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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중인 김대중 대통령을 문병온 인사들.
 입원중인 김대중 대통령을 문병온 인사들.
ⓒ 권우성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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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김형오, 박희태, 이재오, 공성진, 오세훈, 김무성, 김덕룡, 이동관, 맹형규, 최시중, 박순자, 임태희, 정의화, 이종혁, 윤상현, 김효재….

그야말로 총출동. 일사불란하다. YS가 포문을 열자 대통령을 필두로 국회의장, 여당대표와 지도부, 청와대 대변인과 수석, 서울시장, 방송통신위원장까지 일제히 움직였다. 게다가 남기신 말씀 하나하나 훈훈하기 그지없다.

<이명박 대통령>
"민주화와 민족 화해에 큰 발자취를 남긴 나라의 지도자이신만큼 문병하고 쾌유를 비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반세기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지도자다. 평생 동안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고비를 넘기실 수 있을 것"

<김형오 국회의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세가 하루 빨리 호전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서 할 역할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국민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정파를 떠나 전 국민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쾌유를 지극정성으로 바라고 있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
"김 전 대통령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선구자였다. 어서 빨리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의원>
"잃어버린 10년은 과장된 표현, 김대중 대통령 재평가 받아야 마땅."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5년간 훌륭한 치적을 많이 남기셨다.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으신 분."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
"정말 우리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룬 큰 지도자로서 국민 속에서 더욱 각인될 수 있도록 빨리 건강을 되찾으셔서 국민 앞에 밝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린다."

아, 따뜻하다. 이에 질세라 언론들도 축포를 터트린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병상을 찾아 쾌유를 기원하고, 전직 대통령 측 가족이 이에 고마움을 표한 것은 그래도 우리 정치의 어딘가에는 아직 사람의 숨결들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대통령이 병원에서 이희호 여사와 함께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위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자, 주변의 청와대 참모진과 김 전 대통령 가족, 측근들 모두가 함께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화해와 평화의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 <조선일보> 8월 12일자 '[사설] 전 대통령 병상 옆 현 대통령의 기도'

부인 이희호 여사의 손을 꼭 잡고 "평생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화합과 통합에 목말라 하는 국민에게 흐뭇한 느낌과 함께 안도감을 갖게 했을 것으로 믿는다.
- <한국일보> 8월 12일자 '[사설] 잇단 DJ 병문안에 국민이 느끼는 위안'

아, 아름답다. 숨결이 통하고, 평화가 찾아오고, 흐뭇함과 안도감이 밀려온다. 근데, 이상하다. 언제부터 이 신문들에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들이 난무했나? 게다가, 이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총출동, 일사불란함.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은가? 그것도 얼마 전에. 정확히 말하면 딱 두 달 전에.

2009년 6월 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장. 김대중 대통령께서 한 말씀 하셨더랬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 역행을 걱정하시며 이렇게.

"민주주의는 나라의 기본입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죽었습니까. 광주에서, 인혁당 사건 등으로 많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독재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여야 정권교체를 통해서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 모든 민주주의적 정치가 계속됐습니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더불어 여러분께도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4,700만 국민이 모두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비판하고 격려한다면 어떻게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다수 사람들이 힘든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참고]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 김대중 전 대통령 연설 전문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각계 각층에서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를 때, 김 전 대통령은 어렵게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 및 그에 따른 국민의 역할에 대하여 매우 시기적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다음날, 이 역사에 근거한 지당하신 말씀에 하늘이 뚫린 듯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국민 화합에 앞장서고 국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셔야 할 전직 국가원수가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오히려 분열시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익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어이없다'  '선동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전직 대통령 발언으로 믿기 어렵다.'
'국외자처럼 논평하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무책임한 발언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환각을 일으킨 게 아닌가 여겨진다."
"돈키호테적 사고가 아닌가 생각한다…이제 김 전 대통령은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발 김대중씨는 대다수 국민 동의하지 않는 발언 중단하고 침묵 지켜달라."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
"경악을 금치 못한다…전직 국가원수가 맞는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어느 후진국 반군 지도자의 선동발언을 듣는 것 같다."

이에 따른 수구언론의 지원사격도 일사불란했다.

