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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수도권의 전세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7월 서울의 전세지수는 0.7%, 수도권도 0.7%가 올랐다고 한다. 7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가구당 평균 전세금이 2억 41만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부동산써브의 발표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전세 가격을 올려 받으려는 집 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오고 있다. 사실 내 집 마련은커녕 앞으로 입에 풀칠하고 살 방법조차 소원한 대학생 입장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서 해 봤다. 일명 '서울에서 전세 구하기 체험'.

설정은 이렇다. 연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혼부부가 전세로 신혼 집을 찾는 거다. 좋게 말하면 결혼 하기엔 조금 이른 나이로 보이고,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 벌어서는 단칸방 하나 구할 능력도 없어 보이는 기자가, 신혼 집을 턱 하니 구해줄 수 있을 만한 재력의 부모님이 등 뒤에 있다고 가정했다.

먼저 우리 나라의 부동산 가격 상승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곳, 강남으로 갔다. 그 중에서도 최근 집 값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송파구의 '잠실'이다.

1년 사이에 '억, 억'이 왔다갔다 한 송파구 '잠실'

잠실역 부근의 아파트 단지.
 잠실역 부근의 아파트 단지.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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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선 잠실역에서 내려 신천역까지 걷는 동안, "뭐야 이건"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10차선 도로 양 옆으로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대형 아파트들. 탁한 공기 위로 고개를 쳐든 아파트들, 무섭게 질주하는 자동차, 한적한 거리. 무슨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곳을 걷고 있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몇 번을 망설이다, 한 곳에 들어갔다. 갤러리아 팰리스 쪽에 있는 부동산이었다. 주상복합 건물인 이 곳에는 부동산이 한눈에도 서너 개 이상이었다. A 공인중개사무소의 사장은 잠실 쪽에는 전세 물량이 있다고 말했다. 워낙 아파트가 많은 곳이고, 작년에 2만 가구 정도가 풀렸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집이 있으면 무얼 하나. 신혼 부부가 살 만한 제일 작은 아파트는 82제곱미터(25평), 전세는 3억원 이상부터 시작인 걸.

42제곱미터(12평)도 있다. 1억 8천만원에서 2억원 사이. 물론 전세가다. 82제곱미터(25평형)의 작년 전세가는 2억원 정도였다고 한다. 일년 사이 '억'이 왔다 갔다 한 셈이다.  82제곱미터 매매가는 7억 5천만원 정도. 손에 잡히지 않는 가격대에 멍해진 기자에게 사장은 "오피스텔도 신혼부부가 살기 좋다"고 추천해 준다. 20평형은 방이 하나라 신혼 부부가 살기엔 조금 작고, 딱 좋은 82제곱미터 (25평)  전세가 2억원 정도란다. 헬스장 및 편의시설이 다 딸려 있어서 "부부 변호사 같은 사람들도 많이 산다"고 귀띔했다.

"한 번 강북에서 시작하면 애들까지 강북 '애' 된다"

잠실의 주상복합 오피스텔 시세. 매매와 월세가 대부분이다.
 잠실의 주상복합 오피스텔 시세. 매매와 월세가 대부분이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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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역 쪽으로 더 걸었다. 슬슬 상가가 나오면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길 거리에 널려 있는 부동산들 중, 용기를 내어 한 곳에 들어갔다. 고백하자면 이 곳에서 나는 돈만 있었다면 당장 매매 계약을 했을지도 모를 만큼 설득 당했다.

"그래도 부모가 집을 얻어준다니, 복 받은 신혼부부네. 어떻게든 좀 더 뜯어내서 집을 사는 쪽으로 해봐."

잠실 1, 2, 3단지 중에서 2년 전 입주했던 3단지 쪽에서 물량이 조금 있는 편이라고 한다. 1, 2단지는 작년에 들어와서 아직은 잠잠하다고. 3단지 82제곱미터(25평형)의 전세가는 3억 1-2천만원 정도이다. 3억원에 내 놓는 곳은 잘 없고 있어도 융자가 억 단위이거나, 확장 공사가 안됐다고 했다. 잠실의 전세가는 일년만에 1억원이 올랐다. 40평 대 살던 사람이 몇 천 만원 더 보태서 30평대로 내려 앉고 하는 식이란다.

