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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륵산에서 본 통영 전경
 미륵산에서 본 통영 전경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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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심야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간다. 지난 여름여행 사전 답사비용 보조금으로 얼마가 생겨 연휴기간에 통영, 거제를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비용을 줄일 겸 시간도 절약할 겸 심야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동행하는 후배들은 벌써 나와 탑승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내 딴에는 3명이라 맨 뒷좌석을 예약했는데 후배는 튀는 자리라며 뭐라 한마디 한다. 그러나 이 자리의 참맛은 취침모드로 자세를 잡고서야 알 수 있었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에어컨을 올려주는데 갑자기 콧속으로 여름에 처음 자동차 에어컨 틀었을 때처럼 온갖 먼지 냄새가 밀려온다. 코는 칼칼해지고 코 위에 수건을 대놓아도 냄새와 기침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 휴게소에서 기사에게 물어보니 '차가 오래 되어서 그렇다'는 간단한 대답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역시 꾼들은 부지런하기도 하다. 벌써 채비를 끝내고 막간을 이용하여 참을 들고 있다.
 역시 꾼들은 부지런하기도 하다. 벌써 채비를 끝내고 막간을 이용하여 참을 들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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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터미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려고 표를 사고 있다.
 여객선터미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려고 표를 사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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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조금 넘어 도착한 통영 대합실에서는 새벽이라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여행객들이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기도 하고 서로 이야기도 나눈다. 통영 여행지도를 하나 챙겨들고 서호시장으로 향한다.

4시면 붐비기 시작한다는 서호시장은 공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다. 잠시 시장주변 불이 켜진 곳으로 가니 김밥집과 낚시집이다. 역시 꾼들은 부지런하다. 벌써 채비를 끝낸 사람들은 막간을 이용하여 깁밥, 백반 등으로 시끌벅적하니 배를 채우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한 바퀴 돌고 <원조 시락국>집으로 가니 벌써 그 사이에 손님이 두엇 앉아 있다. 목로 중앙에는 작은 반찬통들이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들어 있는데 큰 통으로 냉매가 돌게 되어 있어 그것 자체로 냉장 역할을 한다. 반찬은 각자 덜어 먹고 국밥만 갖다 주는데 주인장이 어떻게 먹는지 일일이 가르쳐 준다. 장어국에 시래기를 풀어 넣었다는 시락국은 담백하니 짙은맛은 없고 추운 새벽 허한 밥통을 채우기 딱 좋을 정도이다. 

4시가 조금 지나니 여는 <원조 시락국집>
 4시가 조금 지나니 여는 <원조 시락국집>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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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가운데는 왼쪽 파이프로부터 냉매가 공급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이 있어 반찬통들을 차게 만들고 있다.  새벽부터 일하는 인부나 술꾼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시락국
 테이블 가운데는 왼쪽 파이프로부터 냉매가 공급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이 있어 반찬통들을 차게 만들고 있다. 새벽부터 일하는 인부나 술꾼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시락국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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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씻기 위해 잠깐 들른 여객선터미널에는 욕지도나 매물도 가려는 사람들로 벌써 붐빈다. 목적지를 정한 것이 아니니 바쁠 것은 없지만 여행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남망산 공원을 향하다 한산대첩축제 때문에 색등을 켜고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비로봉함>으로 간다. 함정 번호 앞에 LST(Landing Ship for Tank)라 쓰여진 것처럼 선수와 선미는 차량이 들어 가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고 중간 계단 갑판에는 흰옷을 입은 수병 몇몇이 서 있다.

일출을 보기위해 남망산 공원으로 가던 중 곁에 정박 중이던 비로봉함 근처에서 일출을 맞기로 한다.
 일출을 보기위해 남망산 공원으로 가던 중 곁에 정박 중이던 비로봉함 근처에서 일출을 맞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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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만에 정박중인 어선들. 한산대첩 시연때문에 깃발을 달고 있다.
 강구만에 정박중인 어선들. 한산대첩 시연때문에 깃발을 달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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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의 여적.
 어젯밤의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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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캄캄한 새벽 낚시배인 듯한 작은 쾌속선들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로 향하고 있고 훤해지기 시작하는 동녘 하늘로는 작은 구름이 몰려 있어 깨끗한 일출을 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해안을 따라 동호항(강구만)쪽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어선이 많이 몰려있는데 축제를 위해 깃발을 달고 있다.