<조선일보> [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 국가 원로다운 언행을
<중앙일보> [사설] 전직 대통령의 금도가 아쉽다
<동아일보> [사설] '민주' 탈 쓰고 反민주 부추긴 DJ의 정권타도 선동
<문화일보> [사설] 국민 분열 선동하는 DJ의 망언
<한국일보> [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아, 이 일사불란함이여. 나라걱정에 한 말씀 하신 국가원로는 순식간에 어이없고 무책임하고 답답한 시대착오적 정권타도,국민분열 선동꾼이 되고, 환각을 일으킨 돈키호테가 되어 침묵과 휴식을 강요당하고, 전직 대통령 지위를 박탈당한 채 김대중씨로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프리카 후진국 반군 지도자가 되었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을 마음으로 따르는 많은 국민들도 졸지에 내전이 벌어지는 아프리카 후진국 반군의 무리가 되었다.

당최 한 번에 소화해내기도 힘든 역할 주문이다. 만화 영화에서도 표현해내기 힘든 캐릭터를 현실에서 고령의 국가원로가 구현하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남북공동선언 기념일인 6월 15일, 다시 한 번 집중 '혀' 폭격을 가한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언남기신 인사들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언남기신 인사들
ⓒ 권우성 남소연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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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국무총리>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떳떳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독재란 말로) 정치 업적을 억지로 훼손하려 하거나 그런 발언을 해서는 안 돼"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DJ, 87세 고령에서 오는 그런 심신의 허약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6·15선언, DJ 노벨상 욕구와 北 핵무장 야욕 합작품"
"DJ, 기회주의적 편승정치"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
"DJ, 정권타도 투쟁 지침 내린 듯"
"정말 많은 국민들에 대한 모욕적인 언행이고 국민들이 용납치 않을 것이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
"김대중 정권, 남북회담 5억불 뒷돈 주고 성사."
"외눈박이 눈으로 주장 일방적 부풀려…길거리 선동가 발언"

<김정훈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주의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정말로 의문스럽다."
"대한민국 안보를 심각한 위협에 빠트린 데 대해 대국민사과부터 하기 바란다."

<이군현 한나라당 중앙위의장>
"DJ, 반정부 투쟁 선동자인지, 북한 세습정권 대리인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탓."

실로 대단한 표현력이다. 그들의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찌됐든 며칠 전 발언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또 무거운 짐들이 더해졌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6·15 선언은 졸지에 뒷돈과 야욕의 합작으로 성사시킨 더러운 사건이 되어버렸고, 김대중 대통령은 87세 고령의 나이로 정신이 헷갈리는 기회주의자이자, 외눈박이 길거리 선동가인 동시에, 대한민국 안보를 심각한 위협에 빠트리고, 국민을 모욕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북한 세습정권의 대리인이 되었다. 게다가 북한 대리인이 북한에 뒷돈 주고 회담을 성사시키는 이상한 상황도 연출됐다.

하지만 이들의 계속되는 망언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늘 그러셨듯 반응하지 않으셨고, 그들은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 했지만, 여론조사 결과 절반 이상의 국민들은 오히려 김대중 대통령의 '독재자' 발언에 공감했다. 이렇게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한동안 주춤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쉽게 물러설 그들이 아니었다. 얼마 후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 측 반대로 못하게 된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추천사를 통해 대신했더랬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참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추도사 전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추천사를 통해 추도사를 밝힌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추천사를 통해 추도사를 밝힌 김대중 전 대통령.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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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또다시 막말은 쏟아졌다. 잇따른 독설로 어느덧 DJ저격수란 타이틀을 꿰찬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DJ는 '투쟁 교시' 내리는 한국판 호메이니"이고 "추도사로 구체적 행동강령까지 제시"한다며 광분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DJ '민주주의 위기' 발언은 상습적"이고 이에
"국민들의 실망이 많다"고 했으며, 정계복귀를 준비하는 이재오 전 위원은 "이 정부가 만약 독재정부라고 하면 DJ의 발언은 내란선동이고,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 발언을 한 김대중 대통령을 안 잡아가는 정권은 독재정권이 아니라는 명쾌한 논리를 설파했다.

