로 강연할 것이라는 대목은 통일의 최대 장애물인 동서갈등의 벽을 허무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명예 박사학위 수여 제의를 거절했으나 영남대 측이 여러 차례 동교동을 방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상징적 교주로 있는 영남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동서화합과 과거사를 정리하는 뜻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득한 끝에 성사됐다고 합니다.

훗날 김 전 대통령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예견하고 기록으로 남길만한 인연을 맺으려고 했던 영남대를 생각하니까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다녔던 데서 유래한 '삼고초려(三顧草廬)'가 떠오르면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동서화합, 남북공조, 평화통일'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각하면 김 전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외국 순방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서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후광 김대중 마을' 대구·경북 회원들과 상의 끝에 영남대와 동대구역 등에 환영 현수막을 걸고, 동대구역에 도착하는 김 전 대통령 내외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구시민 반응

동대구역 앞마당. 대구 시민은 물론 꼬마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구방문 환영에 동참해주어 고마웠습니다.
 동대구역 앞마당. 대구 시민은 물론 꼬마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구방문 환영에 동참해주어 고마웠습니다.
ⓒ 후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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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숫자가 적어 고민하는 제가 보기에 안됐는지 아내가 바쁜 일정을 바꿔가며 동행해주어 고마웠는데요. 동대구역에 도착하자마자 역무원을 찾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어떤 통로를 이용할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지요.

역무원이 신분을 묻기에, '후광 김대중 마을' 카페 운영자인데 대구, 경북지역 회원들이 추진해서 환영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해보고는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출구로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이용할 휠체어까지 보여주더군요. 

일반 통로로 나온다는 말을 듣는 순간, "과연 김대중이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따르는 안티 DJ 세력들이 대구방문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국회의원만 되어도 귀빈실 이용이 상례이니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기 전 동대구역. 처음에는 대합실이 썰렁해서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기 전 동대구역. 처음에는 대합실이 썰렁해서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 후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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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썰렁했는데, 대통령 내외가 환하게 웃는 장면이 담긴 피켓과 대형 현수막을 펼치니까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군요. "몇 시에 도착하느냐?"고 묻는가 하면, 차표를 물리자는 사람, 기다렸다가 대통령이 나오면 박수나 치고 가자는 분도 있었습니다. 삼성 직원이라는 분은 동료와 함께 현수막 곁으로 다가오더니 "우리 아버지가 김대중 대통령을 무척 좋아하셨고, 나도 존경한다"며 피켓 하나는 자기가 들고 있겠다고 하더군요. 대구 시민의 반응을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 내외분에게 꽃다발을 전달할 화동들은 <오마이뉴스> 인기 블로거인 '초석'님 아들과 조카였는데요. 부인과 여동생, 아버님까지 가족이 총출동했더군요. 초석님은 아버지가 "김대중 대통령을 어떻게 알고, 어떤 사유로 환영하느냐?"고 묻기에 오래 전부터 활동하면서 모임 차원에서 한다니까 무척 기뻐하시더라고 하더군요.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위해 꾸며낸 사건 중 하나인 60년대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온갖 고초를 당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며 40년 넘게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오는 초석님 아버님에게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격스러웠던 환영행사

도착시간 10분 전 모습. 늦었지만, 환영행사에 참여해준 대구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도착시간 10분 전 모습. 늦었지만, 환영행사에 참여해준 대구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후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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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시각이 가까워지니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에 담당 비서에게 전화했더니 정시에 도착한다고 하더군요. 해서 회원들이 외칠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의 대구 방문을 환영합니다!"를 연습했습니다. 특히 "대구 방문"을 크게 외쳐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구경하던 시민이 함께 하겠다고 나서더군요.

방송사 카메라들이 몰려들고, 무선전화기를 든 사복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고 대통령 내외가 기차에서 내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안내방송도 없었고, 모이라고 외치지도 않았는데 대합실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몰려들더군요.

조금 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나타냈는데요. 환호하는 저희와 대구 시민에게 손을 흔드시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혼났습니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노태우는 호남에서 김대중은 대구 부산에서 돌멩이 세례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했었거든요.

화동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만족해하는 김 전 대통령 내외. 이렇게 만족해하는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미어집니다.
 화동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만족해하는 김 전 대통령 내외. 이렇게 만족해하는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미어집니다.
ⓒ 후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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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꽃다발을 전달한 화동들을 살포시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요. 밝은 연두색 정장 차림의 이희호 여사가 만족해하며 화동들에게 덕담을 해주었는데 아쉽게도 사람들의 환호에 묻혀버렸습니다.

꽃다발 전달이 끝나자 윤철구 비서관이 저를 "후광 김대중 마을" 운영자라며 대통령 내외분께 소개하더군요. 그래서 언제나 따듯한 김 전 대통령 손목을 살며시 잡고 "부산에 사는 인터넷 필명 '종아니'입니다. 대구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작년 5월 어버이날에 뵈었을 때보다 건강이 더욱 좋아 보이십니다. 여사님과 함께 만수무강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대통령 내외는 환영하는 대구 시민에게 손을 흔들며 대합실을 나와 하룻밤을 지낼 그랜드호텔로 향했는데요. 교통이 복잡한데도 교통통제 요구를 안 했더라고요. 행사를 며칠 앞두고 덴마크에 거주하는 회원이 대통령 내외의 신변을 걱정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기에 경호가 철저히 이루어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댓글은 달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거든요.

'전직 대통령들의 교통통제 요청' 자료를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요청한 사실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은 '동토의 땅' 대구라서 설마 했는데, 존경심이 더하더군요. 전직 대통령이 탑승한 차가 일반 택시들과 함께 달린다는 것은 그 사회의 민주화와 선진화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내외가 환영 만찬에 참석하고 주무실 호텔입구에서도 환영하려고 무단횡단을 해가며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교통경찰 아저씨도 대구를 방문한 김 전 대통령 환영객인 것을 아는지 차량을 통제하면서 편리를 봐주더군요.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서도 입구 좌측에서 환영 현수막을 들고 서 있던 영남대학교 여학생들과 함께 "대통령님 내외분의 대구 방문을 환영합니다"를 외쳐댔습니다. 결국, 환영식을 두 번 한 셈인데요. 또 하나의 역사가 기록될 2006년 3월 20일은 붉게 물든 태양이 호텔 앞마당까지 물들이면서 차분하고 조용하게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날이 그립네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대통령, #영남대학교, #대구, #후광김대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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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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