82제곱미터(25평)에 대한 매매가를 슬쩍 물었다. 7억 6천만원 이상이라는 답이 돌아 왔다. 7억 8천만원에 나온 좋은 물건이 하나 있다고 부동산 중개업소 주인은 설명했다.  로얄층이고, 전망이 탁 트여 있고, 확장도 완료됐다. 집 주인이 절대 더 낮게는 안 내놓으려고 하지만 눈치를 보니 7억 6-7천만원까지는 깎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부동산 측의 말을 정리하면 이 동네 사람들, 집에 대한 인식은 이렇다. "자부심 쩔어요 ".

"시세가 적절한 거죠?"라고 말하자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사장님의 논리는 이랬다.

'서울 다른 곳보다는 당연히 비싸다. 하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주거만을 위해서도 좋지만 투자 가치가 항상 있다. 이번에 세계적인 금융 위기라 서울 전 지역이 다 같이 집 값이 떨어졌지만 집값 반등도 송파구가 강남보다 더 빨랐다. 송파구는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제 주거 지구가 없다. 더 집을 지을 수가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서초구보다는 싸지 않나?'

"집 값이 더 떨어질 일은 없는 거죠?" 사장님은 또 한번 세계적 금융 위기라도 닥치지 않는 한은 그럴 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왜냐? 서울 어디로나 갈 수 있는 2호선이 있고, 제2 롯데월드도 확정 됐으며, 9호선까지 들어 온다. "9호선 들어온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있던 얘기지만 확정되자 그래도 집 값이 뛰었다"는 것이다. 잠실 쪽에 그런 집값상승요소는 얼마든지 또 있다고 한다. 잠시 보류된 상태이지만, 한전부지에 코엑스2도 기존의 7.5배 규모로 예정되어 있고 "결국엔 다 들어온다"는 사장님의 확신. 하긴, 그 말 많던 제2 롯데월드도 이젠 공사를 시작했지 않았나. 동요되던 내 마음에 결정타를 날린 한 마디.

"이제 집 값이 차별적으로 오른다.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고 있지 않나? 강북에 집 사면 이제 못 내려온다. 한 번 강북에서 시작하면 애들까지 평생 강북 애 되는 거다. 어딜 사도 강남 3구에서 해결해라."

아직 자녀 계획은커녕 결혼 계획도 없었지만 이 말이 주는 울림은 상당했다. 강남에 집을 살 돈이 없으면 내 애는 평생 '강북 애'라니. (이건 21세기형 카스트 제도의 한 계급인가? 아니, 강북애가 뭐가 문제인데?)

"이 동네 전세 얻느니 좀 먼데라도 집을 사라. '나는 사는 집으로 투자 안 한다' 이런 생각 하는 사람들 있는데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다 후회한다. 옆집은 오르는데 자기는 아니거든. 전세면 집 주인이 달라는 대로 그냥 올려 줘야 되고."

전세보다는 집을 사는 쪽으로, 가능하다면 강남 3구 내의 집으로. 진심 어린(?) 사장님의 조언을 뒤로 하고 부동산을 나왔다. '나는 사는 집으로 투자 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바로 내 얘기다. 하지만 듣다 보니 귀가 팔랑거린다. 정말 다 이렇게 사는 건가?

"여기에서부터 상계동까지 전세 없어요"

왕십리 신역사 옆의 아파트촌. 이 곳의 매매가는 4억 이상이다. 전세 매물은 없었다.
 왕십리 신역사 옆의 아파트촌. 이 곳의 매매가는 4억 이상이다. 전세 매물은 없었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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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북으로 눈을 돌려 봤다. 강남에서 시작된 집과 전세 값의 상승은 이제 강북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성동구의 왕십리 역에 내렸다. 이촌 역까지 쭉 아파트 촌이 형성되어 있다. 왕십리 역 부근의 B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어 갔다.

"원룸?"
"아뇨, 신혼 부부가 살만 한 조그만 아파트 전세가 혹시 있을까요?"
"전세가 서울 시내에 다 없어요. 여기서부터 상계동까지 다."


딱 하나 전세 매물이 있지만 계약 하고 두 달을 기다려야 입주가 가능하다고. "집 주인도 전세 구하기 어려운 거 아니까, 본인들 집 구할 시간을 달라고 하는 거"라는 이유에서다. 왜 이렇게 전세가 없느냐고 묻자, 건축규제 등으로 공급은 없는데 수요가 많아서 못 따라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97년도에 지어진 82제곱미터(24평 형) 아파트, 계약 후 두 달 후에 입주, 3층인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1억 8천만원이다. 매매는 3억 5천만원 선에 물건이 있다. 비슷한 크기의 가까운 역 바로 앞의 아파트의 경우 매매가는 4억원 중후반대다.

