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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트'라는 쇠고기 수입업체가 배우 김민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어느 시민단체는 그 소송이 '폭력'이라고 논평을 냈지만 이를 실제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소송은 최후의 권리구제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김민선씨가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수입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먹게 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오직 하나의 일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일뿐이었다. 그녀의 말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김민선의 말은 보호되어야 한다

 

광우병이 '득실거린다'는 김민선의 표현은 '견해'이지 '허위의 사실'이 아니다. 광우병 감염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해서 '득실거린다'는 표현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발생률이 아무리 낮아도 우리는 범죄에 대한 혐오와 경계를 드러낼 때 '범죄자들이 우글거린다'는 표현을 자유롭게 쓴다. '득실거린다'는 표현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김민선의 주관적인 혐오와 두려움을 나타낸 것이다.

 

더욱이 미국산 쇠고기의 객관적인 광우병 감염가능성은 누구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노벨상을 탔어야 할 것이다. 위 표현이 '악의적'이라는 것도 법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그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높다고 말했어야 하는 데 최고의 과학자들도 모르는 사실을 김민선이 알았다는 것인가.

 

아직도 인류는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완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기초물리학이론은 이 우주가 몇 차원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로호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불완전한 정보는 이미 우리의 가장 열정적인 믿음과 소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불확실의 세계에서 확실한 정보가 없이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산가리'라는 표현도 법적으로 '악의적'일 수 없다. 시장에 나온 모든 상품은 항상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번지점프는 두렵지만 쾌감이 있다. 이때 나쁜 면에 깊게 인상을 받은 소비자들은 자신의 감회를 자신의 언어로 다른 소비자들과 공유할 자유가 있다. 너무 무서워서 다시 번지점프 하느니 '자살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시간낭비였다'라거나 '피곤할 정도로 지루했다'고 과장해서 말하면 그 관객은 영화제작자에게 소송을 당해야 하나. '득실거린다'거나 '청산가리'라는 표현이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과했다고 치자. 자기 제품의 질과 안전성에 대해 홍보를 해야 할 기업이 이를 소홀히 하여 소비자들이 그 기업의 제품을 혐오하게 된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지우는 것이 기업의 자세인가.

 

소비자들은 소비노예가 아니다. 유권자들도 투표노예가 아니다. 자신들의 돈과 표를 지불하고 행사할 때 자신이 싫어하는 상품과 정책에 대해 견해를 밝힐 수 있다. 소비자가 자신과 친구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을 막겠다는 기업은 소비자들의 입과 귀를 막아놓고 물건을 팔겠다는 것이며 공정한 경쟁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송은 기각되겠지만 안타깝게도 김민선과 <PD수첩> 제작진들은 소송을 방어하기 위해 다시 법률비용과 정신적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들의 부담은 다른 연예인들과 PD들이 비슷한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위축시킬 것이다. 소비자들이 상품에 대해 자유로운 정보공유와 견해표명을 못 하고 이에 따라 그 상품에 대한 정부정책에 대해서도 침묵을 강요당할 때 시장과 민주주의는 같이 죽게 될 것이다.

 

사회적 발언 입막음하려는 본보기 소송

 

특히 이번 소송은 MBC가 아닌 <PD수첩> 제작진 개인들에게도 제기되었다. 회사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본보기를 보여 비슷한 발언이나 프로그램들을 막겠다는 악의가 엿보인다.

 

또 일부러 연예인을 선택한 것도 의심스럽다. 말의 전파성과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은 소비자로서의 정보공유와 견해표명을 하지 못하도록 입막음하겠다는 것으로서 소비자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연예인들의 사회참여를 막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듯 미네르바, PD수첩,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사건들과 같은 형사소송만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검찰의 기소에 대해서는 공적비판과 선거를 통한 질책이 가능하지만 민사소송은 그렇게 하기도 어려우니 더욱 폐해는 크다.   

 

이와 같은 민사소송에 의한 위축을 막기 위해 미국의 캘리포니아·워싱턴·뉴욕에서는 법적 사실적 타당성이 없음에도 타인의 의사개진을 위축시키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들을 막는 SLAPP퇴치법이 제정되었다.

 

SLAPP란 '공공의 참여를 저해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을 의미하며 이러한 전략적 소송을 당한 사람을 가리켜 '슬랩'(slapp)당했다고 말한다('손바닥으로 맞았다'라는 뜻의 '슬랩'(slap)의 중의법이다).

 

'슬랩'을 당한 피고는 소장을 받자마자 곧바로 SLAPP퇴치신청을 할 수 있고 원고는 곧바로 승소의 개연성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승소의 개연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그 소송은 곧바로 각하되며 그때까지의 양자 모든 소송비용은 원고가 지불해야 한다.

 

SLAPP퇴치법은 법적 사실적 근거도 없이 타인의 입을 막기 위해 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려는 유혹을 억제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법이 없다. 이 상황에서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소비자를 공격하는 업체의 제품에 자신의 돈을 소비하지 않을 자유는 가지고 있다. 시장에서 악덕업체를 기피하는 것만큼 중요한 소비자운동은 소비자를 입막음하겠다는 업체들을 기피하는 것 아닐까. '에이미트'측에 소송을 취하할 것을 권유한다.


태그:#김민선, #에이미트, #SLAPP퇴치법, #PD수첩, #청산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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