그들은 새로운 과녁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저들은 왜 자신들 스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네 취급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그토록 모진 말들을 쏟아낸 것일까? 저들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그러게 왜 독재자니 어쩌니 했냐!'는 즉각적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말대로 일련의 '독재' 발언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박으로 저런 엄청난 말들을 쏟아낸 것일까? 아니. 결코, 정답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년 전부터 이미 수차례 '독재' 이야기를 하셨다.

"국민 중에 상당수 사람들이 '제2의 유신의 전초가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다."
"상대방을 완전히 좌파라는 말로 그렇게 몰아서는 독재밖에 길이 없다. 그런 식으로 한다는 것은 국민도 불행이고, 그렇게 당한 사람도 불행이고, 그렇게 한 사람도 결국은 불행이다."
- 2008년 8월 10일 KBS <일요진단> 참고 KBS 1TV <내용전문>

"국민들이 다시 유신시대 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무시무시한 유신시대, 법도 뭐도 없이 사람 죽이고, 인혁당 같은 것은 오늘 판결해서 내일 죽이는 시대를 생각하게 한다."
- 2008년 8월 14일 <코리아타임즈> 회견 <인터뷰전문>

"우리 국민은 이미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등 세 독재 정권을 좌절시켰다. 앞으로 그 누구도 독재에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을 이기고 독재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 … 국민들은 역사마다 독재정권을 좌절시켰고 우리들은 매번 이겼다."
- 2008년 11월 27일 강기갑 민노당 대표 예방 시 <내용전문>

"유감스럽게도 최근 상황은 민주주의가 상당히 역주행하는 현상이 보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국민은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등 독재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모두 종식시켰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도 국민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일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 2009년 1월 15일 서울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 질의응답  <내용전문>

 "그동안 역사에서 독재자가 승리한 적이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로, 박정희 대통령은 10·26으로, 전두환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넘어졌다. 이 대통령이 국민을 억압해서 하려고 한다면 성공하지 못한다. 옳은 것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
- 2009년 5월 11일 민주당 지도부의 예방시

2008년 8월 14일 <코리아 타임즈> 회견
 2008년 8월 14일 <코리아 타임즈> 회견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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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김대중 대통령은 이미 '독재정권과 이명박정권', '독재자와 이명박 대통령'을 빗댄 말씀들을 지속적으로 해오셨고, 심지어는 '유신' 이야기까지 하셨다. 그때마다 정권과 한나라당 수구언론의 반응은 밋밋했다. 이번과 같은 집단포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저런 저주의 굿판을 벌이는 것일까? 결국, 달라진 건 하나뿐이다. 그때는 굳이 김대중 대통령을 걸고넘어질 이유가 없었다. 더 만만하고, 더 익숙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없다. 게다가 떠난 그가 만든 이 서거정국을 돌파할 국면 전환카드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 30년간 숱하게 써먹고 쏠쏠히 재미 보던 'DJ 대 반DJ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고, 일사불란하게 서거정국을 돌파할 카드로 활용한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두 개의 진실된 걱정, 노 대통령 서거로 학습한 것이 이것밖에 안 되나?

며칠 전 진심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신 저분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 저렇게 막말을 쏟아내셨다. 그리고 이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망언의 폭주는 정확히 한 달 만에, 김대중 대통령이 입원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다. 그 일사불란한 함구가 겉보기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걱정인 듯싶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진실 되게 걱정했던 것은 하나. 오로지 미디어법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정국 이후 어떻게든 국면전환을 꾀하여 미디어법을 통과시켜야 했던 그들은, 그 목적을 위해 또 다시 전직 대통령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비열한 방법을 동원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저지른 일들, 내뱉던 말들을 고스란히 답습하며 집중 공격했다. 저들이 또다시 저토록 지독하게 전직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통해 느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자명해 보였고, 최소한 연민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갑작스레 입원하시고 병세가 심각하자 그들에게도 갑작스레 학습효과가 나타났다. 죽어라 죽어라 했더니 정말 죽는 거 저들은 목격했다. 노무현 대통령 가슴에 날린 비수들 부메랑 되어 돌아와 아직 그들 가슴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잘 걸렸다고 또 죽어라 죽어라 비수를 던졌던 김대중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되고 정말 돌아가실지도 모르자 불현듯 학습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그 학습효과로 진실된 걱정 하나 늘었다. 행여, 또 다른 서거정국으로 가진 않을까, 다시 부메랑 맞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저들은 재빨리 저주를 멈추고, 최전선에서 저격하던 장광근 사무총장이 제일 먼저 액션을 취했다. 입원 직전까지 그토록 입안에서 주물러대더니 입원 사흘 만에 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며 난을 보낸 것. 그러고는 "정치적 상황이 달라서 그런 것일 뿐, 이렇게 어른이 편찮으실 때는 쾌차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순식간에 어른을 공경하는 예의바른 국회의원이 되어 있었다. 아, 안타깝다. 저들에겐 이것만이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인가? 고작 학습한 게 이거란 말인가?