일식 가옥에 들어서 있는 컴퓨터 학원. 근대와 현대의 오묘한  조화
 일식 가옥에 들어서 있는 컴퓨터 학원. 근대와 현대의 오묘한 조화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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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은 <한국의 몽마르뜨>가 아니라 하루 아침에 갈아엎는 개발이 아닌, 지역사회와 조화를 깨치지 않으면서 원주민의 삶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써 더욱 더욱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동피랑은 <한국의 몽마르뜨>가 아니라 하루 아침에 갈아엎는 개발이 아닌, 지역사회와 조화를 깨치지 않으면서 원주민의 삶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써 더욱 더욱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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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활어시장 곁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오르면 동피랑이란 마을이 된다. 동쪽에 있는 벼랑이란 뜻의 동피랑마을은 재개발사업으로 아파트촌이 되었을 마을을 주민, 시민단체, 시의 협조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삶의 질이라는 것을 편의성과 경제적인 효율성에 치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마뜩치 않은 곳일 수도 있다.

마을 꼭대기로 올라가는 골목길
 마을 꼭대기로 올라가는 골목길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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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을 하며 온통 콘크리트 골목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필요에 의해 콘크리트 포장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급경사로, 블로크집, 슬레이트집, 문간 옆 화장실과 그 위의 장독대, 작은 텃밭, 그 무엇 하나 현대적인 편리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않는 터줏대감들에게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비좁은 동네에서 끼리끼리 모여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불안한' 행복이 진행 중이다.

벽화 중에는 '동피랑엔 꿈이 살아 있다'라는 그림이 있다. 그 꿈이 무엇이겠는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 들어가 살아 보지도 못하는 아파트딱지이겠는가 아니면 없더라도 예전부터 알고 부대껴오던 이웃들과 함께 지내며 사는 꿈이겠는가?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아줌마 셋이서 길옆 난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리를 하나씩 척 걸치고 스트레칭을 하며 동피랑의 꿈을 간단히 대변해주고 있다.

동피랑 마을 정상. 바닥에는 집의 배치를 알 수 있는 기초가 그대로 있다.
 동피랑 마을 정상. 바닥에는 집의 배치를 알 수 있는 기초가 그대로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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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게는 유럽과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 없냐'고? 언제 그거 남겨 두기라도 했나? 값 안오른다고 보기 싫다고 다 까부서버렸지.
 '왜 우리에게는 유럽과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 없냐'고? 언제 그거 남겨 두기라도 했나? 값 안오른다고 보기 싫다고 다 까부서버렸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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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이 아침 스트레칭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동피랑의 <꿈>을 한마디로 잘 보여 주고 있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이 아침 스트레칭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동피랑의 <꿈>을 한마디로 잘 보여 주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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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특성 중 하나는 산 옆에 자리하고 있어 산자락을 가로타는 길의 경사가 급하다는 점이다. 큰 배를 접안하려니 수심은 깊어야 하고, 그러자니 도로확장과 시가지 확보가 큰 문제이다. 아침 해가 내리비치는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세병관, 충렬사로 가는데 모두 개관시간보다 일러 문 앞에서 금목서나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세병관 정문 곁 비각
 세병관 정문 곁 비각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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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기간에는 무료라고 써붙고 문을 열어 놓았으면서도 아직 개관시간이 안됐다고 못들어간단다.
 축제기간에는 무료라고 써붙고 문을 열어 놓았으면서도 아직 개관시간이 안됐다고 못들어간단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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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온동네에 진동한다는 커다란 금목서나무
 향기가 온동네에 진동한다는 커다란 금목서나무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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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개를 넘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서서
 이런 고개를 넘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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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까지 왔으나 문은 굳게 닫쳐있고...
 충렬사까지 왔으나 문은 굳게 닫쳐있고...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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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판도 벌이지 않은 중앙시장을 거쳐 이중섭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미륵도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간다. 버스는 공휴일인데도 SLS조선 회사 직원들로 만원이다.