"주상 복합은 어때요? 여기는 지은 지 오래 안됐고 참 좋은데. 전세요? 전세는 없고, 매매만 있어요."

또 다른 부동산에 가 봤다. "아파트 전세는 우리는 없다. 오피스텔은 다 월세고, 전세는 없다." 이촌역 쪽으로 더 가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왕십리 역과 이촌역 사이의 C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갔다. 아파트 촌이 아닌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서 빌라의 전세 가격을 물었다. "전세는 지금 하나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 온다. 5000만원에 지하인 곳이 딱 하나 있단다. 82제곱미터(24평형) 빌라의 전세 시세는 1억 3천만원에서 1억 5천만원 선이다. 매매는 아파트보다 비슷한 3억 5천만원부터 4억원 선이면 더 넓은 평수로 들어갈 수 있다.

전세 가격을 올리는 집 주인은 집이 몇 채일까?

한 부동산 앞에 붙어 있던 매물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전세는 많지 않았다.
 한 부동산 앞에 붙어 있던 매물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전세는 많지 않았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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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도 돌아오던 '전세는 씨가 말랐다'는 답변. 이촌 역 부근 아파트 단지의 D 공인중개소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렇게 전세가 잘 없을까요? 묻자, 사장님은 이렇게 답했다.

"2년 간 적채 물량이 없어요. 잠실에 2만 채 풀린 거 외에는 서울 시내 어디에도 없고. 그거 때문에 잠실 매매가가 8억원, 전세가 2억원 이렇게 떨어졌다가 이제 두 배가 됐어요. 전세가 4억원, 매매가도 10억원, 11억원 이렇게 넘어가고 있어요, 109제곱미터(33평 형)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거죠."

그래도 이 동네는 10월 정도엔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가 분양을 시작하여 전세도 좀 나올 거라고 한다. 내년 되면 2억원을 넘어가겠지만 지금 계약하면 1-2천만원은 더 싸게 할 수 있을 거라며 '서두를수록 좋다'고. 하나같이 전세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고, 앞으로도 더 오를 거라고 한다.

"앞으로 서울에 물량이 없어요. 다 철거만 해요, 철거만. 때려 부술 일만 남았어요. "

한쪽 벽 면에 가득 붙은 지도를 가리키며 사장님이 설명했다. 저기가 다 재개발 들어갈 곳들이라고. 3년 후 정도까지 전세 물량은 잘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조카의 일화를 들려 준다. 본인의 조카가 잠실에 2억 4천만원짜리 전세에 살고 있는데, 곧 계약이 끝난단다. 그래서 그냥 나와서 다른 곳을 구하라고 했다. 집 주인이 이제 두 배를 부를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왕십리 쪽에 그 돈이면 109제곱미터(33평) 전세가 가능하다고.

"그런데 전세 33평 살다가 더 작은 곳으로는 못 옮겨요. 계속 (서울) 안 쪽으로 들어가야죠. 동대문, 상계동까지."

강남에서 시작된 전세 값 상승이 왜 서울 전 지역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세 값이 오른다. 원래 살던 곳에 살려면 돈을 더 마련해야 한다. 돈이 더 없다면 다른 동네로 이사해야 한다. 이사온 곳도 2년 후면 전세 가격이 오른다. 그러면 돈을 더 마련하거나…. 끝이 없다. 그런데 전세 가격 계속 올리고 있는 집 주인들은 다 누굴까? 그 사람들은 대체 집이 몇 채나 있을까?

신혼 부부가 결혼을 앞두고 살 집을 구할 때, 강남에 전세 집을 구하기란 부모가 웬만큼 부자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 그나마 강남의 절반 정도 가격으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는 강북은 전세 물량이 바닥 수준이다. 그래서 이젠 수도권으로 전세 수요가 몰리고,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고 한다.

휴, 당장 결혼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다. 전세 물량이 생기기 시작할 거라는 3년 뒤라면 좀 나아질까? 아참, 앞서 말했던 '신혼 집을 턱 하니 구해줄 수 있을 만한 재력의 부모님'은 그냥 가정에 불과했다.

덧붙이는 글 | 조은별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전세값, #상승, #집구하기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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