그리고 그들은 조용히 미디어법에 올인했다. 행여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그로 인해 통과시킬 동력을 잃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또 한 번의 일사불란, 너무나도 더러운 권모술수

'미디어법 날치기 미수사건' 의 현장
 '미디어법 날치기 미수사건' 의 현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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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은 위기를 넘겨가며 잘 버텨주셨다. 그들도 이 다행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미디어법을 날치기했다. 처리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지만, 그들에겐 그동안 해오던 가닥이 있어 별문제 될 것 없었다. 또다시 자신들이 내세우는 법치를 스스로 무시한 채 방송법 시행령 개정 강행으로 일부터 저지른 다음, 우격다짐하면 그만이었다. 이제 남은 건 '김대중 대통령 부메랑'이라는 또 다른 진실된 걱정뿐이었다.

작년 같으면 베이징 올림픽이 있었겠지만 지금 꺼내들 카드는 많지 않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문병 총출동'을 감행했다. 최대한의 효과를 위해서는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아야 했기에 이번엔 전·현직 대통령까지 모두 나서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YS가 먼저 나서서 포문을 열고 다음날 국무회의를 마친 대통령은 청와대 식구들을 모두 이끌고 문병을 왔다. 그리고 온갖 미사여구를 쏟아내고 돌아갔다.

문병 직전, 그날의 국무회의에선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보고가 있었다. 이병박 대통령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으로부터 '방송의 디지털 전환 및 활성화 추진방안' 을 보고 받고,
"미디어법이 통과되었으므로 종합적인 후속 대책을 마련해 미디어환경 선진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국제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선진국에 비해 늦게 출발한 만큼 빨리 따라잡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며 방송법을 입으로 정상통과 시켜주시고 신속처리까지 주문하셨다. 그리고 결국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13일 입법예고 되었고, 이 얼렁뚱땅의 상황도 위대하신 전(두환) 장군께서 친히 문병행차에 동참하시며 깔끔하게 뒤덮어 주셨다.

김대중 대통령이여, 꼭 다시 일어나시라!

저들의 위선행보에 누워계신 김대중 대통령이 이용되는 거, 정말 마음이 언짢고, 비위가 뒤집혀서 구역날 듯하다. 속히 쾌차하셔서 저들에 따끔한 한 말씀 남겨주시길...
 저들의 위선행보에 누워계신 김대중 대통령이 이용되는 거, 정말 마음이 언짢고, 비위가 뒤집혀서 구역날 듯하다. 속히 쾌차하셔서 저들에 따끔한 한 말씀 남겨주시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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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여름,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일본에서 납치되어 망망대해로 끌려갔고, 29년 전 여름에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구형한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 생사의 갈림길에서 전 국민, 전 세계의 성원으로 모두 살아 돌아오셨다.

김대중 대통령이여, 그 극한 어둠의 밤바다에서도, 그 서슬 퍼런 형장 앞에서도 살아 돌아오신 기억 되살리시어, 부디 쾌차하시라! 이명박 대통령도 깨어나시면 다시 온다고 하니 꼭 일어나셔서 한 말씀 남겨주시라! 그 후 저들의 반응도 문병 때 만큼이나 아름다울지 꼭 확인시켜주시라! 김대중 대통령이여, 꼭 다시 일어나시라!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추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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