벌써 48회째라는 한산대첩축제 박정희 장군의 사진이 보인다.
 벌써 48회째라는 한산대첩축제 박정희 장군의 사진이 보인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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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그림 타일과 화장품 광고 전단
 이중섭 그림 타일과 화장품 광고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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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동에 내려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가니 벌써 매표소에는 백 여명의 관광객이 줄을 서 있는데 운행은 9시부터 한다 한다.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 있다. 승객수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케이블카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든다. 정상에서 먹어야 참맛을 알 수 있다는 김밥을 벌써 고등학생 도시락 까먹듯이 벤치에서 기다리는 동안 다 먹어버리고 빈껍데기만 남겨버리고 만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탑승객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탑승객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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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한 젊은 부부의 마탕도넛을 하나씩 얻어먹으며 상부정류장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얼굴을 때린다. 방부목계단을 따라 도착한 전망대. 마치 조도 전망대처럼 앞에는 점점이 섬들이 떠있고 왼쪽으로는 통영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날씨만 좀 더 맑았으면 좀 더 파란 바다를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올라와 이런 경치를 접할 수 있다는데 불평할 개재가 아니다. 아래 산등성이로는 작은 절이 하나 보이는데 망원렌즈에 찍힌 것을 보니 짓기 까다로운 팔작 십자각으로 만든 범종루가 하나 있어 미래사임을 짐작한다.

조도를 연상시키는 전망과 전망대
 조도를 연상시키는 전망과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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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내
 통영시내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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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내려오니 사람들은 더욱 많아져 장바닥이 따로 없다. 너무 일찍 도착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는 손실감은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바뀌고 동행한 후배가 지난 밤부터 입에 달고 다니는 갯장어를 맛보기 위해 중앙시장으로 간다. 먹는 방법이 달라 한 접시에 줄 수 없으니 따로따로 시키라는 아줌마를 살살 달래서 갯장어(하모)와 쥐치를 큰거 한 접시로 주문하고 세꼬시 무침 먹듯이 야채를 덜고 회와 초고추장, 콩가루를 넣어 비빈 만든 갯장어 무침을 한입 넣고 후배는 '향이 다르다'며 감격한다. 나중엔 쥐치를 사이다와 초고추장을 섞어 넣은 우리식 물회로 만들어 먹으니 아줌마가 와서 한번 맛보자며 한입 떠먹는다.

욕지도 삶은 고구마와 삶은 쭈꾸미도 보인다
 욕지도 삶은 고구마와 삶은 쭈꾸미도 보인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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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견본으로 만들어 준 갯장어회 무침
 아줌마가 견본으로 만들어 준 갯장어회 무침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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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덥다는 오늘, 해가 중천에 솟으니 걸을 맘이 나질 않는다. 근처 해수탕으로 직행.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강구만이 내려다보이는 탕 속에서 열을 식힌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팔던 멍게비빔밥에 넣는 양념멍게를 파는 집이 없다. 다행히 너무 시지 않고 짜지 않아 그럭저럭 꿩 대신 닭 구실할 만한 멍게젓은 있어 각자 하나씩 구입한다. 너무 일찍 올라가는 것 아니냐며 아쉬워했던 6시 40분차도 폭염에는 염치없이 끽소리 없이 꼬리를 내리고 만다. 대신 저녁거리로 내가 주장했던 볼락구이를 끝으로 여행을 마치자고 의견일치를 본다. 구이는 한 접시에 작은 볼락 5마리씩 올라온다. 그런데 잘 먹는 사람은 내장이 맛있다고 내장 째 먹는 구이를 내장은 깨끗이 발라내고 먹었으니 언제나 다시 와서 제대로 먹어볼 것인가?

내장째 먹어야 맛있다는 볼락구이를 깨끗이 발라 먹었으니 또 언제가서 그렇게 먹는담?
 내장째 먹어야 맛있다는 볼락구이를 깨끗이 발라 먹었으니 또 언제가서 그렇게 먹는담?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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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같은 재래식 다방. 시원한 냉커피 두 잔과 빙수 한 그릇 시킨다. 설익은 키위와 과일조각과 팥알이 각자 따로 노는 팥빙수니 아마 냉커피 맛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담배 연기 속에서 이보다도 못한 계란 노른자가 들어간 '모닝커피'와 쌍화차를 들며 마담 눈치보며 죽치고 앉아 있었을 통영 예술가들을 생각하니 차라리 이 맛이 별다방 콩다방 커피 맛으로 변해버리고 나면 그나마 통영의 옛 맛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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